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부정하고 싶었을까
오랜만에 찾는 브런치다. 여름에 쓴 글이 마지막, 가을은 그저 스쳐 지나갔고 이젠 곧 겨울이다.
그동안 이곳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글쎄.
별 다를 것 없는 생활이었고 늘 그래 왔던 그런 삶이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으론 같은 생활이었지만, 내 숨을 옥죄어오는 사람이 등장하는 바람에 내 삶은 예전 같지가 않았다.
회사 밖에서도 주말에도 쉬는 날에도 옥죄어온다. 숨이 막힌다. 이토록 숨이 막히는데 글을 쓸 여유가 생길 리가.
가끔씩 이런 사람들이 내 인생에 나타날 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하는 그런 인간. 어떡하지?
어쩜. 난 이번 여름 “괜찮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누가봐도 안 괜찮은데. 나는 또 극복해내지 못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이 사회에 몸을 담그며 나는 점점 도태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고.
혐오가 만연해가는 이 상황에서 차라리 도태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설령 내가 사회 부적응자일지라도.
유치한 분위기를 조성해가고, 그것에 동조하길 바라고, 가식적으로 회사를 다니라고?
그래야 하는 일말의 이유도 모르겠고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 천만번이고 낫다.
그럴 거면 차라리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웃는 승무원을 뽑지 그래?
이틀 전, 그러니까 지난 금요일. 친한 선배가 퇴사를 했다. 같은 이유로 우린 힘들었으니까.
이 헤어짐에 있어 정작 나와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나를 걱정했다.
서로 의지를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선배가 있건 없건 다를 건 없었다.
선배가 있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선배가 없다고 상황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배랑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우린 계속 볼 사이니 별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었는데, 다들 나를 걱정했다.
차라리 그 걱정이 마땅히 할 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상황도 안 된다는 것이 몹시나 슬프다.
내 일에 대해 굉장한 회의감을 갖게 되는 것.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 조금의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초래한 한 사람이 대단할 따름. 웃음만 나오네.
대학생 때처럼 옳고 그름이 명확한 세계에서 살면 어찌 쫌 다를까 싶다가도,
내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게 이런 모습이었나 싶어 사기를 당한 기분이랄까.
씁쓸함을 넘어 이젠 폭력적 욕구마저 들 판이다. 화가 난다.
나는 야망 없고, 평판에는 무감각한, 오로지 내 욕심만 쫓는 일개의 일개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