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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Sep 29. 2024

오래전에 나는 여우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어느 평화로운 집에, 엄마와 꼬마가 서로를 끌어안고 자고 있었어요. 엄마의 손에는 얇은 그림책이 들려있었고, 남은 손으로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답니다. 엄마가 깊게 잠든 걸 확인한 동화책 속 아기 여우가 몰래 종이 밖으로 나와 꼬마를 깨웠어요.


"꼬마야, 나랑 같이 놀러 가지 않을래?"

꼬마는 눈을 비비며 여우에게 귀속말을 하고 싶었어요. 여우는 크고 뾰족한 귀를 꼬마의 입 가까이 갖다 대어 줬습니다.

"근데,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아기여우는 폭신한 몸을 꼬마에게 갖다 대며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잖아. 저기 가면 맛있는 것도 많아."

꼬마는 약간 고민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초코맛도 있어?"

여우는 씨익 웃었습니다.

"그럼 한 페이지 가득 있지! 엄마가 깨면 안 되니까 조용히 일어나. 같이 초콜릿 강으로 가자."


 꼬마는 조용히 여우 손을 잡고 일어났어요. 여우는 옷장문을 열었어요.

"나는 작아서 책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너는 아니잖아? 저기로 들어가면 바로 우리 집으로 갈 수 있어!"

'엄마가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하지만 이제 딸기맛 말고 초코맛 먹고 싶어. 저 친구는 사람이 아니고 여우니까 괜찮을 거야.'

 자고 있는 엄마를 잠시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꼬마는 옷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옷장 문을 열고 나오니, 여우네 집이었습니다. 꼬마가 옷장에서 나오니, 여우를 닮은 여우 가족들이 까만 눈으로 꼬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작은 여우 4마리가 꼬마의 곁에 와서 함께 말합니다.

"나는 누구게~!"

꼬마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옷장을 건널 때 여우의 오른쪽 뒷다리에 점이 있던 걸 생각했습니다. 꼬마는 조용히 뒤로 가서, 여우 뒤에서 노크를 했습니다.

"너지? 근데 너는 이름이 뭐야? 여기는 인간이 나 밖에 없으니까, 너는 나를 인간이라 불러도 되지만, 너희 집은 여우네 집이니까 "여우야~"라 부르면 6마리가 뒤를 돌아본단 말이야."

여우는 처음으로 당황한 얼굴을 보였습니다..

 "그... 그게 사실 책을 지을 때 작가님이 안 지어주셔서 이름이 없어."

꼬마는 아까보다 더 골똘히 고민하였어요.

"내가 가서 지어줄게. 일단 초콜릿 강으로 데려가줘."


 여우는 엄마여우가 싸준 빵바구니를 들고 뒷산으로 갔어요. 폭포에 물 대신 초콜릿이 흐르고 있었어요. 꼬마와 여우는 입이 시커멓게 되도록 빵에 초콜릿을 찍어 먹었습니다. 배가 불러 바로 옆 풀밭에 누운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꼬마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여기로 초대했어?"

여우는 처음으로 슬픈 얼굴을 띄었습니다.

"사실... 나는 이 책에서 나쁜 역할로 나와서 우리 가족 말고는 친구가 없었어. 그래서 이름도 없는 거고. 네가 엄마랑 같이 책을 보는 모습을 보고, 잠깐이라도 같이 놀고 싶었어."

 꼬마는 입을 닦고나서, 여우의 앞발을 잡았습니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솔직히 너한테 무서움도 느꼈지만, 같이 초콜릿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 우리는 밤에 만날 수 있으니까, 네 이름으로 '꿈이'는 어떻니?"

 여우는 벌떡 일어나더니, 폭포 옆 바위에 자기의 이름을 써보았어요.

"이거 맞아? 마음에 드는데?"

"응 맞아, 꿈이야!"


 어느덧, 숲에는 해가 지고 있었어요. 숲에서 해가 지면, 옷장 너머에서는 해가 뜨고 있다는 뜻이에요.   꼬마는 꿈이의 손을 잡았어요.

"꿈이야, 이제 나도 집으로 가야 해. 엄마가 해가 지면 저녁 먹으러 오라 했거든. 물론 아침이겠지만."

 꿈이는 미소를 지었어요.

"꼬마야, 내게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너랑 한 번 만난 게 다지만, 나는 앞으로도 꿈이로 네 마음속과 동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게. 나랑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꼬마는 그 순간 꿈이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꿈이는 옷장 앞에서 손을 흔들었고, 꼬마는 꿈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집으로 건너갔습니다. 잠든 엄마 품속에 몰래 들어가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다시 옷장을 열어봤지만, 여우네 문은 닫혀있었습니다. 정말 못 만나는 거구나... 꼬마는 꿈이를 생각하며 울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음날 엄마가 다시 읽어준 동화책에서 여우가 나왔습니다. 여우는 평소처럼 책 속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장난을 쳤습니다.

 '작가님이 시키는 대로 장난을 치지만, 꿈이는 좋은 친구야.' 꼬마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여우를 떠올렸습니다.


  엄마가 책장을 넘기는 동안 여우의 가슴에 '꿈이'라고 적힌 명찰이 잠시 반짝거렸습니다. 꿈이는 잠시 꼬마를 바라보다 등을 돌리고 작은 뒷모습만 남겼습니다. 꼬마는 오른쪽 다리에 점이 있는 여우 한마리가 조금씩 작아져 가는 것을 눈을 반짝이며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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