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수는 그들에 대해 수소문을 했다. 최일순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알아보아도 그의 근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봤다는 희미한 정보뿐이었다.
그 사건 이후 동네에서 사라진 것은 김장로 일가만이 아니었다. 최일순이 조명수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그 사건 직후부터였다. 그 당시 조명수는 최일순이 일부러 자신을 피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최일순에 비해 안영일의 행적은 금방 드러났다. 안영일은 조명수와 같은 대학 출신이므로 그의 행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두세 차례의 전화로 안영일의 현재가 조명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영일은 부평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며 구로동의 오피스텔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며칠의 탐문 끝에 조명수는 안영일의 오피스텔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안영일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조명수는 끈질기게 그를 기다렸다.
어둠을 뚫고 택시 한 대가 오피스텔 앞에 멈추었다. 택시 문이 열리고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친 한 사내가 내렸다. 안영일이었다. 조명수가 그에게 다가섰다.
“누구...?”
반쯤 풀린 눈으로 자신의 앞에 선 조명수를 보고 안영일이 말했다. 조명수는 안영일의 몸에서 확 끼치는 술 냄새에 발길을 돌렸다.
기억도 못 하는 사람에게 과거를 반성하고 죗값을 받으라, 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조명수는 조금 일찍 회사를 나섰다. 그리고 안영일의 회사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안영일이 회사에서 나왔다. 차가 없는 그는 회사 앞에서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조명수가 차에서 내려 안영일을 불러 세웠다.
“어이, 안영일!”
안영일이 뒤를 돌아보았다. 조명수가 웃으며 다가섰다. 안영일이 놀라는 눈치였다.
“어, 너...”
“그래 나 조명수야. 어떻게 잘 지냈어?”
“응.. 그.. 래. 웬일이야?”
“웬일은, 동창들한테 니 소식 듣고 우연히 여길 지나다가 니 생각나서...”
같은 대학을 다녔지만, 그 사건 이후 그들은 학교에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조명수는 곧바로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하였고, 안영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 년만의 첫 만남이었다.
둘은 어색하게 손을 맞잡았다.
“바쁘지 않으면 술이나 한잔하지?”
“그... 그럴까?”
조명수의 청에 안영일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조명수는 자신의 차로 갔다. 여기는 안영일의 회사 근처이니 보는 눈이 있을 것 같아 우선 여기는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타!”
차문을 열고 조명수가 말했다.
안영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조명수의 차에 몸을 실었다.
조명수는 안영일의 회사 근처를 벗어난 곳의 술집 앞에 차를 세웠다. 술집 안은 조금 이른 시간인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술과 안주가 나오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 데서부터 둘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야기는 서걱거리며 흘러갔다.
술을 어느 정도 먹었는지 안영일의 얼굴빛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조명수는 안영일의 눈을 피해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안영일이 화장실을 간 틈을 타서 그의 술에 수면제를 타 놓았다.
화장실이 갔다 온 안영일이 술을 한잔 들이켰다.
“그날은 왜 그랬지?”
조명수가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갔다.
안영일은 눈을 끔벅거리며 할 말을 쉽게 찾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어.”
“참 무책임하구나. 아무 이유 없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수 있다니.”
“나도 많이 괴로웠어. 객기였지. 객기. 그 무리에서 빠지면 비겁자로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
안영일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이내 그는 고개를 탁자에 파묻었다. 조명수는 안영일의 그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 새끼야, 왜 이제 와서 그때 일을 다시 꺼내는 거야?”
갑자기 안영일이 고개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너무 늦게 꺼냈지. 이제야 내가 할 일을 알았으니까.”
조명수가 말했다.
“너의 일? 지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안영일은 혀가 꼬인 소리를 냈다.
“그래. 니 말이 맞아. 그때 나는 정말 바보 같았어. 다음 날로 너희들을 모두 죽여 버려야 했는데.”
“미친... 놈. 너와 자리를 같이 하는 게 이상하군. 너는 네 일을 해라. 나는 내 일을 하고...”
