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by 김제숙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기고 보니 이런저런 모임이 잦다.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만한 여력도 없다. 그런데도 인사치레로 얼굴을 내밀어야 할 경우와 마음 맞는 이들이 모여서 꾸려 가는 친목회가 여럿 있다.

외식문화가 발달한 탓일까. 요즘은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서 접대하는 경우가 드물다. 초대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가 그게 더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그만큼 사회가 더 바쁘고 분주해졌다는 반향일 테고, 친밀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의 선을 분명하게 긋고 있는 것 같아서 나로서는 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 내가 모임을 주선할 차례가 되었다. 부부 동반이라 빠지지 않고 다 모인다면 스무 명이다. 집에서 치르기에는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주방도 여의치 않고 무엇보다도 그만한 그릇이 없었다. 남편은 그냥 밖에서 해결하자고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먹는 음식에 거부감이 들었다. 주방이 좁고 그릇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나는 집에서 모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형편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작정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며칠을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길을 가면서도, 차를 마시면서도, 끼니를 준비하면서도 궁리를 했다. 나는 그런 시간들을 즐기는 편이다.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그런 과정들이 내게는 기쁨이다.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시장에 가서 학창 시절에 갖고 다녔던 알루미늄 도시락을 사는 일이었다. 사람 수대로 스무 개를 샀다. 그리고 포목점으로 가서 예쁜 꽃무늬가 있는 천을 끊었다. 보자기를 만들 요량이었다. 도시락을 쌀 수 있는 크기로 잘라서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색실로 감침질을 하였다. 오랜만에 하는 바느질이었다. 요즈음은 기껏해야 떨어진 단추를 달거나 바지나 치마의 밑단을 손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스무 개의 보자기를 만드느라 이틀 밤 동안 공을 들였다.

오래 전, 많은 식구들의 해어진 양말을 깁느라 밤늦도록 바느질을 하시는 어머니 곁에 앉아 라디오 연속극을 듣던 생각이 났다. 수도 없이 서성거려서 훤히 알고 있는 길을 밟아 어머니를 만나고 온 것은 뜻하지 않았던 덤이었다.

모임은 간단한 다과를 들면서 미리 내어준 과제를 발표하고 토론 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그 다음이 식사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토론이 끝나면 식사를 위해 예약해 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모임 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남편과 둘이서만 산 지가 여러 해가 되다 보니 많은 사람의 밥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나보다. 미리 삶아둔 보리쌀을 넉넉히 안치고 평소에 안 쓰던 큰 솥까지 내어 두 솥 가득 보리밥을 했다. 몇 가지 반찬을 장만하여 스무 개의 도시락을 만들어 꽃무늬 보자기에 쌌다.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내가 준비한 도시락은, 세월의 저편에 가려져 있던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면 만날 수 있는 어머니가 싸 주시던 바로 그 도시락이었다. 아무런 맛도 없이 그저 짜기만 하던 김치에 멸치 몇 마리, 고추장 조금. 밥은 또 어떠했던가. 쌀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시커먼 보리밥이었지만 그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무척 행복했다.

나는 그렇게 험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란은 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가끔 어머니가 도시락에 계란프라이라도 얹어주시는 날에는 점심시간까지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어떤 날은 쉬는 시간마다 계란프라이의 가장자리를 조금씩 떼어먹기도 했다.

토론을 마치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 분주한 식사 준비 대신 도시락을 하나씩 나눠드렸더니 처음에는 모두 ‘이게 뭐야?’ 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보자기를 풀었다.

감자채 볶음, 어묵 조림, 멸치 볶음, 풋고추 찜, 도시락 밥 한가운데 얌전하게 올라앉은 계란프라이를 보자 친구들은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그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감회에 젖었다. 그래도 접대에 소홀할까 싶어서 불고기 몇 접시를 상 중간에 놓았다. 잘 다듬은 멸치와 고추장도 내놓았다. 물론 다 먹고 난 빈 도시락은 선물로 주었다.

모두들 불고기 보다는 맨손으로 멸치에 고추장을 찍어먹으며 즐거워했다. 나는 거실과 주방을 오가면서 시중을 들면서 마음이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삼사십 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시간은 흐르면서 쉬는 법이 없어서 어느 새 머리 위에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하는 세월 위에 와 있었다. 다시 많은 날들이 시간의 창고에 쌓이면 그 자리에서 다시 이 시절을 더듬으며 그리워할 것이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는 동안 우리는 세월의 다리를 건너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오늘 아침, 옛날식 먹을거리로 도시락을 준비한 것은 잠시 유년의 뜰을 더듬고 싶은 내 안타까움은 아니었을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달래보고 싶었던 때문일 것이다.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 살면서 수시로 다가오는 이 허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어쩌면 더 큰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느끼는 공복감의 근원도 그 언저리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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