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또 다른 지옥

by 마정열

조명수는 드러나지 않는 최일순의 행적에 대해 수소문을 하기 위해 최일순을 알만한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래 어떻게 지내? 나야 그럭저럭 지내지. 그냥 궁금해서 전화했어. 그런데 말이야, 너 혹시 최일순 알지? 그래 그 최일순. 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말은 일순을 못 본 지 한참 되었다는 답변뿐이었다.

“일순이한테 무슨 일 있냐? 예전에는 일순이 말만 나와도 고개 돌리던 자식이 왜 이리 일순이를 찾냐?”

일순의 근황을 캐는 조명수를 고등학교 동창생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아냐, 오랫동안 소식이 없길래 그냥 궁금해서.”

동창생들의 의아심을 조명수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조명수는 최일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최일순? 작년에 안산에 있는 우리 회사 거래처에서 봤어. 별 이야기는 없이 그냥 헤어졌어. 그 자식 되게 불편해하더라.”

최일순의 소식을 전해 준 동창은 거래회사의 이름과 위치를 조명수에게 알려주었다.

조명수는 최일순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몇 가지 물건을 챙겼다. 사실 그 물건들은 안영일을 처리하고자 할 때 이미 다 구입해 놓은 것들이었다. 단지 사용만 안 했을 뿐이지. 전기충격기, 최루액, 이런 것들은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조명수는 회사에 며칠 동안의 휴가를 내고 안산으로 내려갔다. 최일순의 회사 앞에서 기다린 지 이틀 만에 조명수는 최일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이었다. 최일순은 바쁜 걸음으로 회사를 나섰다. 오 년 만에 보는 최일순이었지만, 조명수는 흐릿한 어둠 속에서도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조명수는 차를 천천히 몰며 최일순의 뒤를 따랐다. 퇴근 시간이 지난 공장지대라서 그런지 거리에 인적은 별로 없었다. 지하도가 눈앞에 보였다. 최일순이 그곳으로 들어가면 낭패가 될 것 같아 조명수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어이, 최일순!”

최일순의 뒤에 바짝 붙어 조명수가 최일순을 불렀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조명수는 주머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 돌아선 최일순의 몸속으로 전류를 흘려보냈다.

“어억!”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는 충격에 최일순의 몸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조명수는 쓰러지는 최일순을 안아 자신의 차에 실었다. 그리고 꼼짝을 할 수 없게 온몸을 결박했다.

서울의 경계 안으로 들어선 차는 은평구 구산동을 향해 달렸다. 차가 산 밑, 공터에 멈췄다.

그날 밤의 사건이 있었던, 건축이 중단되었던 건물은 끝내 완공을 보지 못하고 헐리고 말았는지 그곳은 공터로 남겨져 있었다. 다만 주위에 펜스가 둘려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 펜스는 너무나 허술하여 조금만 힘을 주고 밀면 밑부분에 사람이 드나들 만한 구멍이 생겼다. 펜스의 안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컨테이너 하나가 있었다. 컨테이너의 시건장치는 책받침 같은 얇은 판을 넣어 아래위로 몇 번 흔들면 쉽게 열 수 있었다. 조명수가 며칠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때 조명수는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낡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소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싱크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설거지를 기다리는, 곰팡이가 피어있는 식기들이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조명수는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돌려 보았다. 붉은 녹물이 쏟아져 나왔다. 컨테이너는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묵는 숙소인 듯했으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상태였다.

최일순의 정신이 돌아왔다.

“조명수?”

“잊지 않고 있었네?”

“그럼, 몇 년 친군데 잊을 수 있나.”

“친구라? 그래, 우린 친구였지.”

“한 가지만 묻자. 그날의 원한 때문인가?”

최일순이 묶인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꼭 원한 때문만은 아냐. 이제 그 일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 말이지. 그런데 미안해. 이곳에 오자고 하면 너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이럴 수밖에 없었어.”

