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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Sep 18. 2023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여기는 부산. 난 지금 거실 테이블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분명 얼마 전까지 피렌체 여행기를 쓰고 있었는데. 이제 베로나에 갔던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어수선한 상황이 길게 이어져 집중이 되지 않았다. 6월 말, 한국으로 돌아와 두 달 정도 친정에 머물렀다. 그리고 9월 초 이곳으로 내려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잡히지 않는 하루 루틴. 게다가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까지. 뭐 다 핑계일 뿐이지만.


 부산 집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쓰던 이야기로 돌아가보려 했지만, 쓰다 말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지금 내 머릿속은 부산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걸 뱉어내지 않으면, 뇌의 깊숙한 곳에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는 이탈리아를 끄집어내기 어렵다는 걸.




 부산에 내려오기로 결심한 건 지난겨울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우리는 종종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지난겨울도 역시 수도권보다는 훠얼씬 따뜻한 부산의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신축 오피스텔을 보았고. 나는 늘 그렇듯 부동산앱을 꺼내 시세를 확인했다. (여행을 가서도 길을 걷다 부동산이 보이면 멈추어 서서 시세를 확인한다. 피렌체 부동산 시세도 알고 있다.) 정면 바다뷰라 당연히 비쌀 줄 알았는데. 월세 시세가 생각보다 저렴한 게 아닌가. 신축이라 매물이 많이 나와서 그런가.


 우리 겨울마다 부산에 내려오는데. 아예 부산에서 한 번 살아볼까,라고 나는 말했고. 그는 언제나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그래’라고 말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우리의 부산행이 결정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미리 찜해둔 집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계약까지 마무리하고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나 세상일이란 내 뜻대로 그리 쉽게 돌아가지 않는 법. 방 하나, 거실하나에 창고까지 있다는 그 오피스텔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공인중개사님이 어두운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두 분이 살기에는 조금 좁죠?”

  “네, 그러네요. 생각 좀 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집을 보고 나서 우린 침울해졌다. 그 신축 오피스텔을 제외하면 너무 비싸거나 낡았다. 초초 미니멀 라이프로 살면 그 오피스텔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 건데 이참에 짐을 확 줄일까. 그래 그러자, 다 버리지 뭐,라는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부동산이었다. 광안리 조금 안쪽에 있는 매물을 몇 개 찾았으니, 내일 함께 보러 가자는 연락이었다.


 공인중개사님은 다른 부동산에 연락해 세 개의 매물을 더 보여주었다. 크기와 위치는 딱 좋은데 북향이라 어두운 집 하나와 저층이긴 하지만 밝고 깨끗한 집.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가 보이는 이쁜 집 하나 보고 가라며 덤으로 보여준 집. 거실 창밖으로 광안대교와 푸른 바다가 보이는 집이었다. 원래는 이런 데서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덤으로 본 그 집은 우리 예산 밖에 있었다.


 그와 마주 앉아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끌리기야 바다가 보이는 집이지만, 현실을 생각해서 저층이지만 밝고 깨끗한 집을 계약하기로 결심하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바다뷰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비싸서요. 그 저층집으로 계약할게요.”

  “내가 혹시나 하고 그 바다뷰 집주인이랑 얘기해 봤는데. 전세를 깎아준데요. “


 아니 이 분들. 처음 보는 우리한테 왜 이렇게 친절한 거야. 자기 매물도 아닌 걸 찾아주고, 부탁하지 않은 전세가도 깎아주고. 덕분에 우리는 광안대교가 보이는 그 집을 무사히 계약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이사 온 지 2주가 지났다. 살아보니 집을 구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여기는 너무 관광지라는 거. 약국이라던가 은행이라던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우리 집을 기준으로 둥글게 원을 그린 바깥쪽에 존재했다. 마치 섬처럼. 여행과 삶은 이렇게 다른 거지.


 그래도 거실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부산에 오길 참 잘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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