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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의거북 Jul 11. 2021

[방황하고 있습니다]총알을 모으는 시간

배움과 깨달음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배움’과 ‘깨달음’인 것 같다.

나는 깨달음이 있는 대화와 독서를 좋아하고 배움이 있는 환경을 좋아한다.

그 두가리를 놓쳐 버리면 재미가 없고 정체되어 버린다.

물론 창작하는 것에도 재능이 있지만 

가끔 뭔가를 막 쏟아재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삶에 아주 중요한 기둥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창작 없이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조금 괴롭겠지만 살 수 있을 것이다. ‘배움’과 ‘깨달음’이 있는 삶이라면.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고 깨달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런 환경에서 빠져나올 길 없이 하루하루가 반복된다면

나는 지독한 우울함에 사로잡힐 것이다.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 

폭 넓게 생각하고 대화하기를 즐기는 사람들, 

깊게 사고하고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고를 다듬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 들과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      


오늘은 학원의 이론 선생님과 대화했다.      

나는 요즘 늘 그렇듯이 나의 방황중인 상태에 대해, 무기력에 대해, 그러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대해 얘기했고, 선생님은 내 상태를 이해했다.      

주말에 카페 가서 멍 때리기


“뭔가를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고 모든 게 쓸데없는 일로 느껴진다는 거죠? 

뭔가 의미있고 성취감 있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이대로 있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고. 우리나라 환경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해요. 이겨야 하고, 뭔가를 이뤄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쓸모 없는 사람이고.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거고,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경쟁을 부추기고 순위를 매기고, 비교하게 만들고 그러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이 시간에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없어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뭔가를 해야 해서 뭘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생기면 누가 말려도 하게 되니까요. 제 친구는 지금 아이돌 덕질하고 있어요. 그게 인생의 낙이에요. 돈과 시간과 체력을 다 그 아이돌을 위해 쓰고 행복해 해요. 직장에서 돈을 열심히 벌어서 덕질에 쓰는 거예요.”


“그러면 그 분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남들이 내가 이러는 걸 알면 뭐라고 할까?’라는 고민 같은 건 안 하나요?”


“전혀요. 덕질은 자기만족인거고, 오히려 ‘내가 명품 가방을 사냐, 뭘 사냐. 누구한테 피해 안 주고 콘서트 가서 스트레스 풀고 오는 게 오히려 좋은 거 아냐?’라고 얘기해요. 자기만족감이 커요.” 


“그렇구나. 자기만족감.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요. 저는 달리기 할 때 행복해요. 그리고 드럼 칠 때도요. 드럼을 다시 배워볼까요? 기타도 배워보고 싶어요.”


“그래요. 뭐든 취미로 할 때 행복한 거예요. 직업이 되지 않으면!”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 삼지 말라’는 말이 있나 봐요. 5년 이상 글 쓰는 일을 했더니 이제 노트북 앞에 앉기도 싫어요.”     


누군가는 내가 기획력이 좋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가 촬영 현장에서 사람들을 컨트롤 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다시 작가를 해보라는 소리도 들었다.      

나도 내가 뭔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계속 미래의 나를 생각했다. 

나는 이 기획력과, 글쓰기와, 창작하는 능력을 가지고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나. 

나는 이 달란트를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4년 후 8년 후의 나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일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아무것도’하기 싫은 무기력에 시달렸다. 

그럴수록 스스로 자책했다.

 “나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가. 대체 왜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있는가.”     

나는 계속 미래를 생각했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늘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현실은 ‘벗어나야만 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현실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그걸 배웠다.      


삶의 즐거움이 여행이라던 이론 쌤은, 1년에 한번 남편과 해외여행을 간다고 한다. 

미리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계획을 짜는 그 모든 과정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여행 계획 자체를 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미없지 않아요?”

“아니요. 올해 여행 못 간 만큼, 그 돈을 더 모아서 내년에 더 큰 스케일로 여행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그 날을 위해 총알을 모으는 중이에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지 마세요. 체력을 모으고 총알을 모으세요.”     

그렇구나.

총알을 모으는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나도 다시 뭔가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필요한 의욕을 모으고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질 때까지 체력과 즐거움을 모으는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다시 현재에 발을 딛었다. 


느리게. 그리고 또 느리게 보내는 일상.


미래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지나쳤던 ‘현재’의 풍경들이 다시 떠올랐다.      

달리기를 할 때 행복해 하는 내 모습,

만화책 보면서 즐거워하던 내 모습, 

맥주 한잔 하면서 일기장에 쓸데없는 글을 계속 끄적이며 만족스러워 하던 내 모습.      

그런 것들이 내 현재의 즐거움이었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에만 집중해서 

현재의 즐거움을 모두 놓쳐 버리고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잊지 않기 위해 말해본다.     

현재를 살아야 미래가 있다.           


현재의 즐거움들을 누리며, 언젠가 내가 ‘해야할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될 때까지, 

지금은 총알을 모으는 시간이다.         


      

요즘 나의 최애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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