“......”

“여기가 어딘 줄 알겠지?”

최일순이 차창을 통해 주변을 살피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랬겠지. 내가 순순히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야.”

“부탁이 있어. 저곳에서 한 사람만 만나줘. 싫다 하면 나는 또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어.”

최일순은 잠시 생각하는 눈치 더니,

"어쩔 수 없잖아.”

하며 조명수의 의견에 순순히 따랐다. 조명수는 최일순이 걸을 수 있게 발을 묶은 끈을 풀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펜스의 구멍을 통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최일순은 싱크대 쪽에 쭈그리고 앉고, 조명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잠시 늘어진 몸을 추스르고 조명수는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너머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납니다. 여기 구산동입니다. 잠깐 이리 와 주시죠.”

“구산동...?”

그녀가 잠시 말을 끊었다.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 장소에 대해 짐작하리라고 조명수는 생각했다.

“거길 내가 왜 가야 되죠?”

그녀는 조명수가 말한 그곳이 어딘 줄 알았다.

“끝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끝내다뇨? 저번에 얘기했잖아요. 이젠 그만두자고요.”

“그만둔다고 그만두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잠깐이면 됩니다.”

잠시의 정적이 끝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통화의 내용을 들으며 최일순은 자신이 최후의 번제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마친 조명수가 최일순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집요했지?”

“집요? 하긴 내가 좀 그랬지.”

최일순이 헛웃음을 흘렸다. 공원 술자리에서 엉겁결에 나온 납치 거사는 어설프게 끝이 났고, 이후 그 자리의 사람들은 그 일을 잊고 있었다. 그 일은 술김에 나온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일순은 그 일을 잊지 않고 끝내 실행에 옮겼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술김에 흘러가는 말이었는데 일이 그렇게 커질 줄이야.”

“너는 흘러가는 말이었겠지만 그렇게 듣지 않은 사람도 있어나 보지. 인간 행위는 모두 감정의 산물이 아닐까? 그때 내 감정이 그랬나 보군.”

여전히 최일순의 입가에는 야릿한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조명수는 그 웃음이 싫었다.

“개새끼! 왜 빙글거리며 웃는 거야.”

조명수는 가방에서 청테이프를 꺼내어 신경질적으로 최일순의 입을 봉했다.

조명수는 다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최일순의 웅웅대는 신음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조명수는 그것마저 제압할 마음은 없었다.

“나 무척 피곤해 조금 쉬어야겠어.”

괴괴한 침묵이 흘렀다. 거친 숨소리만이 이곳에 살아 있는 존재가 있음을 알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컨테이너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조명수는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그녀였다. 조명수가 열어주는 문으로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컨테이너 안의 상황을 살폈다. 한구석에 결박당한 최가 청테이프로 입마저 봉해진 채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 상황을 예상이나 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리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조명수는 최일순의 입에 봉해졌던 테이프를 뗐다.

“이제 끝내야지.”

조명수는 간단히 말하고 뒤로 물러섰다. 최일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일에 대해 김서윤에게 한마디만 해라. 너로 인해 지옥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한마디만 해라.”

“무슨 말?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그 말을 원하는 거니?”

최일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 말에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셋은 석상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섰을 뿐이었다.

그녀는 최일순을 응시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오 년 전 그날로 돌아가 있는 듯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조금씩 괴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천천히 자신의 옷고름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최일순은 물론이고 조명수까지 놀랐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곧 냉정을 회복한 최일순은 미동도 없이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블라우스를 벗고, 스커트의 지퍼를 내렸다. 스커트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으로 그녀가 최일순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렇게도 내 몸이 가지고 싶었니? 그럼 가져. 더러운 욕정을 배설하는 그런 몸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여인의 몸으로 여기고 내 몸을 가져. 그날 이후 나는 내 몸이 더러워 견딜 수가 없었는데... 그래, 나는 사랑도 할 수 없는 여자가 되었는데, 누군가의 손길만 닿아도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숨을 쉴 수가 없는데...”

