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납치

by 마정열

동하가 그녀를 자신의 마음에서 조금씩 밀어내고 있을 때, 휴일 시내에서 조대리가 여자와 함께 극장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조대리의 옆에서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여인은 그녀가 아니었다.

동하는 까닭 모를 배신감으로 그들이 인파에 묻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들을 응시했다.

다음날부터 동하는 회사에서 조대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조대리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그 여자와 결혼할 사이라는 것은 회사 내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진심은 짓밟혔고, 사랑은 더럽혀졌으며, 그리하여 젊은 날은 송두리째 망가졌음을 느꼈다.

동하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동하는 다시 그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추적은 좀 더 집요해졌다. 그들의 행적을 좇기 위해서 동하는 중고차까지 마련했다.

그녀는 지하철로 집과 회사를 왕래했다. 그러나 퇴근 후 지하철역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날은 조대리를 만나는 날이었다. 그들이 밀회를 즐기는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한 달에 한두 번이었다. 그날은 사무실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만나 조대리의 차로 서울을 벗어났다. 그들은 주로 포천이나 연천 쪽의 모텔을 이용했다.

이것이 몇 달 동안 동하가 그들의 뒤를 밟아 수집한 정보였다.

그녀가 조대리의 더러운 연애 놀이의 상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 동하는 생각했다. 그녀에게 조대리의 실체를 알리고, 그녀를 불륜에서 구해내야 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동하는 사랑을 지켜야 했다. 예전에 지키지 못한 사랑을 이제라도 지켜야 했다. 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로부터 사랑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하는 포천과 연천 지역을 주말마다,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폐가를 발견했다.

이제 장소는 정해졌다. 세부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동하는 계획에 필요한 물품, 전기충격기, 청테이프, 휴대용 랜턴, 끈, 야전삽 등을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준비는 다 되었다. 동하의 감각은 온통 그들을 향해 있었다. 상사의 눈치도 아랑곳없이 정시에 퇴근하여 회사 앞 골목에서 회사 출입문을 주시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오는 그녀의 동선을 살폈다. 그녀가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녀가 회전문을 밀치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손목을 눈앞으로 옮겨 시계를 보더니 지하철 출입구를 등지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골목에 몸을 숨기고 그녀를 지켜보던 동하의 가슴이 뛰었다. 동하는 길가에 주차해 놓은 차로 달려가 시동을 켜고, 천천히 차를 몰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예상한 대로 거기에는 조대리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태운 조대리의 차는 서울 도심을 벗어나 자유로로 접어들었다. 동하는 일정 거리를 두고 그들의 뒤를 밟았다.

조대리의 차는 연천의 한 모텔 앞에 멈추었고, 그들은 모텔 안으로 사라졌다.

동하는 그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주차장에 멈춰 서있는 조대리의 차로 다가가 뒷바퀴 타이어에 구멍을 냈다. 타이어는 바람 소리를 내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동하는 건물 밖에서 희미한 모텔 창의 불빛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모텔 방안에서의 그들이 모습이 상상되었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그것은 도무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은 사랑을 더럽히는 일이었고, 결국 존재에 대한 훼손이었다.

동하는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그것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녀는 그의 사랑이었고, 그 황량한 겨울밤,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저주했는데, 다시 그런 괴로움에 직면하니 괴로움은 어느새 증오로 바뀌어 있었다.

동하는 조대리를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배신감 역시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나고 모텔의 문을 밀치고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조대리와 그녀는 조대리의 차를 타고 모텔을 벗어났고, 동하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차는 조금 가다가 털털거리며 이내 멈췄다. 조대리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바퀴를 살피더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뒤를 따르던 동하는 조대리가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취하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차에서 내려 조대리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이시죠?”

“타이어가 펑크가 났어요.”

조대리는 다가오는 동하를 의식하지도 않고 타이어를 발로 차며 대답을 했다.

지나다니는 차는 없었다. 동하는 조대리의 차를 스치고 지나가며 곁눈으로 차 안을 훑었다. 그녀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한번 볼까요."

동하가 무릎을 꺾어 펑크가 난 타이어를 살폈다. 조대리도 동하를 따라 앉았다. 조수석의 그녀에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동하는 이 상태에서 일을 빨리 처리해야 된다고 느꼈다.

동하는 주머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어 무방비로 타이어만 바라보고 있는 조대리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조대리가 쓰러졌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놀란 그녀가 자동차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차의 뒤쪽으로 돌아오던 그녀가 쓰러진 조대리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이내 공포의 얼굴빛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동하는 달아나려는 그녀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사람 살려...”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비명이 삐져나왔다. 동하는 그녀에게 이것만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전기충격기의 전류가 그녀의 몸속으로 흐르자 그녀의 몸은 저항할 힘을 잃고 길게 늘어졌다.

동하는 청테이프로 기절한 채 늘어져 있는 조대리와 그녀의 입을 봉하고, 손과 발을 결박한 후 자신의 차로 옮겼다. 동하는 차를 폐가로 몰았다. 폐가로 가는 도중 둘은 정신이 돌아왔다.

차 안에서 동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쓴 동하를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백미러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덫에 걸린, 공포에 질린 겁먹은 짐승일 뿐이었다.

이전 10화2-2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