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매우 사적인 순간

by 이월의거북

달리기를 하는 순간은 매우 사적인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편한 달리기를 위한 복장을 갖춘다.

가볍고 편안해서 자꾸만 입게 되는 목 늘어난 티셔츠, 땀으로 샤워를 한 꼬질한 얼굴, 숨길 수 없이 고르란히 볼품없는 거친 숨소리.


본능적으로 한걸음을 더, 더 앞으로 뻗어내는 단순함 속에. 역동적이고도 적나라한 그 달리기의 순간에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이 지극히 사적인 순간 속으로 소환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 사람은 내게 참 특별한 사람인거다.


내 지극히 사적인 순간 안에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그래도 되는 사람.

나에게 참 편안하고 좋은 사람.

달리는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내 그림자,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그 사람과의 대화를 상상한다.


-이거 봐. 여기서 이 시간에 보는 하늘이 제일 예뻐.

-그러네.


땀 흘리며 나아가는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목격되는 짧은 찰나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는 말한다.


-같이 뛰자.


아주 많은 속내가 숨어 있는 그 말을 해버린다.

러너의 플러팅인가.


같이 카페 가자, 같이 영화 보자, 라는 말보다.

'같이 뛰자' 라는 말은 조금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상대는 알까.


내가 땀 범벅이 되어 고통스러워 하는 민낯을, 너에게는 보여줘도 괜찮아.

내가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좋은 순간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너는 내게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야.

라는.


오늘도 지극히 주관적인 풍경, 주관적인 감정을 품고

나의 달리기를 해나간다.


언젠가 함께 달리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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