그녀는 최일순의 손을 잡고 자신의 몸에 갖다 대었다. 최일순이 손을 빼면서 말했다.

“나도 너와 같은 사람을 알고 있지. 괴물과도 같은 놈의 장난으로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최일순의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그 옛날 덫에 걸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때의 김서윤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의 뒤로 흐릿한 영상이 잘게 부서지며 촘촘히 박혔다.


그 장면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김장로와 모친이 나란히 모텔에서 나오는 그 장면을.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던 그 짧은 광경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의 불로 몰아넣었는가?

최일순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유년 시절의 놀이공원과 유치원 재롱 잔치 때의 몇몇 흐릿한 기억뿐이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낡은 사진첩이었다. 아버지는 그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는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였다.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한 여자였다. 식당은 꽤 번성했다. 최일순은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이 지냈다.

어머니에게 최일순은 세상을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면 교회였다. 교회는 그녀가 유일하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곳이었다. 어머니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일요일이면 식당을 휴업하고 하루 종일 교회에서 지냈다.

밤늦게 들어와, 잠자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를 그는 잠결에 보았다. 어머니의 삶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최일순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어머니의 착한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근래 들어 밤에 늦게 들어오는 때가 부쩍 많아졌다. 최일순은 식당일 때문일 거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오히려 어머니의 고생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대학 2학년 가을 MT가 문제였다.

그해 과 MT를 마석으로 갔다. 밤이 이슥해지자 가지고 간 술은 다 떨어지고, 복학생 형들은 술을 찾았다.

최일순은 바람을 쐴 겸 자청해서 술을 사러 나갔다. 가게 주변에는 모텔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술을 사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올 때, 최일순은 모텔에서 나오는 김장로와 어머니를 보았다.

최일순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둘은 김장로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는 어둠 속에서 혼돈의 밤을 보냈다. 새벽이슬을 맞고 숙소로 들어간 그는 동료의 걱정과 선배의 잔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일순은 오랜 세월 외로운 시간을 살아온 어머니를 이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김장로에 대한 분노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불온한 상상으로 최일순은 견딜 수가 없었다.

곧이어 터진 권두섭의 유인물 사건에 이은 김장로의 성경연구회 회원에 대한 린치 사건은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자신은 천사의 대사장이고, 우리를 사탄의 무리로 칭하는 김장로를 최일순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최일순은 김장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싶었다. 그 방법을 조명수가 알려주었다.

“김장로 딸년을 조져 버리자.”

김장로에게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인 세월을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었다. 그에게 혈육의 훼손된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장로의 딸, 김서윤을 짓밟았다. 그러나 최일순은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그날 최일순은 어머니의 가게를 찾았다.

“엄마, 나 오늘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복수라 생각했는데 전혀 통쾌하지 않아.”

최일순은 용기를 내어 어머니에게 말을 꺼냈다. 모친은 불안한 눈길로 그를 주시하였다.

“김장로 그 새끼는 왜 그랬을까? 아내에 딸까지 있는 놈이 뭐가 부족해서... 그러면서 성도들 앞에서는 인자한 웃음으로 선한 목자 행세까지...”

최일순의 입에서 김장로라는 말이 나오자 모친은 깜짝 놀라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최일순은 더 이상 이야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일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가게문을 나설 때까지 모친은 그 자리에 돌부처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날 밤 모친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모친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가게도 직원에게 맡겨 놓고 출근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직원들도 모친의 행방에 대해 알지 못했다.

며칠 후, 최일순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모친에게서 온 편지였다.

“미안하다, 아들아.”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편지는 용서를 비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편지는 너를 볼 낯이 없으니 당분간 헤어져 지내자는 말로 끝을 맺었다.

