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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Sep 18. 2024

소녀의 비밀정원




 오늘도 맑음이 흘러내리는 날. 아지랑이를 따라 밭으로 사라지는 엄마를 바라보던 작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일 년 내내 겨울이라매일 엄마 곁에서 낮잠을 잘 수 있을 텐데... 순정만화를 보느라 일찍  소녀는 주말에도 밭으로 나간 엄마를 생각하며 티브이를 보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눈을 뜨자, 소녀는 순정만화 속 친절한 지배인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어서 오세요. 비밀스러운 정원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보니, 소녀의 옷도 순정만화처럼 예쁜 드레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마차 속 거울로 보니 패티코트로  몽실한 치마에 놀란 소녀는 지배인을 쳐다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저는 이 정원의 지배인입니다. 마음이 빈 소녀에게 차를 대접하라는 주인의 명령이 있어 이곳으로 아가씨를 모셨습니다.”

  볼이 발그레해진 소녀는 지배인의 손을 잡으며 마차에서 잔디로 발을 디뎠습니다.     


 하얀 울타리 속 푸른 비밀의 화원을 거닐며 소녀는 지배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주인님은 누구신가요?”

 지배인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아가씨, 그건 비밀이랍니다. 다과회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한 식사가 모두 소화되어 허기가 밀려드는 오후, 소녀는 예쁜 다과상을 보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지배인의 도움을 받아 소녀가 자리에 앉자, 지배인은 미소를 띠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 정원에서 준비한 차와 다과를 곁들인 afternoon tea입니다. 아직은 어린 아가씨를 위해 홍차 대신 카페인이 없는 빨간 루이보스로 준비했습니다. 우유를 원하신다면 제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시장할 아가씨를 위해, 음식을 넉넉 두었습니다. 달콤한 걸 먼저 먹으면 다양하게 맛볼 수 없으니, 우선 담백한 샌드위치부터 드시고 알록달록한 과자들을 드시면 좋습니다. 접시 위쪽에는 촉촉하고 쫀득한 피낭시에, 견과류가 올려진 쿠키, 색색의 마카롱을 담았습니다.

제가 말이 길었군요. 맛있게 드십시오.”     


 햇살이 나뭇잎에 은은하게 가려지는 화원 아래서 소녀는 지배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낯설고도 맛있는 음식에 두 볼이 다람쥐처럼 부푼 소녀를 보고 지배인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박수를 두 번 치자 악사들이 나타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곁들여진 음악은 캐논의 변주곡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잔잔한 음악을 듣다 보니 볼이 빵빵한 소녀에게 졸음이 찾아왔습니다.

 “하암... 저 졸려요.”

 “하하 그러십니까? 그럼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아 두었으니 노래를 들으며 한숨 주무세요.”

 돗자리 위로 산들바람이 불자 소녀의 눈이 스르르 감겼습니다. 점점 높아지는 천장 사이로 포르르 새가 되어 점점 푸른빛으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거의 다 빈 접시로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콤한 빵내음과 홍차로 기억을 찾아가는 어느 영화처럼, 언젠가 이 기억을 추억으로 덧칠하는 통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지배인의 인사를 들으며 조금씩 소녀는 화원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때의 꿈은 도대체 뭐였을까?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먹는 한 영화를 감상한 어느 날, 나는 어릴 때 꿈속에서 만났던 점잖은 지배인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지배인이 주신 게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라는 거였구나...’     

꿈속의 기억을 나의 추억으로...’

 그날부로 꿈속을 재연하고자 하는 꿈을 현실로 데려왔습니다.     

 

 햇살 잘 드는 베란다 쪽 테이블 위로 소소한 이층 접시를 우선 준비니다. 평소엔 커피를 좋아하지만 지배인이 준비해 주었던 루이보스를 주전자에 우려내고, 오븐에 잠시 구워 바삭한 치아바타 속에 모짜렐라 치즈, 계란, 베이컨, 토마토, 루꼴라를 넣어 담백하게 준비한 샌드위치를 먼저 1층에 깔아둡니다. 샌드위치 옆에 초코 스콘과 케이크를 두고 2층 접시에는 피낭시에, 견과류를 올려 바삭한 타르트, 색색의 마카롱을 담습니다. 그날 꿈속에서 먹은 것과 흡사하게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배인이 말했던 주인이라는 게...’     

 무언가를 깨달은 나는, 꿈속의 소녀에게 애프터눈 티세트를 보내주기 위해 스피커로 캐논의 변주곡을 재생해 주었습니다. 그 지배인이 음악을 타고 넘겨받은 음식을 소녀에게 잘 전달할 니까요.     

 '지배인님, 집이 빌 때마다 마음이 허전해하던 작은 소녀에게 오늘  음식을 좋은 추억으로 전해주길 바라요. 그리고 제게 그날 좋은 기억을 남겨줘서 고마워요...'

 지치지 않는 스피커의 악사가 식탁 위에 캐논을 오래도록 연주했습니다. 내가 준비한 음식이 꿈속의 작은 소녀에게 온전히 배달될 때까지...      

              








https://youtu.be/Ptk_1Dc2iPY?si=EK38-VQv2mU7sd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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