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고르기
“요즘은 우리 때랑은 마인드가 틀리다니까.”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직무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적어도 취업과 이직의 관점에서 ‘그들의 시절’과 ‘요즘의 순간’이 큰 생각의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일하는 이유’인 것 같아서입니다. 지금 회사에서 왜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하고 돌이켜볼 때 그다지 눈부신 답변을 내리지 못하는 어른들이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의 직장에 대한 고민은 조금 많아 보일 수 있겠죠. 워낙 고민이 많아 선택 장애까지 겪는 우리는 무엇 하나 그냥 고르지 않으니까요. 특히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가장 많은 숙고를 들이는 부분이 ‘직무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틀리다니까’를 ‘다르다니까’로 고쳐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던 것이 그래서 두 번째 이유였습니다. 틀린 것 하나 없는 차이점을 자꾸만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순간의 말실수인지 아니면 깊게 박혀있는 어떠한 형태의 무의식의 발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니 ‘직무’만 떠올리면 경직되어 버리는 사고의 흐름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워낙 ‘직무 적합성’, ‘직무 역량’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직무를 골라야 한다는 말을 듣다 보니 혹시 내가 ‘틀린’ 직무를 골라서 서류나 면접에서 불합격을 한 건 아닌지,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들잖아요. 어쩌면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른’ 길을 잠시 걷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는데도요. 그래서 선택하려는 그 직무들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조금이라도 먼저 알 수 있다면 조바심을 줄이고 생각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히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자기소개서는 미리 준비해야 잘 써집니다.’의 첫 이야기로 [직무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직무 선택은 이력서 준비의 시작입니다.
핏(Fit)이 맞는 직무가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더 재밌고,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해낼 수 있는 방법을 나도 모르게 알 것 같은 일이라면, 그 일이 바로 ‘역량’을 갖추고 ‘적합성’이 높은 직무겠죠. 그런데 그런 직무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작부터 잘 찾아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또 어떤 특정 역량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특정한 직무만 수행해야 하는 것도 분명히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마음에 들었던 직무에도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나의 포지션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뀔 수도 있고, 직무 내의 디테일한 업무가 변동되어 더 이상 내가 좋아하던 그 일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게 되는 거죠. RPG 게임을 하는 것처럼 한 번 고른 전사나 마법사만 평생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직무는 언제든 바꿀 수도, 그리고 바’뀔’수도 있어요. 어떤 측면에서 현실은 훨씬 더 유동적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더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충분히 써서 직무를 골라도 괜찮아요. 우리가 일터에서 하는 일은 결국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고 ‘직무’는 그 과정을 단계로 나누어서 표현한 것뿐입니다. 개발, 생산, 구매, 조달, MD, 영업, 마케팅, 기획, 총무, 회계, 세무, 법무 등등 옛날에는 직무가 그대로 부서 이름에 드러나기라도 했지, 요즘은 부서명도 직무명도 꽤 현란해서 듣고도 바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해야 할 일이 먼저이고, 그 일을 지칭하는 말들은 부르기 나름입니다. (Solution Provider라는 직무는 파는 일을 할까요, 만드는 일을 할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에 필요한 자원이 많을수록 과정은 길어집니다. 그 과정의 길고 짧음에 따라 회사의 규모가 커야 할 수도 있고, 혹은 그렇게 클 필요가 없기도 해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스타트업의 차이입니다. 중요한 건 ‘필요한 자원의 규모’입니다. 만들어낸 재화, 서비스의 가치 하고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라이센스가 필요한 전문직은 그들이 제공하는 전문적인 서비스의 기획, 생산, 판매를 모두 스스로 합니다. 서비스의 Supply Chain을 소규모의 전문가가 직접 대응하다 보니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도 많아야 하고, 체득하기 위한 수련의 시간도 길어야 해요.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직무를 몇 안 되는 인원이 나눠서 해냅니다. 일 배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말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성장 과정을 제공하겠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사업 아이템이 성공하면 나눠 갖는 성과는 매우 큽니다. 반대로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일은 잘게 나뉩니다. ‘회계’라고 묶여 불렸던 한 덩어리의 업무들이 큰 회사에서는 자산관리, 원가관리, 결산, 감사 등으로 쪼개집니다. 결산을 하는 사람은 원가를 모르고, 매출을 맡은 사람은 자산 현황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대기업의 장점이자, 한계점이기도 해요.
직무는 바뀝니다. 자의로, 혹은 타의로.
그래서 보통 조직에서는 유사한 업무에 따라 부서를 나누고, 어떤 기능을 갖춘 하부 조직은 언제는 A라는 부서에 붙였다가, 또 언제는 B라는 부서로 옮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서 사이 존재하는 그레이 영역 때문에 많은 직무가 어떻게든 서로 느슨하게 연결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해야 할 ‘일’이 먼저지, 그 일을 해내는 직무가 먼저가 아니거든요. 회사가 커지면 원래 한 사람이 했던 일을 나눠서 하고, 회사가 작아지면 나눠서 했던 일을 혼자 해내야 합니다. 결국 가치가 만들어지는 일련의 프로세스순으로 X축에 직무를 나열하고 각 직무만의 특수성 정도를 Y축에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떤 특정한 직무별로 톡톡 위로 튀는 낙타 봉우리 같은 그래프가 그려진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업무의 특수성이 짙은 지점들을 더 큰 범위로 (직군)으로 묶어서 쉬운 말로 풀어써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일
2)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일
3) 실현된 아이디어를 파는 일
4) 1)2)3)의 일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일
이렇게 헤쳐 모여가 반복되는 직무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는 결국 “내가 성장하려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엔지니어의 커리어로 성장하고 싶다면, 어떤 환경 변화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술 장인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들을 얻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변화에 휩쓸리는 것도, 또 미동 없이 고여있는 것도 커리어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버텨보면 필요한 역량은 하나씩 쌓여나갑니다. 바뀌지 않는 건 없습니다.
결국 내가 가려는 길이 나의 직무가 됩니다.
이어지는 글부터 직무의 종류를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런 직무를 써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내가 쓸 직무가 대략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혹시 이미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는 포인트는 어디일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어디에 어떤 ‘일’이 위치해 있는지 파악해두기만 하면 점들을 연결하는 건 내 의지에 달려있으니까요. 매핑(Mapping)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3.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1) - 스케치하기
4.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2) - 지우기
5.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3) - 색칠하기
6.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1) - 자소서용 에피소드
7.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2) - 문제 해결 경험
8.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3) - 장점 및 역량
9.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4) - 성장 과정
10.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5) - 지원 동기
11.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6) - 향후 계획
12.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7) - 사회 이슈
13. 자기소개서는 미리 준비해야 잘 써집니다 (1) - 축적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