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조명수

by 마정열

조명수는 교회 내에서 ‘성경연구회’라는 모임을 이끌었다. 그 모임은 교회의 공식적인 모임은 아니었다. 회원은 조명수를 포함하여 4명이었고, 명목상 회장은 그가 맡았다. 조명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다. 일요일이면 가족이 모두 교회 나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았다. 그런 만큼 교회 내에서도 인맥이 넓었다.

성경연구회의 회원은 우선 권두섭, 안동 출신으로 XX대학 사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안영일, 그는 권두섭과는 고향 친구이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고, 객지에서 같이 지내자고 한동네에서 각자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명수와 안영일은 같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안영일이 처음 교회에 나와 자기소개를 할 때 조명수는 안영일이 자신과 같은 대학임을 알았고, 그 뒤로 둘은 친해졌다. 그리고 안영일의 소개로 조명수는 그의 동향 친구인 권두섭과도 알게 되었다. 최일순, 조명수와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다. 간혹 서로 뜻이 안 맞아 툭탁거려도 오래 사귀어온 친구다.

어떻게 하다 보니 얽히게 된 이들은 실없이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성경 공부나 해 보자는 취지로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교회의 청년부는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세하는 그룹은 목사 아들인 박요한을 주축으로 하는 무리였다. 그들이 청년부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교회 행사를 주도해 나갔다.

조명수가 속한 성경연구회는 교회 내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마이너 그룹이었다. 조명수가 마이너 그룹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이유가 목사 아들인 요한과의 관계 때문인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박요한과 조명수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요한은 모든 면에서 조명수를 앞서 나갔다. 조명수의 부모에게 있어서 요한은 비교의 대상이었고, 아들이 극복해야 할 목표였다. 조명수에게 있어 박요한은 처음에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지만, 점차 적개심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것은 김장로의 딸, 김서윤 때문이기도 했다.

서윤은 맑은 미소를 지닌 여고생이었고, 그 미소는 교회를 빛나게 하였다. 교회의 고등부나 청년부의 남자 성도들에게 서윤은 여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서윤과의 인연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조명수 역시 서윤의 곁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요한의 장벽에 걸려 서윤의 곁으로 갈 수가 없었다. 박목사와 김장로의 돈독한 사이를 증명하듯 서윤의 곁에는 요한이 있었다.

부러움은 시기를 낳았다. 시기는 질투와 반감으로 발전되어 갔다. 요한에 대한 치기 어린 악감정은 서윤과 요한과의 관계로 인해 더욱 증폭되었고, 그것은 점차 교회와 김장로에 대한 반감으로 발전해 갔다.

성경연구회 회원들은 성경을 읽고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을 목표로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권두섭이었다. 권두섭의 관심사는 성경의 영역을 넘어 성경 밖의 예수, 역사적 예수의 탐색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서로 공부한 것을 공유했다. 일요일 오후마다 교회의 한 구석에서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고,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른 예수를 만나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쁨이었다. 목사님이 말하는 주님을 만나는 기쁨과는 다른 차원의 기쁨이었다.

또 그들은 교회의 부조리한 면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기에 교회와 사소한 마찰을 피할 수가 없었다. 권두섭이 주보에 실리는 십일조와 헌금자 명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주보에서 그 명단은 사라졌다.

이것을 교회 관리자들은 심각하게 받아 들었다. 교회에 이단 세력이 잠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하였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인 것은 조명수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떠나는 선교 여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평소 조명수는 주일마다 청년부를 주축으로 행해지는 지하철역 앞에서의 선교 활동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땅끝까지 선교하라’고 했지만, 선교에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터였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붉은 휘장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경멸의 눈짓을 보내던 조명수였다. 그는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노래와 커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회가 낮은 목소리로 구원이 필요한 자를 어루만질 때 그들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그는 항상 하고 있었다.

여름 선교 여행지는 이슬람 국가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교인들의 안전은 그렇다 하더라도 타인의 종교를 무시하고 전도를 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것이라고 조명수는 느꼈다.

조명수는 김장로를 찾아갔다. 안전을 문제로 선교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장로는 예수님을 위해서는 순교의 정열이 있어야 한다면서 조명수의 부탁을 일축했다. 김장로는 베드로의 예를 들며 인간의 나약함이 예수를 부정하는 마음을 낳는다는 말을 했다. 조명수는 졸지에 예수를 부정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 김장로에게 등을 보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명수는 선교 여행을 가지 않았다. 선교 여행을 떠난 일행은 아무 사고 없이 돌아왔다. 그들은 주일날 목사님의 인도로 연단 앞으로 나가 교인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한 승리한 자들이었다. 거기에 요한과 그녀도 있었다.

이래저래 교회 관리자들의 눈엣가시였던 그들은 권두섭의 유인물 사건으로 교회에서 출석 정지를 당하였다.


“바보 같은 자식, 우리끼리 공부하던 것을 왜 그룹원에게까지 나눠주고 지랄이야. 그 자식의 문제는 지적 허영심이 너무 심하다는 거야. 너도 알겠군, 권두섭의 성격을.”

조명수의 말에 동하는 답하지 않았으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권두섭은 자신의 지식을 은연중에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두섭의 행동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지. 하지만 나는 교회에 큰 미련이 없었어. 솔직히 말하면 교회가 조금 지겨웠거든.”


조명수는 교회의 출석 정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회를 너무 오래 다녔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호와와 예수님이 이 교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모멸감이 느껴지고 인간에 대한 적의를 느끼게 한 사건은 다음에 일어났다.

