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막내 여동생은, 우리 엄마 대신 오빠의 막내딸을 돌보아주었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 대신 조카를 기르다, 결혼하고 다른 성인 정 고모로 살아가셨다. 성이 달라져도, 고모의 자식들이 생겨도, 여전히 고모는 오빠의 막내딸을 지켜주셨다.
'쉬는 날 놀러온 조카는 내 아이들과 달리,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이 없었다. 자식농사를 짓기에는 밭일하기도 지치던 오빠네였으니까...
주말이나 방학 때 찾아온 조카가 글의 가뭄에 말라죽지 않도록, 우리 집의 장서에서 언제든 책을 꺼내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서도 책을 펼쳐 항해할 우리 조카. 어느 환경에서도 배우려고 하는 우리 조카를 위해, 조카의 손을 잡고 교회가서 기도했다.
"우리 조카가 안녕할 수 있기를."'
일요일 고모를 따라간 언덕배기에서 들리는 교회 오르간 위로 피어나는 생소한 목사님의 기도제목에는 어린 나를 위한 고모의 기도가 섞여있었다. 아멘 소리에 기도가 끝나고, 언덕을 다시 내려가면서 바라본 세상 풍경의 은혜로움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귀여운 아이들조차 농사 때문에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나의 부모님을 위해, 할머니 몰래 고모가 찍어준 내 돌사진이 내 손에 들려있다. 고모의 사비를 털어 예쁜 옷을 사서 사진관에서 남긴 나의 흑백 돌사진. 사진관과 의상실에서 가격을 미리 묻고, 예산이 초과되서 할머니가 키우던 잔디 씨를 당일 훔치고, 가계와 달리 참 통통한 조카를 업고 걸어간 흔적이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흑백 사진에서 옷 색깔을 알 수 없듯 고모의 노력은 직접 들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장의 형태처럼, 당시 수두에 걸린 나를 업고 읍내까지 걸었던 고모의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오롯이 전해져 내 손 위에 여전히 뜨겁게 남아있다.
꼬까옷 입고 좋아서 사각거리는 새로운 질감의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꼬까꼬까 거리던 아기가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고, 우리 고모는 이제 칠순 중반을 바라본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데도 어린 나를 위해 기도하던 고모의 종소리가 흑백의 시절부터 오늘까지 계속해서 은은히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