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by 한량돈오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이다.


1) 문화는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생활양식 전체’ 또는 ‘자연에 대립하는 인간의 행동과 그 모든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에 따라 문화와 국가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은 통상적인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흔히 문화국가를 말할 때 문화는 일정한 범위의 영역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좁은 의미의 문화 개념은 정치·경제·사회의 영역과 구별하여 “인간의 정신적·창조적 활동의 영역에 대한 합의 또는 집합 개념”이다(Udo Steiner, Kulturauftrag im staatlichen Gemeinwesen, VVDStRL, 제42권, 1984, 42쪽; 김수갑, 문화국가를 위한 법체계 검토, 문화정책논총, 제18호, 2007, 10-11쪽 참조).

전통적인 문화영역은 학문·예술·종교 등의 분야다. 문화 활동의 소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파생적 문화 분야는 문화재 보호, 지식(재산)권, 교육, 문화 표현의 자유(언론·출판·집회·결사 등 매체) 등의 분야다.


2) 헌법의 문화 보장 원칙은 국가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 등 문화에 대한 보장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보호․지원․조성함으로써 시민들이 충분히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원칙이다.


3) 문화국가로 이해하는 견해는 문화와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실 헌법상 문화국가의 개념은 독일의 국가 전통에 속하는 독일적인 개념이다. 그 의미는 “문화에 대하여 적극적․주도적인 역할을 부과하는 국가, 적어도 문화가 활동하는 일정한 틀을 만들어 주고 혹은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며 혹은 지켜주는 역할을 당연히 기대하고 혹은 부과하는 전통이 내포되어 있는 국가 개념”이다(최대권, 문화재보호와 헌법, 법학, 제44권 제3호, 2003, 13쪽).

독일에서 문화국가 개념을 시민혁명의 실패로 인한 역사적 맥락의 산물로서 혹은 정치·문화적 및 지적 전통과 지성적 작업의 산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문화국가 개념을 우리 헌법의 명시적 규정을 찬찬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덜컥 끌어들이는 것은 다양한 시민적 문화 대신에 국가에 의한 획일적 ‘관제문화(官製文化)’ 강요가 초래하는 위험성을 간과한 잘못이 있다. 전두환․노태우의 군사 반란과 내란 이후 개정된 1980년 헌법에서 헌법 제9조가 처음 등장했음을 고려하면, 독일식 문화국가 개념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4) ‘문화국가’ 개념을 원용한다면, 문화국가는 국가가 문화 활동 자유를 존중․보장하고 문화를 보호․지원․조정하는 국가다. 문화국가의 개념적 징표는 ① 문화의 국가적 자유, ② 문화에 대한 국가적 기여, ③ 국가의 문화 형성력, ④ 문화의 국가 형성력, ⑤ 문화적 산물로서의 국가 등을 들 수 있다(E. R. Huber, Zur Problematik des Kulturstaates, 1958, 3-30쪽: 권영성, 헌법학원론, 법문사, 2010, 143쪽에서 재인용).

문화와 국가의 관계에 대하여 문화영역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율영역인 사회에 속하는 것이고, 국가는 개인적 자율의 틀을 만들고 개인의 자율에 맡기기 곤란한 일이나 개인의 자율적 활동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해소하는 보충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5) 문화에 대한 비교 입법례로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22조와 제27조가 있다. 제22조는 문화적 권리의 일반적 근거 규정이다. 즉, “모든 인간은 …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각국의 구조와 자원에 따라서,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불가결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들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27조는 문화적 권리의 구체적 근거 규정이다. 즉,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전과 그 혜택을 나눠 가질 권리”(제1항)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산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제2항)를 보장한다.

1966년 12월 16일 발효한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는 세계인권선언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다. 문화의 권리는 “⒜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 과학의 진보와 응용에서 이익을 누릴 권리, ⒞ 자신이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에서 이익을 받을 권리”(제1항)이다. 국가는 문화의 권리를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과학과 문화의 보존, 발전과 보급에 필요한 제반 조치를 해야 하고(동조 제2항), 과학적 연구와 창조적 활동에 필수적인 자유를 존중해야 하며(동조 제3항), 국제적 교류의 장려와 발전 그리고 과학과 문화 분야에서 협력을 장려해야 함(동조 제4항)을 확인하고 있다.

문화 권리 개념은 1976년에 유엔에서 채택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를 위한 국제규약’과 1981년에 채택한 ‘인간과 인민 권리를 위한 아프리카 헌장’에서도 나타난다.

유네스코는 문화 권리의 확인에 주도적으로 이바지했다. 1966년 파리에서 개최한 유네스코 제14차 총회는 ‘국제 문화 협력의 원칙에 관한 선언’을 했다. 1968년에 개최한 ‘인권으로서의 문화적 권리’에 관한 전문가 회의는 ‘인권으로서의 문화적 권리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1968년 성명은 노동권, 여가(餘暇)의 권리, 사회보장권에 이어 문화적 권리가 인류가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권리임을 분명히 했다.

2000. 12. 21. 「문화의 다양성과 문화유산에 관한 동경선언」은 “다양한 문화유산을 인식하고 풍부히 하며 전승함에 공헌하는 것과 교육․대화․창조성․해석․중개․이해력의 구축, 지식의 공유에 따라 능력과 수단을 발달시키는 것은 모든 정부조직․비정부조직․공동체․문화적 집단과 개인의 책임”임을 담았다(<http://www.tobunken.go.jp/kokusen/japanese/SYMPOSIUM/symp0012.html>, 검색일: 2004. 5. 28. 영어 원문을 일본어로 옮긴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함).

2001년 ‘문화 다양성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에서는 문화적 권리가 인권을 구성하는 핵심적 개념임을 지적하면서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제기한 문화적 권리의 기본 정신을 수용했다.


6) 한국에서는 2006년 5월 21일 공포한 ‘문화헌장’이 주목할 만하다. 2004년 출범한 문화헌장제정위원회(위원장: 도정일)가 수차례에 걸친 공청회와 토론회, 전문가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초안을 작성하여 2006년 5월 21일 공표했다.

문화헌장의 의미는 국가가 만들어 국민에게 내리는 ‘국가주의적 지침’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제안하고 정부가 수용하는 형식의 아래로부터의 헌장인 점에 있다(노명우, ‘문화헌장’ 제정과 문화정책의 과제, 문화과학, 제46호, 2006, 220쪽). 즉 시민의 문화적 권리와 국가의 책무를 주 내용으로 한 헌장이자 시민사회의 요구를 국가가 수용하는 협약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헌장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법제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7) 헌법은 문화 관련 기본적 인권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화의 구체적 영역에서 핵심적인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있으면서 헌법 원칙으로서 문화 보장 원칙을 규정함과 아울러 국가의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화와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는 문화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동시에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보호와 지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문화 다양성 보호와 지원 정책의 배경은 첫째, 자본과 시장의 경제 권력에 대한 문화의 종속 및 불건전한 상업적 문화의 폐해다. 둘째, 문화적 불평등, 즉 문화비용의 앙등과 문화 향유의 불평등이다. 셋째, 제국주의적 문화 종속 현상이다. 이것은 문화 식민주의의 폐해다. 국가는 국가 권력에 의한 문화의 종속을 배제하는 한편 여타 권력에 의해 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와 지원을 해야 한다.

국가는 문화예술계가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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