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이라는 답

그 이후

by 이음서가의 빈 잔


추상적인 것을 실재하게 하는 일에서부터 나는 계속해서 실제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이제는 이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다. 물론, 정말 웃으면서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작년은 꽤나 지난한 해였다. 누구도 하라고 하지 않은 일을 하려다 겪는 위기들은, 살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겪는 위기보다 나를 더 움츠리게 했다. 가을 밤. 완전한 타인이었다가, 잠시 내 편으로 머물고 있는 권우는 말했다.

“여기서 멈추면, 자기는 어떻게 살 것 같아.”

담배가 담뱃재가 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럭저럭 살지 않을까.”

답은 금방 나왔다.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두 달 내내 생각했다. 여기서 멈추면, 나는 어떻게 지낼까.


어차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업은 따로 있으니 생활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상은 조금 더 윤택해지고, 주말엔 간간히 외출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조금 더 할 수도 있고, 미루던 치과도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언젠가 다시 비슷한 일을 시작할 것이다.

내가 이 일만큼은 영리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유는 결국, 이 일을 '일'이 아닌 '언젠가 완성될 나'로 생각하며, 결국 마지막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 깊게 들었던 강의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디자인은 아트웍이 아니라 설계이고, 그 설계의 목적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내가 행복해야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여전히 꽤 지난한 나날이다. 그래도 하루에 5분쯤은, 예전보다 더 웃는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직한 누군가를 하루에 2분 정도는 웃게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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