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늦은 퇴근길,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꼬리를 무는 차들에 잠시 멈춰서 있었다. (다음 신호등이 아직 빨간불이라 급히 건널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 순서인 버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작고 소심한 ‘빵’ 소리가 났다. 쳐다보자 버스 기사님이 눈을 맞추고 고개까지 살짝 숙여 가며 건너라는 손짓을 하는 거였다! 나 말고도 세 명의 보행자가 더 있었고 우리가 다 건넌 뒤에야 버스 출발하는 소리가 났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방금 일어난 일을 되새겼다. 타인에게 자신의 몫을 양보하는 일. 자신이 가질 수 있던 시간을 상대방이 먼저 쓰도록 허락하는 일을. 그러자 마음의 모양이 이상해졌다. 누군가 요청한 도움을 기꺼이 수락해버릴 것만 같은. 퉁명스러운 타인에게도 얼마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또 걱정도 들었다. 기사님에게 고개를 숙인 게 보였을까? 이 감사한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을까? 소심하게나마 버스 운수 홈페이지에 칭찬글을 올렸다. 평소에 타지도 않는 4자리 버스 노선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이 사소한 사건에 이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직전에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최은영 작가님이 좋아한다고 말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이다. 주인공 루시 바턴은 뉴욕에 살고 두 아이를 키운 작가이지만, 어린 시절엔 추운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숙제를 하고 그래도 남는 시간엔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외로움을 덜었다. 어린 루시 바턴은 문득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외로움을 없애주고 싶어서.
동기란 대개 그렇다. 한 사람에게 쌓이는 작은 일들. 그것들이 그 사람의 생각을 형성하고 행동을 만든다.
버스에게 양보를 받던 날, 퇴근 10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조급함이 엿보이는 목소리였다.
"거기 제 수첩을 놓고온 것 같아요."
각종 일정과 개인정보가 기록되어 있을 수첩을 잃어버려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다행히 주인 놓친 수첩이 발견되었고 상대방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했다. 당신이 찾는 수첩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게 뭐라고 싶어 얼마간 겸연쩍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칭찬합니다’에 글을 남긴 버스 기사님도 이런 마음이 드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도움의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다. 누군가의 몸에 배인 운전 습관 하나가, 타인의 친절에 민감해진 누군가의 마음을 구할 수도 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요지의 문장이 되풀이되어 나온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거나, 그 사람의 감정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대부분 착각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문장도 나온다. “누군가가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많은 순간에 그런 사람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이 나일 수도 있어서’ 누군가를 돕는 것은 계산적인가? '응당 도와야 하기 때문에' 돕는 것만이 윤리적인가? 둘은 엄격하게 분리될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아니다. 행동과 태도가 분리되기 어려운 것만큼이나 아니다. 행동은 태도가, 습관이 된다.
루시 바턴은 고립된 환경에서 자랐다.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와 언니와 함께 살던 집은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이 보일 만큼 외딴 집이었다. 어린 루시 바턴에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에게 자식이 없는 이유를 묻는 것이 무례하다는 사실’, 테이블 세팅 하는 법, 자신이 입을 벌리고 음식물을 씹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때문에 종종 자신도 모르게 망신거리가 되었고, 그럴 때면 세상에 대한 앎을 구성하는 엄청나게 큰 조각들이 빠져 있는 느낌을 느꼈다.
내게도 빠진 조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생일파티는 동네 롯데리아에서 이루어졌다.)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집에 있는 가장 깨끗한 문구세트를 신문지로 포장해갔다. 요즘처럼 탄소중립이 각광받던 시대가 아니어서 신문지 포장은 대번에 비웃음을 샀다. 그런 장면은 사진처럼 남게 된다. (영상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러니까, 당시 내게는 또래 친구 생일파티에 신문지로 포장한 선물을 가져가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기억, 내가 불쾌하고 경멸스러운 대상이 되는 기억이 나의 행동을, 태도를 만들었다. 쿠션어를 쓰고, 어조에 신경쓰고, 귀찮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태도. 존중받지 못하는 건 슬프니까. 친절에 민감해진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 그것은 친절에 흔히 노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타인의 친절을 바란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에게 잠깐이나마 다정함을 빌려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슬플 기회를 뺏을 수 있다면 무안함이 대수겠는가.
타인을 이해하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대신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처럼 끌어안는 일은 시도해볼 만하다. 루시 바턴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내 아이들이 느끼는 상처를 아느냐고? 나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엄마는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내게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당시에는 나의 상처가 그것과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루시 바턴이 아는 아이들의 상처도, 아이들이 생각하는 상처와 완전히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소년기에 겪은 상실의 고통은 닮은꼴일지도 모른다. 꼭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끼리만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타인을 이해할 수 없어도 안아줄 수는 있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포옹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