최일순은 그 겨울 목적도 없이 전국을 헤매었다. 땅이 풀리는 봄 햇살 속을 혼자 걸어 군 훈련소로 들어갔다.

제대를 한 후에도 멀어진 모자 관계는 회복이 되지 않았다. 서로가 불편했던지 필요한 일은 전화로 해결했다. 최일순은 대학마저 중퇴하고 지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잊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너의 몸을 가지고 싶어서? 오해하지 마. 너의 몸뚱아리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 단지 나는 너의 더러운 핏줄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최일순은 이야기 끝에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처음 듣는 최일순의 이야기에 그녀는 적잖게 놀란 표정이었다. 놀라기는 조명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직도 니 애비인 김장로를 용서할 수 없어. 네가 대신 아비의 탐욕에 대해 용서를 빌어 봐. 그러면 내가 나의 옹졸한 복수에 대해 사죄를 하지.”

“거짓말하지 마, 이 새끼야! 이제 와서 왜 엉뚱한 변명이야. 비겁한 놈.”

그녀가 갑자기 최일순의 목을 잡고 누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버려.”

그녀의 입에서 비명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최일순의 목을 뒤로 밀쳤다. 결박당한 그의 몸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최일순의 머리가 소파 모서리에 “텅”하고 부딪쳤다.

“죽어, 죽어, 죽어버려.”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의 몸을 올라타고 목을 졸랐다.

그녀는 이성을 잃은 듯했다. 그동안의 모든 분노를 토해내듯 두 눈에 핏발이 맺혔다. 조명수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만해도...”

그제서야 그녀는 손아귀의 힘을 풀고 바닥에 쓰러져 오열을 했다. 조명수는 그녀의 옷가지를 주워 그녀의 몸을 가렸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침대에 가 뉘었다. 그녀는 벌레처럼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조명수는 최일순의 상태를 살폈다. 최일순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일순의 뒷머리가 소파의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넘어진 것이 결정적인 사인 같았다.

조명수는 밖의 동정을 살피며 컨테이너 밖으로 나가 비닐과 가방을 구입해 돌아왔다.

그녀는 최일순의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차린 듯했다.

“걱정 말아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조명수는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벌써 몇을 죽었는데 아무 일 없다니...

조명수는 최일순을 비닐로 감싸, 가방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컨테이너 안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들은 어둠이 짙어져 거리에 인적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초여름의 밤은 깊어갔다.

조명수는 그녀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지난 몇 달을 되돌아보았다. 영혼을 저당 잡히고 악마가 된 자신을 발견했다. 최일순이 집요했다면 그에 못지않게 자신도 집요했음을 조명수는 깨달았다.

조명수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의 흔적은 없앨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두가 죽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끝났다. 이젠 끝났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가슴 한구석의 정체 모를 응어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그들은 컨테이너를 벗어나 펜스 앞에 세워진 차에 가방을 밀어 넣고 그곳을 떠났다.

서오릉을 지나고, 구파발을 지나고 법원리를 지났다. 주위는 어두웠다. 도로 이정표는 이곳이 적성임을 알려주었다. 조명수는 산속으로 차를 몰았다.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달렸다.

둘은 어둠 속에서 최일순을 묻었다. 산속, 깊은 땅속에. 그 아픈 기억도 모두 묻어지기를 기도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허름한 여관방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 그녀는 조명수를 받아들였다. 조명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었다. 그것은 두려움의 몸부림이었다. 그것은 살인의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한 슬픈 영혼의 몸부림이자, 채워지지 않는 복수, 그 허망함의 허기를 달래는 의식이었다.

그녀는 인턴 생활을 끝내고 정사원이 되었다. 부서도 조명수와 같은 인사부였다.

육체관계는 지속되었다. 주로 그녀가 요구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과거보다 더한 지옥에서 살았다. 그것을 잠시라도 잊는 방법은 육체의 학대밖에 없었다. 그것은 조명수도 마찬가지였다. 악몽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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