권두섭의 연락을 받고 분식점으로 나갔던 조명수는 이유도 모른 채 김장로와 청년 신도들에게 폭행을 당하였다. 후에 그 자리가 권두섭이 자신의 예전 그룹원들과 만나는 자리라는 것을 들어 알았지만, 그때는 자신이 왜 폭행을 당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봉고차에 태워진 조명수 일행은 인근 산속으로 끌려가 김장로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협박을 들어야 했다. 그 자리에 요한도 있었다. 김장로는 목에 핏대를 세운 채 험악한 얼굴로 으르렁거렸고, 그 옆에서 요한은 차갑게 웃고 있었다. 조명수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한쪽은 사탄의 자식이었고, 또 다른 한쪽은 교회의 수호자였다.

다시 한번 교회 근처에 얼씬거리면 죽음을 각오하라는 김장로의 말은 조명수에게 공포보다는 살의를 불러일으켰다.

공원 술자리에서 김장로 딸의 납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조명수였다. 술김에 그랬는지 그들의 마음속에 조명수와 같은 적개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선뜻 그 거사에 동의를 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어.”

조명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회는 항상 나중에 오는 법이지.”

동하는 곁눈으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에서 어떤 표정의 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묶인 자신의 발끝을 응시하며 조명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밤말이야. 말하기도 어려운...”

“이봐! 세상에 너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을 것 같지. 아니야, 그 비밀을 은밀하게 공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어.”

“그랬으면 좋을 뻔했어. 우리 아닌 누군가가 있어 그 일을 말렸어야 했어. 아니야,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권두섭 그 자식이 그날 밤에 천벌을 받아 불에 타 죽었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군.”

“무슨 소리야?”

“아니야. 하던 얘기나 계속해. 듣고 싶군.”


막상 말을 꺼냈지만, 그 일이 진짜 성사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술김에 허둥지둥거리며 그녀를 찾겠다고 보낸 공원의 술판 이후 조명수는 일상으로 돌아와 술기운에 벌인 황당한 쇼에 대해 스스로 민망해하고 있었다.

조명수는 최일순의 연락을 받고 건축 공사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묶여 있는 그녀를 보았다.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조명수는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동참을 거부하는 조명수를 묶어놓고 그들은 그녀를 겁탈했다.

그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조명수는 여전히 그런 엄청난 일을 서슴없이 해치우던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가지고 싶은, 그러나 가질 수 없는 상대를 유린하는 쾌감이었을까? 혼자가 아니라 집단의 힘이 빗어낸 무모한 광기였을까?

조명수는 무력감과 죄책감으로 며칠을 숨어 지냈다. 그러나 숨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녀를 만나 용서를 빌고 싶었다. 어찌 되었거나 그날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자신이었다.

그는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5년이 지난 후, 그 사정을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집에 들어간 그녀를 붙잡고 그녀의 부모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한사코 입을 열지 않으려던 그녀는 부모의 울부짖는 간청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이야기 끝에 그녀의 어머니는 기절을 했지만, 의외로 김장로는 침착했다.

김장로는 밤새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이사를 결정했다. 그것은 추악한 풍문으로부터 딸을 지키려는 마음에서였다. 수십 년 일구어왔던 교회도 내던지고 아무도 그들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녀도 과거와 단절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날 밤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기억의 살해자가 되어 그날의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이 인위적 노력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는 지옥의 언저리를 늘 머뭇거리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녀를 찾을 수 없던 조명수는 현장에 있던 그들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라진 마당에 그들을 찾아 무엇을 어찌한단 말인가?

조명수는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기로 했다. 세월이 부끄러움을 묽어지게 하려니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러움은 점점 더 큰 응어리로 가슴 한구석에 자리를 잡아갔다.

이듬해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를 한 것도 그 기억을 떨쳐버리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육신의 피로는 상처의 기억을 점점 흐리게 해 주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철강회사에 입사하였고, 질긴 운명의 굴레에 다시 얽히게 되었다.


조명수는 인사부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까?

조명수는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그녀를 만났다. 인턴사원의 입사원서를 정리하던 그는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김서윤. 그리고 그 옆의 사진에서 고등학교 때의 김서윤의 모습을 추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의 흐름 따라 고등학교 때의 모습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김서윤이었다.

봉해졌던 기억이 터져 나왔다. 초라한 자신이 거기에 있었다. 조명수는 멀리 도망쳐 버리고 싶던 자신을 감금해 놓고 살던 시절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조명수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 그녀를 만났다.


토요일 오후였다.

“많이 찾았습니다. 용서를 구하려고...”

“용서요? 참 쉽군요. 그 용서라는 거.”

“어떻게 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아나요?”

그녀가 차갑게 말을 받았다.

“진심입니다.”

그날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길을 그녀가 앞서 걸었다. 조명수는 한 걸음쯤 뒤에서 그녀를 따랐다.

“그날 이후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어요? 당신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잊었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오늘까지 한순간도 그날의 악몽에서 편할 날이 없었어요.”

그녀가 독백처럼 말을 했다.

“지금도 나는 몰라요.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죠? 억울해요. 다 죽이고 싶어요. 하지만 그들이 누군지도 몰라요. 억울해요, 진짜 진짜로.”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뒷자리에 꽃잎 몇 개가 날리고 있었다.

조명수는 그녀의 쓸쓸한 뒷그림자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다 죽이고 싶어요!”

조명수는 그 현장에 있던 3명을 떠올렸다. 권두섭은 그날 밤에 죽었다. 그것도 불칼의 심판에 의해. 조명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제 최일순과 안영일만 남았다.

조명수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생각했다. 그 방법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녀를 대신하여 최일순과 안영일을 처리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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