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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l 15. 2024

천의유봉 2

To my Gambeson



 치장이라는 행위는 생각보다 유구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글이 없던 시대의 사람들도 장신구를 하고 다니곤 했으니까요. 글자가 없을 만큼 살기 팍팍한데도 여가시간에 팔찌를 만들고 싶은 것은 인간의 어떤 마음일까요? 사회로부터 사람을 보호해 주는 우아한 옷은 어쩌면 갑주보다 더 질길지도 모릅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옷이 참 좋았습니다. 어릴 적 가계가 넉넉지 않아 언니들 옷을 물려받으며 자란 지라 성인이 되고서 제게 맞는 새 옷을 바로 입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긴 치장의 역사를 저는 성인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했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하며 제게 맞는 갑옷을 찾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느날 리를 걷다가 상점에 진열된 물건 사이로 비치는 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보송보송한 먼지로 인해 거울보다 선명하지 않은데도 거울보다 섬세히 투영되는 내 모습이 있었지요. 새로운 시도를 한 차림새 사이로 세월만큼 긴 그림자가 보입니다. 인생의 여정은 흰 옷에 드리우는 그림자처럼 늘 밝지만은 않았고, 청춘이 좋은 걸 알면서도 그늘에 드리우는 날에는 마음이 잿빛이 되곤 했습니다.


 청춘이 좋은 지 알면서도 잿빛하늘이 드리우듯이, 청춘이 지나갔다고 볕 들 날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요. 밝음 뒤 배치된 어둠을 알고, 좋음 뒤 나쁨이 언제나 상생하는 걸 알고 사는 삶이 오히려 치기 어린 젊음보다 윤택했습니다. 인생의 중간지점을 돌아 여유롭게 호흡하며 걸어가는 어느새 중년의 여인은 피부도 쳐지고 입가 주름도 얼기설기 보입니다. 그리고 내가 입은 흰 옷 위로 젊은 날의 옷들이 스칩니다.     


 학업과 직장을 다니던 20대의 나를 위한 바지, 결혼과 육아로 생기를 찾아나갔던 3~40대의 나를 위한 꽃무늬 원피스들, 역할로서 모든 것을 완주해 가고 나 자체로 드러나고 싶은 지금을 위한 무채색의 옷들까지...

 옷장은 조용히 나의 옷을 담으며 나의 이야기까지도 오롯이 담아 주었습니다.     


 젊은 날부터 지금처럼 입었다면 좀 더 예쁜 과거의 모습이 찍혀있을까요. 어쩌면 지금의 하얀 옷에 들러붙은 시행착오와 실수들 덕분에  옷에 애착을 가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끝없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도 과정이 즐거운, 옷이 주는 낭만은 오늘도 이어집니다. 옷장에 걸린 제 의상의 역사를 바라봅니다. 시대에 따라 다른 빛깔과 깊이의 옷이 나를 압축합니다. 언젠가 지금의 갑옷들이 제 몸에서 맞지 않을 때가 오고, 제 마음에서 현재의 옷들도 역사가 되어 떠나는 날이 오겠지요. 수 백번의 바느질 자국을 견디고도 나를 위해 침묵으로 경호하는 질긴 갑옷들...

 옷감과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게 변합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처럼 조금씩 달라지는 옷감과 디자인으로 내 골격은 세월의 흔적을 오늘도 고스란히 받아냅니다.     

                         









 흰색의 깨끗함과 검정의 시크함을 상하로 배치하고, 긴 스커트를 더 좋아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와 짧은 스커트도 즐깁니다. 트위드 재킷이나 정장 차림에는 구두보단 운동화로 편안한 유행을 신기도 합니다. 올 블랙으로 다소 심심할 때는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줍니다. 색감이 들어간 목걸이나 진주 목걸이, 스카프를 즐기며 가방은 옷에 맞춰 가감을 정합니다.                    







# 오늘은  취향을 제시하는 날이라, 제가 즐겨 듣는 음악 한곡을 남깁니다.     


https://youtu.be/Ptk_1Dc2iPY?si=WBDtCnZq0sH-vn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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