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by 지구 사는 까만별




고흐가 그린 ‘노란 집’의 건축물은 프랑스 아를에 있다. 하지만 지중해의 태양을 경험한 이후 관념적인 노란 집은 스페인에 있을 것만 같다. 여름이 건조한 기묘한 땅에서는, 그늘에서 여름의 더위도 느낄 수가 없다. 현지인이 낮잠을 자는 동안, 나무와 주택들이 여름을 받아 뜨겁게 타오르다 식어가기를 반복한다. 그런 도시의 정오, 햇살의 소생을 지켜보느라 이방인은 낮잠을 잘 수 없었다.

마차도 단잠을 자는 정오. 초여름의 정오 아래 반짝 부시어 내리는 노란 집들을 생각한다. 말굽이 박차는 깊은 협곡의 다리와, 호젓이 푸르게 흐르는 하늘천과, 하늘천을 따라 남겨둔 화가들의 결정(結晶). 경쾌한 말굽 소리는 바람을 가르듯 시간을 갈라, 여행자와 과거를 내달려주었다.

노란 집들은 그림자가 키를 훌쩍 넘는 오후가 되어서야 달리기를 멈추었다. 이제 푸르게 식어가는 어느 무어인의 집을 만날 시간. 성벽의 주인은 없어졌어도, 노란 집은 여전히 사람을 지키느라 열을 지킨다. 옛 주인을 생각하며 나는 조금씩 궁전의 중앙을 향해 발을 옮겼다. 윤기 흐르는 길 위에 묻힌 무수한 발자국과 그림자들이 햇빛에 녹아 밤을 기다렸다. 낮은 조금씩 성모 대신 꾸며진 도형들을 반사해 내기 시작한다. 드넓은 대지 위 주인의 비밀을 걸어 잠그고서 고고히 초승달을 기다린다.


사라진 민족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었을까. 건축물의 설명을 열거하던 가이드의 수신기에서 언어 대신 궁전의 추억이 선율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눈으로 건물의 장식을 보기 바쁘던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햇빛에 녹아가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못 위로 바라보았다. 학창 시절 들었던 뜻 없이 좋았던 기타 소리가, 어느 민족의 추억으로 일몰 동안, 그후로도 오래도록 퍼져나갔다.


한 명의 기타리스트가 한 민족의 추억을 기리듯, 한 명의 여행자가 여행지에 축복을 내릴 수 있다면. 태양에 노랗게 타오르는 건물 가득한 여름의 에스파냐를 서투른 마음으로 추억한다. 이질적인 문화 위를 누비던 마차 위의 일행들과 그 시기에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수많은 성당들과 무어인의 궁전이 한 땅에 있기까지 산재했을 아픔을 조용히 묵념한다.


그렇기에 행복이 만져지던 그 순간이 쉬이 빛바래지 않기를 바란다. 지중해의 여름으로 상징되는 작은 여행자의 행복이 구시가지에 늠름히 서 있던 나뭇가지에도 앉았다가, 스치며 지나간 노오란 2층 건물 테라스에도 머물렀다가, 노신사가 운영하던 한 낡은 노천카페에도 닿아 느리게 느리게 온기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P.S

비단 여행이 아니더라도, 슴슴한 현실에 달달한 음악을 더하면 누구나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다. 순간이 그리고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

천국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기에 그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지만, 음악은 현실을 시간이 흐르는 천국으로 만들어준다. 천국이 되는 현실 속에서 음악에 흠뻑 젖어가며 향기로운 상상을 해본다. 음악처럼 사람들의 향기로도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https://youtu.be/MbO5bPJiZv4?si=TaEpZZ-jYUh1NO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