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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by 지구 사는 까만별



물오른 잎새에 여름의 끝자락이 나풀대던 어느 휴일 오후. 늦게 찾아간 연못의 풍경에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이제 나는 무얼 그릴 지 고민해야 한다.

늦게 찾아간 연못의 풍경. 노을에 물든 하늘이 붉음을 식히느라 연못 속에 들어가 있다. 찰랑찰랑 거리는 수면의 손짓에 색깔이 수시로 변신한다. G선상의 아리아가 떠오르는 바람이 물결처럼 흐르는 이곳. 하늘이 드리워진 높디높은 지붕 아래 천장이 낮은 집에서 나온 내가 있다. 내 장기들이 있으면 있는 대로 나의 감각이 되어준다. 내 귀는 새가 지저귀는 소릴 들을 수 있는 청각이고, 내 코는 먼 나무의 향수를 맡는 후각이다. 부드러운 커피 한잔에도 감성을 일깨 울 수 있는 미각으로 나의 작업을 시작한다. 바람을 잡던 촉각으로 붓을 잡고, 호수에서 빈 공간들로 내 눈을 옮긴다. 배고픈 작가에게까지 풍경을 나누는 자비로운 호수. 나의 붓은 풍경을 향해야 하는 것일까.


개구리 연못 , 클로드 모네





초저녁,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가을 맞을 채비를 다 해놓은 사람들처럼 여유로운 그들. 연못 주위를 돌기 위해 걷기 편한 옷을 입은 시민들에게 노을은 화려한 드레스를 준다. 물갈퀴를 가지고도 우아한 호수 안의 백조처럼 호수 주위를 돌기 위해 가볍게 준비한 사람들이 흐붓하다.


작은 쪽배를 타고 달빛 아래 산책을 젓는다. 유유자적하게 일렁이는 물결에 불빛이 잘게 부수어진다. 사람들은 물결들을 쳐다본다.

허나 물결 위의 불빛과 나에게 긴 밤을 준 커피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화구들은, 물결 위의 나그네들에 의해 만들어져 감을...

움직이는 삶의 파편들이 물결이 되어 빛으로 일렁인다. 나는 풍경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풍경 속의 사람을 그리는 화가가 될 것이다.


휴일 오후 연못의 풍경에는 인물이 가득하다. 이제 나는 웃고 있는 그들을 그린다.


개구리 연못.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S

'개구리 연못'에서 르누아르와 모네 모두 비슷한 구도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모네는 반사되는 물결에 집중하였고, 르누아르는 그 안에서 한낮을 즐기는 사람들에 더 집중하였지요.

모네는 인상파의 시작으로 추앙받았고, 르누아르는 인상파와 고전파의 중도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사실 르누아르는 유파보다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그림을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백오십 년 전 시민들이 좋아하던 그의 그림들을 오늘날의 저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저도 그처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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