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밭일을 하고, 주말이면 자식이 온다. 그러기를 수십 년. 같은 삶의 양식에 고장 나버린 할아버지의 기억장치 대신, 할아버지의 빨간 라디오가 주인의 주머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부른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몇 년 전에 유행해도 할아버지에게는 언제나 최신곡. 밭일을 하던 시절에도, 라디오 안의 트로트 200곡은 돌아가며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라디오는 큰사위의 업데이트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손주 이름조차 늘 새로운 할아버지에겐, 모든 곡이 점점 최신 트로트가 되어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지금 초점 없이 앉아있지만 라디오는 기억한다. 지붕 밑 의자에 기억을 가지고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물푸레나무처럼 한때 장대한 집안의 기둥이었다. 넉넉한 하늘 아래 어디에도 한 뼘의 전답도 없는 빈손으로 씨앗을 내려, 어진 아내를 만나 부지런히 전답도 늘려갔다. 그렇게 장대히 푸르던 나무는 한 마디 천둥이었고, 아름드리가 되고서는 자식들을 내려다보는 울타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식 이름도 헷갈려하는 한 분의 기운 없는 할아버지... 주인의 손을 타지 못하자, 라디오도 급격하게 늙어가기 시작했다.
꺼져가는 라디오는 그래도 하나만은 기억하려 한다. 몇 년 전 초여름, 라디오가 열창하던 마지막 그 노래.
창 밖에는 동산의 나무가 일렁이고, 스스로 뒤집히며 신나던 신발들처럼 손주와 자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의 생신상 앞에서 춤을 춘다. 라디오의 음악에 기대어 노년의 고목은 끄덕끄덕 흔들리고, 시원하게 식은 벽에 희미한 미소를 기대었다.
나무껍질처럼 갈라진 마르고 거친 손을 큰딸이 부축하자 아름드리는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난다. 낯익던 가락이 고목을 휘감자, 세월의 무게가 올무에 걸려 위아래로 휘청거린다. 기억들이 희미해져 하얗게 서리를 맞은 머리. 검게 세던 기억들이 하얗게 사라져도 나목은 이 집에서, 당신의 가족 앞에서, 한평생 일군 터 위에서 춤을 추었다.
할아버지가 휘청이며 고단한 박수를 희미하게 칠 때마다 나무는 여남은 잎을 내려놓으며 빈손이 되어간다. 흥만 잔뜩 나던 라디오는 점점 붉게 뜨거워지다 노래가 끝나자 식어간다.
식어가는 라디오는 자식들의 박수를 회상한다. 가장이었던 할아버지가 꿋꿋이 세워온 울타리가 이젠 당신의 울타리가 되어 아버지의 별세계를 말없이 지켜보던 그날을.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반주 한잔과 반찬 한 젓가락이면 세상 부러울 것 없던 할아버지의 소박한 술상을 배우지 못해, 할아버지의 제사상은 그릇으로 잔뜩 배부르기만 하다. 소박한 술상과 라디오만 있으면 세상에 춤출 수 없는 곳은 없다.
배터리가 다 되가는 라디오는 조용히 할아버지의 별세계로 넘어가 술상 옆에서 같은 노래를 반복한다. 라디오도 할아버지처럼 흥건히 취해 빨간 얼굴이 더 붉어져 노래를 부른다.
할아버지의 산소에 바람이 인다면, 할아버지의 라디오가 강 너머에서 잔뜩 신난 날일 것이다.
P.s 배웅과 마중의 정류장에서 늘 환한 표정으로 맞아주시던 인상좋은 할아버지로 늙어가신 내 아버지. 비어버린 대문이 언제나 허한 마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