안영일이 끝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명수는 안영일을 잡지 않았다. 안영일은 수면제가 든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안영일이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갔다. 조명수도 계산을 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안영일은 곧 쓰러질 듯했다. 그는 더 걷지 못하고 담을 기대고 걸음을 멈추었다. 조명수가 그를 부축했다.
“걸어야지.”
조명수가 안영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에게... 무... 슨... 짓을...”
안영일의 몸은 힘없이 늘어졌다. 조명수는 정신을 잃은 안영일을 술집 앞에 주차에 놓은 자신의 차에 밀어 넣었다.
차는 서울을 벗어나 어둠의 한강변을 거슬러 올라갔다. 강은 어둠 속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조명수는 차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양구 어디쯤 되는 것 같았다.
그는 뒷좌석의 안영일을 살펴보았다. 안영일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늘어져 있었다.
차를 잠시 세우고 조명수는 휴대폰으로 안영일의 사진을 찍어 그녀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영일이라는 놈입니다. 나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전화기 속의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조명수는 전화를 끊었다.
조명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끈으로 안영일을 결박했다. 그리고 주변을 뒤져 큰 돌 두 개를 구해와 안영일의 발을 돌과 함께 묶었다.
조명수는 차를 다리 한쪽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시동을 끄고 안영일의 몸을 차 밖으로 빼냈다.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조명수는 안영일의 몸을 굴려 그를 다리 끝에 걸쳐 놓았다.
마지막으로 안영일의 말을 듣고 싶었다. 조명수는 안영일의 뺨을 세차게 때리고 몸을 흔들었다.
안영일이 부스스 눈을 떴다. 그리고 얼이 빠진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더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시뻘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다.
“왜 이러는 거야?”
거친 쇳소리였다.
“이젠 끝내야지.”
“왜 이러는 거야?”
정신이 돌아온 안영일이 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조금 전과 사뭇 다르게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였다.
“두렵니? 그때 나 역시 몹시 두려웠어. 그 여자는 어땠을 거 같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러니 제발 이러지 말자, 명수야.”
“아니, 나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나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 때문에 괴로웠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를 파괴할 정도는 아니었어.”
“그래 알았어. 미안해. 그러니 여기서 그만두자.”
“우습군. 지금 그 말은 오 년 전, 그 자리에서 내가 한 말과 같은 말인데... 그때 그만두었어야 했어.”
“나도 그날 이후 죄책감에서 한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었어.”
“잘 됐군. 이제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조명수는 안영일의 입에 청테이프를 봉하고 몸부림치는 안영일의 몸을 굴려 다리 아래로 떨어뜨렸다.
“풍덩”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신이 너의 몸을 받아 줄까? 너는 카론을 만나지 못할 것이며, 레테의 강을 건너지도 못할 것이다. 너의 혼은 영원히 강물의 어둠 속에서 축축이 젖은 채 울부짖을 것이다.
조명수는 어둠의 강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큰 파장을 일으켰던 강물은 이내 잠잠히 수평을 되찾았다.
일을 마친 조명수는 운전석으로 가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어찌 된 일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깨지 말기를 바라며 조명수는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회사 밖 찻집에서 조명수는 그녀를 만났다. 그가 안영일의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말했다.
“그만둬요.”
그가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만둬요. 그들을 다 죽이고 싶었지만... 부질없다는 생각만 드네요.”
그녀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그녀는 조명수에게 끝내 용서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조명수도 그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조명수 역시 그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안영일을 찾을 때부터 든 생각이었다. 수치심. 조명수는 그들이 자신의 옷을 벗긴 뒤 그녀의 몸 위로 밀쳤을 때의 수치심이 떠올랐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처절하게 당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부끄러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첫 장면이 그것이었다. 조명수는 이 수치심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방법은 수치심의 근원을 없애는 것밖에 길은 없었다.
그녀는 그만두라고 했지만, 조명수는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도 일을 여기에서 끝낼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진정으로 사과 한마디를 해 주는 사람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이 한마디가 필요했다.
안영일을 처리하고 조명수는 후회했다. 그녀는 여기까지 하자고 했지만 사건 당사자 누구 하나도 그녀에게 사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끝낼 수는 없었다. 이제 단 한 사람, 최일순만이 남았다. 그의 사죄로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에 대한 자신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길인 듯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