생존과 비전 추구, 그 갈림길!
2022년 법인 결산이 종료되었다. 법인 결산이 종료되면 기업은 1년 간 운영을 얼마나 잘했는지에 대한 성적표인 재무제표를 받아본다. 학교를 졸업하면 시험을 볼 일도, 성적표로 골치를 썩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나이와 신분만 달라졌을 뿐, 매출과 실적, 즉 숫자의 굴레에선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 고군분투했던 넥스트팬지아의 2022년 성적표는 매출 60배 성장이었다. 2021년 700만 원에서 4억 원으로 수직상승했고, 수출은 30만 달러를 달성했다. 그 외에도 예비창업패키지 최우수 졸업, 프리미엄 식물영양제 메종드플란트 런칭, 그리고 투자 유치를 비롯해 최근엔 청년창업사관학교 최종 선정 등의 성과가 있었다.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성과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사의 시스템 구축, 회사의 비전 설정, 비즈니스 모델 가설 검증(매출 발생)이 되었다는 것이 더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1인 법인에 무슨 시스템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15년 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기업에게는 비전과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대표자인 나는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그 시스템을 충실히 수행하는 직원이어야 한다.
사실 지난 1년은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이었고, 사투였다. 자본과 인력 등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는 스타트업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절실히 깨달았던 한 해였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그러한 현실에 좌절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한겨울에 따릉이를 타고 출퇴근할 때도 춥다고 불평하기보단,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줘서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스타트업의 처지를 불평하기보단, ‘대기업보다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고, 적극 활용했다.
2022년 초반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예비창업패키지 때 설정했던 비즈니스 모델의 가설 검증 실패로 피벗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청년창업사관학교 발표 평가 탈락, 초기창업패키지 서류 탈락 등.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모든 프로젝트가 실패했다.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충분한 매출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지원사업들의 연이은 광탈은 충격적이었고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다 주었다.
이런 실패들을 한동안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실패 원인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했다. 그 결과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 말고,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생존을 먼저 하자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정부지원 없이 생존을 해야만 했던, 이때부터 본격적인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존을 해야 했지만, 사업과 무관한 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사업의 본질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것을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다.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나온 것은 바로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검증을 위해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나에겐 지난 1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쌓인 영업 노하우가 있었다. 그렇게 남은 2022년을 보냈다. 결과적이지만 이런 전략은 완벽하게 들어맞아 나와 넥스트팬지아는 생존에 성공했고, 목표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기업마다 업력과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처방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지난 1년 반 동안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초반의 실패를 극복하고 목표했던 바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래의 3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첫째, 비즈니스 모델 구축과 지속적인 검증 노력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떼 돈 벌 것 같은데?, 회사 그만두고 사업이나 해볼까?’ 머릿속에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일견 엄청 대단해 보인다. 당장 사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곧 성공한 CEO가 될 것만 같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제발 이렇게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업을 시작하는 데 특정한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비즈니스 모델 명시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 린 캔버스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작성 양식이 존재한다. 어떤 양식을 활용하든 며칠이 소요되든 진지하게 작성을 해봐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비즈니스 모델 작성 양식들은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해준다. 아마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들은 이 과정을 거쳐 자기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설정하고 명시화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즈니스 모델 명시화는 사업 준비 단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업을 시작하면 준비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영어 공부 할 때 사전을 옆에 끼고 공부를 하듯, 비즈니스 모델은 항상 대표자 옆에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사업을 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에서 설정한 가설 대로 매출이 발생되어야 한다.
둘째, 생존을 위한 매출 확보 -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지 않은 수입원 창출
지난 15년 동안 글로벌 비즈니스를 해오며 그동안의 성공 공식은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여 신규 바이어를 발굴하고 영업력을 총 동원해 발주를 얻어낸다'였다. 전시회 참가를 통해 SEPHORA 등의 글로벌 바이어를 발굴했고, 성공적인 해외영업인이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전시회만이 해외 바이어를 발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해외 전시회를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이 성공 방정식이 깨졌다. 절망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온라인 마케팅에 대해 수많은 책을 찾아보고, 실제 업무에 적용해 보았다. 결과를 다시 분석하여 재시도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렇게 꾸준히 반복을 하니 눈에 띄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2021년 상반기 5건에 불과한 인바운드(inbound, 고객사가 직접 문의를 남기는 경우) 건이 하반기엔 40건이 넘었고, 2023년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40건에 육박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기존의 프레임을 깨야만 했고, 그렇게 시도했던 새로운 영업/마케팅 방식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신규 고객사와 협업을 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를 떠나 기업에게는 이뤄야만 하는 게 있다. 바로 비전이다. 비즈니스 모델 또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큰 비전을 갖고 사업을 시작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매출!
아무리 비전이 훌륭하고 비즈니스 모델이 완벽해도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 생존할 수 없다면 그 모든 게 다 무용지물이 된다. 그럼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대표가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비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봐야 한다. 그렇게 매출을 발생시키고 기업의 생존확률을 높여야 한다.
넥스트팬지아는 화장품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첫 매출이 해외 마케팅 콘텐츠 제작으로 발생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써, 회사를 글로벌 브랜드 기업들에게 알리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화이트보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화장품 회사와 애니메이션 제작. 뭔가 조합이 잘 맞는 것 같지 않지만, 글로벌이라는 키워드와는 완벽하게 부합한다. 우리나라에는 국내 마케팅 회사들은 많이 존재한다. 경쟁 또한 치열하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을 위해 글로벌 마케팅을 제대로 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직접 글로벌 마케팅을 공부하고 실행했다. 그렇게 화이트보드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유튜브 영상, 영문 블로그, 해외 기사 송출, 구글 SEO 최적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했다. 그 결과 넥스트팬지아의 인바인드 문의 건 수의 급상승 결과를 얻었다. 그렇게 글로벌 마케팅은 우리 회사의 강점이 되었고, 우리 회사 마케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글로벌 마케팅을 대행하기 위해 Adpangaea라는 사업부 하나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셋째, 대표의 역량 강화
직장 생활에서의 4년을 이사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많은 고객사의 대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화장품 산업만큼 롤러코스터를 탄 산업은 없을 것이다. 그 격량의 소용돌이 안에서 흥하고 망하는 기업과 대표들을 정말 많이 지켜봤다. 이를 바라보며 내린 결론은 기업은 딱 대표의 역량(그릇)까지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성취와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화장품 산업의 급속한 성장의 흐름에 그들의 숨은 노력이 더해져 급속한 성장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 기업들의 지금은 어떤가? 그 성공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얼마나 되는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성취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성취는 오히려 독이 되어 성취 이전에 갖고 있던 것까지 함께 갖고 떠나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기업의 대표는 계속해서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사람의 역량을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최고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기업 운영, 영업, 네트워킹 등 스타트업 대표들은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독서를 해야 한다. 독서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독서를 통해 얻은 통찰력을 활용하여 계속 무언가 행동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꾸준히 반복해야 역량(그릇)을 키울 수 있다.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성공을 온전히 받아 들 수 있을 정도의 그릇을 키워놔야 한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시작했던 스타트업이 이제 2년을 바라보고 있다. 밖에서 보던 스타트업과 실제 경험을 해 본 스타트업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모든 게 생각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전제이긴 하지만, 생존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창업을 권하고 싶다. 비즈니스 모델 구축과 검증, 생존을 위한 매출 확보 노력, 그리고 대표자의 역량 강화를 통해 스타트업의 데스밸리를 극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