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어둠 속에서 긴 불빛의 줄기를 만들며 산 아래로 들어갔다.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폐가의 입구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 멈추었다.
동하는 폐가의 헛간으로 들어가 휴대용 랜턴으로 불을 밝혔다. 그리고 조대리와 그녀를 헛간으로 옮겨 기둥에 묶었다.
그들이 단단히 묶인 것을 확인한 후, 동하는 그들의 옆에 주저앉아 긴 숨을 내어 쉬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보니 되는대로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동하는 그녀의 입에 붙은 청테이프를 뗐다. 그리고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가 물었다.
“왜 이러시는 건데요?”
“......”
“누구신데, 왜 이러세요?”
그녀가 재차 물었다.
“나를 모르시는군요. 괜찮습니다. 당신을 지켜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그쪽이 누구인 줄도 모르는데... 내가 언제 당신에게 구원을 요청했나요, 도와달라고.”
“아니, 이번에는 훼손된 나의 사랑을 보상받기 위해서이겠군. 그래, 씨팔... 빌어먹을 사랑.”
갑자기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동하는 그녀 앞으로 얼굴을 디밀고 소리쳤다.
“너 때문에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
“왜 나 때문이죠?”
자신은 전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살아가는 존재도 있다. 마치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존재를 태양은 모르듯이. 돌이켜보면 동하에게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 때문에 헝클어진 삶의 파편들이 갑자기 동하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나는 너의 사랑이 불륜이 아니길 바랐어.”
“남의 사랑을 왜 당신 마음대로 판단하는 거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당신은... 나의 존재 이유였으니까. 멀리서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사랑은 사랑이었으니까. 당신이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상처 때문에 나도 죽고 싶었으니까.
차마 이 말을 동하는 꺼내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깊은 눈만 응시할 뿐이었다.
휴대용 랜턴이 흔들거렸다. 그녀의 눈동자도 따라 흔들거렸다. 그녀는 더는 말이 없었다. 동하는 그녀에게서 눈을 거두고 조대리의 앞으로 갔다.
“조명수, 이 나쁜 자식, 너의 변명을 한번 들어보자.”
동하의 손에 의해 조대리의 입에 붙은 테이프가 거칠게 떼어졌다. 조는 동하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동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영업부 강동하?”
“그래, 기억해 줘서 고맙군.”
“그런데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어 이러는지 궁금하군.”
“세상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 주는 경우가 많아. 그럴 때면 그 죗값을 그냥 받으면 돼. 한편으로는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어.”
동하는 앞뒤 없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조대리가 동하는 찬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야 생각이 나는구나. 그래 너는 그때 권두섭을 따라다니던 그 고등학생이지?”
조대리의 말에 동하는 깜짝 놀랐다. 기둥에 묶어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녀도 조대리의 말에 번뜩 고개를 들어 동하를 쳐다보았다.
“너는 누구냐?”
“나? 너는 나를 모르는구나. 하긴 나는 그때 소그룹의 담임을 맡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지.”
“당신은...”
그녀도 고등학교 시절의 교회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빌어먹을 그 몇 개월이 이렇게 나를 괴롭힐 줄이야.”
동하가 말을 내뱉었다.
“그때 얘기는 하지 말아요. 기억하기 싫어요. 제발 그만둬요.”
그녀가 울부짖듯 소리를 질렀다.
“모두에게 괴로운 기억인 모양이군. 평화를 찾으러 간 주님의 성전이 괴로움의 족쇄가 될 줄이야.”
조대리가 쓴웃음을 흘렸다.
“개새끼, 뭐가 잘났다구 비아냥거리는 거야. 너는 뭐가 잘나 사랑을 모독하는 거야.”
동하가 달려들어 조대리의 멱살을 움켜 주었다.
“사랑?”
조대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
“듣자 하니 훼손된 사랑이라 하더군. 우습군. 무엇이 훼손된 사랑이지? 그리고 너는 그렇게 가슴 아프던 사랑이 훼손될 때 무얼 하고 있었지?”
“듣기 싫어. 네가 모든 것을 아는 듯이 얘기를 하는데, 네가 모르는 것도 있어.”
“내가 모르는 거? 거 재미있군. 보아하니 저 여자가 너의 훼손된 사랑인 것 같은데 그녀에 대해 내가 모르는 거, 그리고 너만의 비밀이 있다?”
조대리가 기둥에 묶인 채 턱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낄낄거리며 말했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동하는 조대리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조대리의 입술에서 빨간 선혈이 배어 나왔다. 조대리가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차갑게 웃었다.
“내가 모르는 너만의 비밀 이야기 한번 듣고 싶군.”
동하가 말을 받았다.
“세상 모든 일을 아는 너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그럴까? 하긴 지금 이 상태에선 묶인 내가 약자지. 그럼 네가 모르는 나만의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그래 듣고 싶군. 내가 모르는 그 은밀한 비밀 이야기를.”
조대리가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느릿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초겨울의 한기와 함께 짙은 어둠 속에서 음침한 과거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