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저자 김희경의 신간
이 책을 추천하는 대상: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연구자님의 신간입니다. 무려 '중년 1인 가구' 연구네요.
40·50대 비혼 여성 19명을 만나 나눈 대화와 세계의 사례, 통계가 실려 있어요.
'중년 비혼 여성'이라는 단어를 보고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나요?
- 비혼 중년, 외롭지 않을까?
- 여자가 아이도 안 낳고. 이기적인 거 아냐?
- 그래도 결혼과 육아라는 경험을 해 봐야...
- 혼자 살면 아플 때 서러워
그렇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셔야겠습니다. (아닌 분들도 재밌게 읽으실 것임)
'중년 비혼 여성'
이 단어를 보고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심상을 떠올릴 것 같아요. 물론 긍정적인 이미지도 떠오르지만 저의 경우 그것은 의식적인 2차적 이미지네요.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달리 인터뷰 대상자는 '오히려 젊어서 혼자 살 때보다 지금이 더 편하다. 사람들이 함부로 못 한다'고 대답했어요. 한국 에이지즘의 웃픈 면이죠. (*저자는 인터뷰 집단과 달리 실질적인 생활고를 겪는 인구도 있음을 인지함.)
'자녀를 낳고 키워봐야 진짜 인생이 뭔지 안다'고들 하죠. 확실히 결혼·임신·출산·육아가 인생과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오는 문화인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그 문화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어딘가 부족하다는 듯이 구는 통념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물론 저만 해도 그런 미경험에 대한 초조함이나 불안이 존재하지만,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인식에 가까워요. 선택에는 언제나 반대 면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누군가가 그런 삶을 결정하는 동안 저는 그가 못 해본 선택을 합니다. 어느쪽이 더 낫다, 옳다고 쉬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2019년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이 후보자의 미혼 여부를 지적하며 "지금 아직 결혼 안하셨죠 ... 우리 한국 사회의 앞으로 가장 큰 병폐는 출산율이다. 후보자가 참 훌륭한 분인데 그것까지 갖췄으면 정말 100점짜리 후보자라고 생각한다 ... 정말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달라”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사석에서도 뜨악스러울 발언을 공적인 자리에서 감히 뱉을 수 있는 인식 수준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인식을 견고하게 공유하고 강화하는 사회 집단이 분명 존재하겠지요.
이처럼 자녀는 홀로 낳는 게 아님에도 한국 사회의 '저출산'(이 단어에도 문제가 있다. 저출생이 옳다) 문제를 유독 미혼 여성에게 맡겨둔 것처럼 구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아이를 낳을까요?
게다가 비혼 여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저출생을 1인 가구 탓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는 사실은 수치로 증명되는데요. 한국보다 1인가구 비율이 훨씬 높은 프랑스, 스웨덴은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이 한국보다 높습니다. 결혼만 시킨다고 다가 아니라 여성이 일-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남성의 적극적 가사노동 참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다행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최근에는 이 당위성이 확보되고 제도적, 문화적으로도 천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충분치 않으니까요.
한국 사회가 갈 길은 멉니다. 그렇게나 출생율이 중요하다는데,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비함은 물론이고 1인가구 여성의 인공수정 시술까지 원활하지 않거든요.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비혼 여성의 인공수정 시술을 병원에서 금지하는 줄 몰랐어요. 실제로는 그런 법도 없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한산부인과학회에 지침 개정 권고까지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뿐이라고 해요. 이쯤되면 출생율 어젠다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이탈한 여성을 공격하는 무기이자 수단이 아닌가 싶어요.
언제부턴가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가
변화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핑곗거리가 되었다.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봉사단체 등 자발적 결사체 참여에 있어 남성은 기혼자 참여가, 여성은 비혼자 참여 비율이 높고 그 반대는 낮다는 것인데요. 즉 남성에게 있어 가정이란 안정적인 생활망, 여성에게 있어서는 사회 참여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해요. 뿐만아니라 가정을 꾸리지 않은 남성의 사회참여도가 낮다는 사실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네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가. 그럼 왜 여성은 높은가. 남성에게 결혼이란 무엇인가...
비슷한 맥락으로 갸웃하게 되는 연구가 또 있습니다. 1인 가구에게 곧잘 던져지는 질문. "외롭지 않아?" 그런데 조사 결과, 현재 걱정거리로 '외로움'을 높게 꼽은 1인가구는 30대남성(1위)-20대남성(2위)-40대남성(3위)이 높았고, 30대 여성이 3위를 공동 차지했다는 겁니다. 20대 여성이 외로움을 걱정하지 않음은 납득이 가요. 그럼 4~50대 여성은...? 오히려 걱정거리들 중 후순위인 4위로 꼽았다고.
남성과 여성의 생애가 어떻게 다르기에 이토록 결혼에 다른 반응과 인식을 보이는 걸까요? 생각할수록 깊어지는 고민입니다.
한편 저자와 인터뷰이들의 외로움에 대한 통찰도 인상깊었는데요.
외로움은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 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얼마나 통하느냐 하는 질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둘이 살아봤자, 혼자 있을 때보다 외롭고 괴로울 뿐이라는 겁니다. (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주석처럼 딸려 있다는 거예요. 읽어보세요.) 개인적으로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좀처럼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서, "외로움이 고립으로 변질되"기 전에 "막아주는 관계망"이 존재한다면, 또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그런 안전망을 건설해나간다면 1인가구에 외로움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실제 책에는 더 풍부한 자료와 이야기가 있지만, 직접 읽으셨으면 해서 슬슬 글을 맺으려 해요.
홀로 중년을 넘어 홀로 노년이 되어간다는 것은 위기감을 동반하는 과정이에요. 충분한 돌봄 서비스를 받기 위한 자금이 없다면 더더욱이요. (그리고 대다수는 그런 자금이 없지요.) 때문에 에이징 '솔로'일수록 오히려 서로 돌봄에 방점이 찍힙니다. 따로 또 같이, 느슨하고 자율적으로. 이를 위해 제도적 뒷받침도 필수적이겠고요.
1인 가구 증가는 사회문제가 아니라, 시대 흐름에 발맞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강제하거나 되돌릴 수는 없어요. 국가는 흐름을 받아들이고 알맞은 정책을 펴내야겠죠. (종교 및 보수단체 눈치 좀 그만 보고요!) 가족이 아니라 개인이 복지의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네요.
아직도 건강가정기본법이 정의하는 '가족'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한정되어 있는데요. 이를 개정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사회적 필요가 합의하다"는 이유를 들었어요. 앞서 '사회적 합의'라는 단어가 기득권의 퇴행적 핑계가 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를 뒷받침하는 발췌를 두고 글을 마칩니다.
2020년 여성가족부 실시 '가족 다양성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혈연 또는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이것이 사회적 합의가 아니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