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차 IT 직장인이 동료들의 VOC로 발견한 나의 본질
11월의 어느 날, 퇴근길에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올해는 왜 집에 빼빼로가 별로 없어? 작년엔 산더미였잖아."
잠시 멈칫하다 웃으며 답했습니다. "엄마가 이제 실장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
장난스레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엔 묘한 감정들이 스쳤습니다.
IT 전략과 기획, 상품 구매, 시스템 개발 조직의 리더까지 24년을 보내고, 현재 IT 상품의 가치를 설계하고 시장 경쟁력 있는 가격을 산정하는 '프라이싱(Pricing)' 로직 업무를 담당하면서 최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직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지고, AI가 나보다 더 정교하게 전략을 짜는 시대가 오면 '인간 이음(필명)'의 진짜 가치는 얼마일까?"
1. 나라는 상품에 대한 '시장 조사' (VOC : Voices Of Customer)
상품 기획/개발 및 프라이싱을 작업을 할 때 보통 시장 조사 및 상품에 대한 VOC(고객의 소리)를 통해 상품 개발 방향성 및 개선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저의 진짜 가치와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저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해 함께 일했던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이음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VOC를 요청했습니다.
직급이라는 포장지를 걷어낸 '날것의 마수현'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묻는 일종의 시장 조사였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들은 제가 예상한 '성능 명세서'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2. "예쁜 애들이 하는 짓을 안 해서 좋아요"
가장 먼저 도착한 답변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도도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예쁜 애들이 하는 짓(?)을 안 해서 좋다", "동안 뱀파이어?"와 같은 털털한 평가였죠.
동료들은 제가 짜온 촘촘한 전략 이전에,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유머'와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호의'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후배의 이야기를 끼워 넣어주려 애쓰는 모습이나, 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먼저 사과할 줄 아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죠.
AI는 완벽한 문장을 만들지만, 동료나 선후배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던지는 '깨방정'이나 '상큼한 에너지'는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3. 타이틀보다 중요한 '연결의 감각'
물론 업무적 전문가로서의 날카로운 평가도 있었습니다.
"맥락 파악이 빠르고 본질에 집중해 큰 판을 짜는 비상한 두뇌"라는 동료 선후배님들의 칭찬은 24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더 감동적이었던 건, 업무 효율보다 저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는 마음들이었습니다.
"누구와 이야기해야 문제가 풀릴지 정확히 아는 연결의 감각", "사람의 마음을 귀담아듣는 경청의 자세".
알고리즘은 문제를 해결(Solve)하지만, 인간 브랜드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Connect) 마음을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책상 위 빼빼로 개수는 줄었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긴 제 이름의 가치는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었습니다.
마치며: 당신의 브랜드에는 '온기'가 있나요?
나를 객관화하기 위해 시작한 이 조사는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몰랐던 다른 이의 시각에서 또 다른 저의 모습들을 알게 되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질문에도 위트 있고 진심 어리게 답변해주신 동료 선후배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네요. 만약 이 글을 보실 수 있다면 말이죠...)
AI 시대, 우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완벽한 로직이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부정적인 영향력까지 붙잡아주려다 혼자 속 타하는 '바보 같은 배려', 결정적인 순간에 툭 튀어나오는 '풍부한 감성',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업데이트하려는 '순수한 열정'입니다.
딸아이에게 이제 다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빼빼로 개수는 줄었지만, 엄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오늘 여러분도 주변에 슬쩍 물어보세요.
"내가 가진 무언가 중에 당신을 웃게 하거나 힘이 나게 하는 게 뭐야?"
그 대답 속에 담긴 당신의 가치는 그 어떤 AI 알고리즘도 매길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귀한 가격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