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산타의 진실에 대해 알게된 순간 어떤 마음이었나요? 저는 우리집을 들르지 않고 넘어가는 산타가 서운해서, 진눈깨비처럼 바닥에 질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산타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봄처럼 진눈깨비가 녹는 기분이었지요.
지금은 산타의 선물보단사랑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떠올릴 때 더 행복한 걸 보면, 기적보다는 일상에 감사하는 게 제 관성에 더 맞는 거 같아요. 일상을 기적처럼 여기며 오늘까지 온 저와 닮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곧 8월을 맞으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 역시 영화를 좋아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와는 조금 다른 이유이지요. 음악은 현실을 마법으로 바꿔주어 좋은 반면에, 영화는 화면에 자신을 바로 투입하여 다채롭고 입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음악이 기적 같다면, 영화는 일상의 기적성을 깨닫도록 돕는 각성제 같습니다. 음악은 꺼지면 결국 깨어나 일상을 살아야 하지만, 영화는 천국 같은 일상을 계속 살게 해 주니까요. 저는 시간이 흐르는 천국에서 땅의 촉감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정원이 그러했듯이...
90년대 동네 변두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총각 한석규(정원 역)는 사실 과거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만나는 온화한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며 남은 시간을 담담히 정리해갑니다. 절망을 느끼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이 세상에 해탈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정원은 여름날 주차단속요원인 심은하(다림 역)를 만납니다. 계절처럼 풋풋한 다림이 정원의 인생에 들어와 버립니다. 혼자였던 다림의 우산 속에도 정원이 들어온 것처럼. 두 사람은 하나의 우산 안에서 새콤새콤한 우주를 걸어갑니다.
그러나 풋풋한 8월 같은 다림과 달리, 크리스마스를 닮은 정원은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사진관 문을 두드리는 다림과, 정원은 영원을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원한 작별밖에는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기에 늘 웃던 정원은 그때서야 무너집니다. 해탈했던 것이 아니라 해탈할 수밖에 없었다는 듯이...
정원은 그렇게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슬퍼도 하다가 결국 떠납니다. 늘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던 그는 마지막 사진으로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습니다. '웃으세요~' 라는 말로 늘 누군가의 긴장을 풀어주던 정원은, 혼자 남아 마음을 가다듬다가 미소를 남긴 채 사진으로 남습니다. 시한부 인생이었던 정원이 영원으로 남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확실한 방법이었을 테니까요...
이 영화의 매력은 절제미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병이 무엇인지조차 친절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무엇 하나 자극적이지 않고 현란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를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꼽습니다. 8월처럼 창창한 내일이 있으면서도, 크리스마스처럼차분히 정리해가는 우리를 닮았기에 그런 건 아닐까요.
사진관의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와, 창밖에 다림이 나타났음에도 차마 다가가지 못해 창을 쓰다듬는 정원과, 아들의 숨죽여 우는 소리를 듣고 찾아오고서도 아들 방의 문고리만 매만지다 돌아가는 부정의 그림자와, 관람자는 모르는 다림의 편지 내용을 보며 미소를 머금은 정원과, 정원이 떠난 후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며 추억이 되어 웃는 다림...
지루하도록 더운 여름에 찾아온 행복한 성탄절처럼, 아니 지루하도록 긴 여름을 성탄절처럼 감사하게 만드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