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사회성은 어떡해요?”라는 질문에 답을 적다

‘갓길(God-gil)’에서 발견한 진짜 관계의 실력

by 연휘

음 홈스쿨 공동체에 발을 들였을 때 신기했던 점은 가정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밖으로 나온 이들은 저마다의 교육 철학을 담은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


우리도 처음엔 ‘향기 나는 열매가정’이라 불렀다. 좋은 성품과 신앙의 열매가 맺히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영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너무 '정답'만 말하려는 모범생의 표정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홈스쿨 이름, ‘갓길(God-gil)’ 어때?"


그 이름은 우리 상황을 명확하게 대변했다. 남들이 달리는 빠른 길에서 잠시 비켜나 있다는 물리적인 상태와, 이 길이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걷는 길(God’s way)’이라는 고백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사실 남들이 정해둔 대열을 이탈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냥 '낙오자'가 될까 봐 겁이 났다. 성과가 곧 내 가치였고 남보다 앞서는 것이 유일한 안도감이었던 나에게, 세상이 약속한 성공의 문법에서 스스로 지워지는 기분은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불안을 주었다. 내 아이만 영원히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외톨이가 될 것 같은 조바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했다. "애 사회성은 어떡하려고 그래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홈스쿨링 관련 책들을 읽으며 "사회성은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수없이 접했다. 하지만 그 활자들이 내 안에서 확신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 속의 아이들은 다들 반듯하게 잘만 자라는 것 같은데, 정작 내 눈앞의 아이는 그저 자기만의 속도로 수줍게 서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세워둔 좁은 기준에 차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홀로 조바심을 내던 수많은 밤, 나는 내가 믿고 싶었던 '사회성'의 실체를 다시 정의해야만 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다들 사회성이 좋아 보이는데, 왜 갈등은 더 깊어지고 사람은 도구처럼 쓰이는 일이 많을까.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는 법은 잘 알지만, 상대방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는 법은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 길 위에서 아이와 함께 배우고 있는 사회성은 화려한 처세술이 아니다. 그것은 '성과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믿는 힘'이다.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굳이 남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거나 자신을 포장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그 당당함은 타인을 향한 여유로 이어진다.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이용할 필요가 없기에,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의 못난 모습까지 기꺼이 품어주는 용기. 나는 이것이 세상 그 어떤 기술보다 강력한 ‘진짜 사회성’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여유의 다른 이름은 아마 ‘온유’일 것이다. 나를 증명하려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부드럽고도 단단한 힘 말이다.


물론 본선 도로 위에서 치열하게 버티며 관계의 기술을 익히는 분들의 수고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될 것 같아 늘 '철갑상어'처럼 단단한 껍질을 두른 채 살아야 했던 나에게는, 이 가정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사랑의 민낯을 마주하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절실했을 뿐이다.


식탁 앞에 앉아 서로의 허물을 어떻게 덮어줄지 고민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약함을 비웃지 않고 기다려주는 법을 배우는 곳. 만약 내 아이가 세상이 말하는 매끄러운 처세와는 조금 거리가 멀지라도, 적어도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단단한 속사람을 갖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우리의 갓길 여행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믿으려 한다.


갓길은 본선 도로에서 밀려난 버려진 길이 아니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외진 길이지만, 생명이 숨 쉬는 길. 무언가를 증명해내지 않아도, 나를 바라보는 그 절대적인 시선 안에서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확신. 이 확신이 있기에 나는 갓길 위에서도 외롭지 않다. 우리의 여행은 여전히 ‘갓길(God-gil)’ 위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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