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지귀의 노래

by 마정열

“행위 뒤의 모든 말은 변명이지.”

“변명? 그렇지 변명에 불과해. 이젠 변명하기도 싫어. 끝내고 싶어.”

조명수가 쓸쓸하게 웃었다.

동하는 그 웃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웃음 같았다.

“나쁜 자식, 그녀에게 처음 지옥의 문을 연 것도 너였고, 또 다른 지옥으로 이끈 것도 너였어. 용서할 수가 없어.”

“나도 이제 용서라는 단어가 지겨워. 이젠 끝내야겠어.”

“그래 끝내자. 너의 죄악을 씻어주지. 너의 영혼은 지옥을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너의 죄 많은 몸뚱어리는 지상에서 흔적을 없애고 너는 가볍게 저승으로 가라.”

동하는 준비해 온 휘발유를 조명수의 몸에 쏟아부었다.

조명수가 휘발유를 온몸으로 받으며 말했다.

“고맙군. 그런데 너의 죄는 누가 씻어주지?”

“무슨 죄?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것도 죄가 되나?”

“사랑을 지킨다? 상대방은 원하지도 않은 사랑을 지킨다?”

“비웃지 마! 네가 생각하는 사랑만이 사랑은 아냐.”

“그래, 너의 사랑도 사랑이지. 너의 사랑은 세상에서 자신의 사랑만이 소중하다는 독선이고, 너의 사랑은 결국에는 모두를 지옥으로 빠트리는 사랑이지.”

“이 자식이!”

동하는 휘발유 통을 던지고 달려들어 조명수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그럼 너의 사랑은 진실하다는 것이냐?”

“사랑? 내가 사랑을 이야기했던가? 그러고 보니 나는 사랑도 없이 살았군. 부럽다. 사랑을 가진 네가.”

“비웃지 마, 이 자식아!”

동하는 조명수를 미리 파놓은 웅덩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손과 발이 결박당한 조명수는 힘없이 웅덩이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동하는 주저 없이 성냥불을 그어 웅덩이 속으로 던졌다. 불은 휘발유에 젖은 조명수의 몸으로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조명수의 몸은 심하게 흔들렸다. 불길이 따라 흔들렸다. 고통으로 헐떡이며 조명수가 말했다.

“잘 살아라, 사랑아!”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모르겠다. 조명수는 괴로움으로 몸을 뒤틀었다. 여전히 웃는지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내 조명수는 움직임이 없이 쓰러졌다. 그의 몸은 정화의 불길로 휩싸여 있었다. 정화의 정령인 불은 육신을 지상에서 없애고 영혼을 깨끗이 씻어 저승으로 데려갈 것이다.

동하는 한참을 불길에 눈을 주었다. 불길의 심연에서 그가 웃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동하는 불에 의해 그의 죄가 씻겨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그는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동하는 삽으로 웅덩이 옆에 쌓아두었던 흙을 퍼서 불타는 그의 몸 위에 던졌다. 흙은 그의 몸을 덮고 점점 웅덩이를 메웠다. 웅덩이가 메워지고 조명수의 몸은 헛간 속의 땅속으로 잠겼다. 그의 영혼도 어둠 속에 갇히길 빌었다.

그녀는 불타는 조명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을 잃었다. 동하는 작업을 마치고 쓰러져 있던 그녀를 안고 방으로 들어와 뉘었다.


젖은 수건에 닦여진 그녀의 얼굴은 그 옛날 백색의 코스모스 같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동하는 정신을 잃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동하는 결박된 그녀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누었다. 고등학교 그 가을부터 꿈꾸던 모습이었다.

길었던 하루였다. 잠이 쏟아져 몰려왔다.

얼마만큼 잤을까? 동하는 몸에 흐르는 액체의 기운에 눈을 떴다. 동하의 망막에 휘발유를 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맺혔다. 그녀의 표정이 궁금했다. 휘발유의 커튼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다.

동하는 그녀가 죄를 씻어주는 성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하는 다시 눈을 감고 쏟아지는 휘발유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랑으로 몸이 불타 버렸네.


지귀의 슬픈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옛날에 지귀(志鬼)라는 젊은이가 있었대요. 그가 하루는 지나가는 여왕을 보았대요. 여왕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단번에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다나 봐요, 바보같이. 그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여왕을 부르고 다녔지요. 그를 사람들은 미쳤다고, 당연히 미쳤다고 했겠지요. 지귀는 사람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지귀는 거리로 뛰어다니며 "아름다운 여왕이여, 나의 사랑하는 여왕이여!" 이렇게 외치고 다녔어요. 어느 날, 지귀는 그렇게도 사모하던 여왕의 행차를 만났어요. 여왕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길이었지요. 지귀는 여왕의 행차로 달려들었지요. 당연히 여왕을 호위하던 군사에게 붙잡혔고요. 이를 본 여왕은 관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관리는 지귀에 대한 얘기를 했지요. 여왕님을 사모하다 미친 사람이라고.

여왕은 지귀가 자기를 따라오도록 관리에게 말한 다음 절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어 놓았어요. 지귀는 너무나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여왕의 행렬을 뒤따랐어요. 여왕은 절에 이르러 부처에게 불공을 올리고 그러는 동안 지귀는 절 앞의 탑 아래에 앉아서 여왕이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러나 여왕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지요. 기다림에 지친 지귀는 깜빡 잠이 들었어요. 여왕은 불공을 마치고 나오다가 탑 아래에 잠들어 있는 지귀를 보았어요. 여왕은 그가 가여운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팔목에 감았던 금팔찌를 뽑아서 지귀의 가슴 위에 놓은 다음 왕궁으로 들어갔대요. 여왕이 지나간 뒤에 잠이 깬 지귀는 가슴 위에 놓인 여왕의 금팔찌를 보고는 놀랐어요. 그는 여왕의 금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고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 잠들어 버린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겠지요. 지귀의 마음속 사모의 마음은 더욱 심해졌지요. 그 사모의 마음은 곧 불씨가 되어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는가 싶더니 이내 숨이 막히는 것 같았어요. 가슴속에 있는 불길은 몸 밖으로 터져 나와 지귀를 어느새 새빨간 불덩어리로 만들고 말았어요. 사랑으로 지귀의 몸은 불타고 있었어요. 바보 같은 사랑 때문에.


그녀는 성냥을 그어 불을 일으켰다. 성냥의 불빛 속에서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그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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