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일론 머스크의 예언, 낙관인가 저주인가?

by 로이윤

2025년 12월 일론 머스크가 인도 기업가 니키 카마스(Nikhil Kamath)와의 인터뷰 中


"앞으로 20년 안에 노동은 선택 사항이 될 것입니다. 원한다면 일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해 일할 필요는 없어질 겁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취미로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처럼 말이죠."



그는 주 4일 근무제 따위를 논하는 게 아니었다. AI와 로봇이 생산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인류가 '물질적 풍요의 시대(Age of Abundance)'에 진입할 것이라 호언장담한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그의 말은 가난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마트에 가면 채소가 넘쳐나지만, 주말농장에서 땀 흘려 상추를 키우는 사람들, 머스크는 우리의 직업이 바로 그 '주말농장'처럼 변할 것이라 예언했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카드 값을 걱정하며 밤잠을 설칠 필요도 없는 세상.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찬 유토피아다.


하지만 이 장밋빛 전망 앞에서, 나는 기묘한 공포를 느낀다. 과연 '결핍'이 사라진 인간은 행복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1968년, 한 과학자가 수행했던 섬뜩한 실험을 되돌아봐야 한다.


쥐들의 천국, 유니버스 25

동물행동학자 존 B. 칼훈(John B. Calhoun)은 쥐들을 위해 완벽한 세상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유니버스 25(Universe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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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머스크가 말한 미래와 똑같았다. 질병은 차단되었고, 천적은 없었으며, 적정 온도가 유지되었다. 무엇보다 물과 먹이가 무한대로 공급되었다. 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곤 그저 먹고, 자고, 번식하는 것뿐이었다. 생존 투쟁이 사라진 세상에서 쥐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개체 수가 정점을 찍기도 전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쥐들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름다운 멸종

수컷 쥐들은 더 이상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았고, 영역을 지키지도 않았다. 그들은 구석에 처박혀 하루 종일 털을 다듬는 데만 몰두했다. 칼훈은 이들을 '아름다운 자들(The Beautiful Ones)'이라 불렀다. 겉모습은 윤기가 흐르고 완벽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죽어 있었다. 사회적 상호작용도, 번식 본능도 사라진 '살아있는 시체'였다.

암컷들은 새끼를 낳아도 돌보지 않고 버리거나 공격했다. 폭력과 무관심, 그리고 극단적인 자기애. 결국 이 완벽한 천국에서 쥐들은 단 한 마리의 새끼도 낳지 않은 채 전멸했다.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역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래는 쥐와 다를까?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세상은 '유니버스 25'의 확장판이다. AI와 로봇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아침에 눈을 떠야 하는가?


우리는 '생존'이라는 거대한 압박 때문에 고통받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압박 때문에 성장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에서 이기고, 가족을 부양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이 알고리즘과 기계에 의해 '0원' 짜리 무료 봉사, 즉 단순한 '취미 생활'로 전락한다면?


어쩌면 미래의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뉠지도 모른다. 가상현실 속 쾌락에 빠져 번식을 포기한 '아름다운 자들'과, 사라진 자신의 쓸모를 찾기 위해 거리에 불을 지르는 '폭도들'.


생산비용이 0이 되는 날, 우리는 배고픔에서는 해방되겠지만 더 거대한 적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바로 '권태'와 '무의미'다.


나는 초등학생 쌍둥이 아들 둘을 키우는 아빠다. 퇴근 후 전쟁 같은 육아를 치르고,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떼쓰는 녀석들을 달래다 보면 몸은 녹초가 된다. 가끔은 나만의 시간은 고사하고, '멍하니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생각할 시간 없음'이 나를 살게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등교를 챙겨야 한다는 강제성, 내가 벌어오지 않으면 우리 가족의 삶이 흔들린다는 무거운 책임감. 이 '피곤한 의무'들이야말로 내가 아침에 눈을 떠야 하는 이유이자, 내 삶의 궤도가 이탈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중력이다.


만약 AI 로봇이 내 아이들을 완벽하게 키워주고, 나는 그저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만 보면 된다면? 내 몸은 편해지겠지만, 나는 곧 내 집에서조차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공허함에 시달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쥐 실험 속 '아름다운 자들'이 겪은 지옥이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이 알고리즘과 기계에 의해 '0원' 짜리 무료 봉사, 즉 단순한 '취미 생활'로 전락한다면?

어쩌면 미래의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뉠지도 모른다. 가상현실 속 쾌락에 빠져 번식을 포기한 '아름다운 자들'과, 사라진 자신의 쓸모를 찾기 위해 거리에 불을 지르는 '폭도들'.


생산비용이 0이 되는 날, 우리는 배고픔에서는 해방되겠지만 더 거대한 적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바로 '권태' '무의미'다.


우리의 질문은?

자본주의는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천국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25번째 쥐의 실험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앞으로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의 경제학적, 사회적 이면을 낱낱이 파헤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