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이렇게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내 인생의 나날들 중에 어느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내 마음을 그윽하고 안온하게 했던 풍경이다. 그 때로부터 십 년이란 세월을 더 걸어왔다.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바람이 거세지는데도 집을 나섰다. 병풍처럼 들을 감싸고 있는 산과 산,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비구름, 그 산들을 끼고 흐르는 강,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기차.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다. 읍까지는 좋아하는 노래를 두 번 정도 들으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우체국에 잠깐 들러서 멀리 떨어져 있는 딸아이에게 편지를 부쳤다. 전화와 문자, 이메일이 넘치는 세상에 편지라니. 그러나 나는 우체국에 가기를 즐긴다. 어느 시인의 싯구를 떠올리면서 우체국 창문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들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현실감이 없다고 혀를 차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일상에서는 근검절약하며 살아가지만 감정의 사치야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책을 읽다가도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면 가슴에 보석을 품은 듯 하루 종일 흥얼거린다.
반찬거리 장을 보고, 아들을 태우고 집에 가려고 중학교 운동장 한쪽 귀퉁이에 차를 댔다. 다른 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방학이라 잠시 집에 와 있다. 아침이면 읍내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를 하고 중학교 때의 친구들도 만나곤 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거의 허리를 꺾을 정도로 출렁거리고 있다. 자동차 안에 앉아 아들을 기다리면서 시인이 쓴 영화에세이를 읽는다. ‘영화’ 하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떠오른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아버지를 숱하게 따라 다녔다. 아버지를 닮아서 나도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흘러간 명화’라고 이름 붙여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간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과 사랑과 욕망을 본다.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을 본다.
나를 데리고 극장에 가시던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 요즘 들어 부쩍 뒤를 돌아볼 때가 잦다. 한 뼘 틈만 나면 어김없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위에 서곤 한다.
내 어머니는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시느라 자식에 대한 살뜰한 애정 표현 한번 제대로 하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 형제들은 애정에 목마르지 않았다. 가난한 집 육 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오셔서 한평생을 성실과 인내로 사셨다. 그 곧은 삶의 자세가 우리를 반듯하게 키우신 힘일 것이다. 내 어머니는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 같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도 그런 우물일 수 있을까.
너무 많은 고생을 하신 탓인지 어머니는 좀 더 사셔도 좋을 예순의 연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자랄 때는 그 끝없는 희생과 맹목적인 헌신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가 바로 어머니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가끔 얼굴을 들고 차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리며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폭우에 잠겨버린 운동장 위로 회색 하늘이 아주 낮게 드리워져 있다. 이상하리 만치 편안한 느낌이 든다. 여러 갈래로 얽혀있던 줄들이 하나 둘 끊어지면서 마음이 낮게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고요하게 다가오는 이 평화. 잠시 그 감정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눈을 감는다.
어느 한 순간인들 마음을 바닥까지 내려놓고 쉰 적이 있었던가. 나의 신경은 늘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은 물기 하나 머금지 않은 마른 장작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에게도, 무심하게 흐르는 시냇물에게도, 이른 새벽이면 낮게 내려와 있는 밤하늘의 별들에게도, 옷깃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싶다.
그 전에는 부대끼며 사느라고 그런 것들은 감정의 사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의 여백이나 내면의 평화는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이 아닌가. 비로소, 그것이 오늘을 사는 힘이 아닐까 하는 자각이 든다. 이런 깨달음은 곧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 되리라.
지나간 많은 날들 중에 특별할 것도 없는 어느 한 날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어제도 오늘과 다를 바 없었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것인데 그 지나온 세월들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허리를 펴서 백미러에 얼굴을 한 번 비춰본다. 중년의 어머니의 모습이 거울 속에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자락에 설 때쯤이면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은 모두 소멸되어 버리고, ‘아, 그런 날이 있었지!’ 하며 마음에 가득 찬 평화를 느끼게 해준, 폭우에 잠긴 운동장만을 회상하게 될 터이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자라 어느덧 내 품을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아서 느리고 고요하게, 이 세상에서 가족으로 엮여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할 것이다. 일생의 굽이굽이에서 느꼈던 감격이나 환희, 가슴 에이는 슬픔이나 연민조차도 이 땅에서 가족으로 살면서 얻을 수 있었던 축복이리라.
뜨거운 한 잔의 차에도 온전한 위안과 감사를 느낄 때쯤이면 이마의 주름살을 세는 대신 마음의 주름살을 세는 일은 없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