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근본적 해결에 관심이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 꼭 읽어야 할 책
수년간 수많은 환경 관련 저술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데이터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책부터 감성적인 에세이까지. 그중에서도 이송희일의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가 눈에 띄는 이유는 첫째, 영화 감독으로 유명한 저자의 벽돌책이라서. 둘째, 제목이 범상치 않아서. 셋째, 기후위기의 원인을 구조적 시선에서 해체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다 제쳐두고, 이 책은 충격적이고 문제적입니다. 527쪽의 저술이 한 장 한 장 날카로운 시각으로 전해주는 생태 담론에, 독자는 지금까지 보아온 기후위기의 단면을 넘어서 탈성장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됩니다. 저자 이송희일이 기후위기를 ‘환경 문제’로만 다루지 않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고해지는 구조적 불평등을 직시하기 때문이에요.
코로나19 이후 대중에게 익숙해진 문장이지만, 오래 전부터 세계 곳곳에는 그 문장을 체화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호주 대형 산불 이후 증가한 가정폭력, 빅토리아호의 가뭄으로 성을 거래해야 했던 여성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 기후위기의 폐해가 약자에게 가장 먼저 도달하는 사례입니다. "호수의 물이 다 빠지고 밑바닥의 시체가 드러나듯" 기후위기가 없을 때는 가까스로 은닉되던 정치경제구조의 모순이 드러난 것이지요.
그러면 이 재난은 어디서 온 걸까요? '인류가 지구를 망쳤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리 맞는 말도 아닙니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책임을 교묘하게 가리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장난입니다. 성장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자원을 먹어치우고 몸을 불려온 거대한 괴물이 불러온 기후위기를, 그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개인들이 가속화했다고 해야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요?
서민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외국산 과일, 햄버거, 공산품의 저렴한 가격은 정말 상품의 자원, 노동력, 운송 가치에 정당한 가격일까요? 남반구의 수탈된 노동력과 생태계의 몫이 공제된 덕분에, 탄소배출과 지하수 고갈과 살충제 사용으로 인한 폐해 비용이 단절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저렴함은 아닐까요. 역설적으로 이러한 <제국적 생활양식>을 강제당하는 사람은, 북반구의 취약계층입니다. 친환경 로컬 푸드를 소비하며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요. 그래서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이토록 부질없습니다.
그렇다면 여유가 있어 '착한 소비'를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도 될까요? 생략된 가격표를 외면한다면 결국 나에게 청구 영수증으로 돌아옵니다. 이 구조를 러프하게 도식화하자면,
남반구 수탈 ➡ 북반구 임금하락 + 노동조직 해체 + 대량소비사회
자본 속에서 착취의 악영향을 주고받으며 기후위기의 공범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철저한 분리배출, 탄소발자국 체크, 줍깅과 텀블러와 에코백... 이런 개인적 실천을 하다 어느날 거대한 환경오염을 마주하면 "내 노력은 다 뭐였던 거지" 하고 허탈해진 적 있지 않나요? 그렇게 나의 행동을 검열하고 소진되는 것이 자본의 전략이라면요?
탄소발자국 개념이 석유기업 BP의 마케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기업의 탄소배출 대신 개개인의 탄소배출을 돌아보도록 만들기 위해 연간 1억 달러를 들여가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쳤다는 사실을요.
가졌으면서 더 가지려 하는 탐욕은 필연적으로 지구를, 인간을 황폐화합니다. 그 탐욕이 권장되는 체제 아래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죠. 이익은 사유화하고 위험은 사회화하는 자본의 논리 아래서는 어떤 구조적 변화도 불가능합니다.
전기차가 친환경이라는 마케팅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마치 핵발전이 친환경이라는 말과 같아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 리튬이 파괴하는 남반구의 환경과 노동착취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전환을 이루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그냥 자동차를 없애면 될 일 아닌가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겠죠! 저도 그랬답니다) 환경파괴와 인권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니 테슬라는 괜찮을까요? BP도 과거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했었죠. (폐기됨) 전기차도 결국은 수익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의 것입니다. 정말로 '전환'을 원한다면 내연기관의 전환이 아닌 탈것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입니다. 과학기술로 기후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눈속임(이자 모두의 바람)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요소(공공재, 도시구조, 소비시스템) 변화를 설계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더라도 사회에서 살면서 체제 바깥으로 나오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그래서 저자는 풀뿌리 운동과 정책으로의 연결을 중요하게 소개하고, 중독에 가까운 소비 문화를 바꿀 방법으로 '대안적 쾌락주의'를 소개합니다. 고립이 중독을 만드니, 광장으로 나오라는 거지요. (케이트 소퍼 <성장 이후의 삶>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 자본주의가 종용하는 재화를 싼 값에 소비하고 버리고 내가 먹고 입고 쓰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너무나도 안락한 방식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제법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주장 자체를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간주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사회니까요. 그런 시대이기에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게 만드는 이런 책이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덧. 저자는 개인적 노력의 실천을 폄하하지 않습니다. 그런 개인 실천에만 매몰되게 만드는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죠. 짧은 서평에 다 담을 수 없었던 논리와 데이터가 담긴 책을 읽고 또 권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