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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가치관 변화 속 신데렐라 드라마의 성공기제(2)

<사내맞선>을 중심으로

※원제 : 여성 시청자의 가치관 변화 속 신데렐라 드라마의 성공 기제 - <사내맞선>을 중심으로


II. 본론


1. 신데렐라 드라마의 흥미유발 기제


첫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신데렐라 서사에 내재한 흥미 유발 기제와 그것이 여성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시청 동기로 작용했는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여성향 드라마의 한 종류인 신데렐라 서사는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을 전제한다. ‘어디에서’, ‘왜’ 대리만족을 얻는가에 관해서는 기존의 논의에서 다양한 논쟁이 있어 왔다. 그에 관해 오랜 기간 대표적인 이론이고 정론처럼 수용되었던 것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였다. 그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콜레트 다울링(Colette Dowling)’의 저서 『신데렐라 콤플렉스』(THE CINDERELLA COMPLEX, Women’s Hidden Fear Independence)에서였다. 그는 이 책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여성들의 의존성을 주장(콜레트 다울링, 김영만 옮김, 『신데렐라 콤플렉스』, 을유문화사, 1991, 28-29쪽. 원서는 1981년에 출간되었다.)하며, 여성들이 남편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자신들의 책임을 떠맡아 줄 왕자님을 찾고 있다고 이야기했다.(콜레트 다울링, 위의 책, 176쪽) 즉, 여성 시청자들은 여자주인공의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 욕구를 대리로 충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콜레트 다울링이 살았던 당시가 현대와는 다르고, 더 이상 ‘신데렐라 드라마’의 흥미 유발 기제를 여성들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이후 대두되었다.(신원선, 「한국 드라마를 통해 본 "신데렐라 콤플렉스" 비평의 문제점 -<꽃보다 남자>를 중심으로」, 『한민족문화연구』, 31, 한민족문화학회, 2009, 498쪽)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뜻하는 의존적 여성상, 남성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망은 결혼을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을 텐데, 실제 수용자들은 드라마에 표현되는 사랑의 과정을 부러워할 뿐 결혼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 또한 있었다.(윤선희,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역전이와 코라」, 『한국언론학보』, 제49권 2호, 한국언론학회, 2005, 92쪽) 그러나 여자 시청자들이 가시적으로는 남녀 간의 로맨스에 만족하고 신분상승에 관심 갖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것이 계급 이데올로기가 생산한 욕구와 무관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압도적인 재력을 가진 남성 캐릭터가 재생산되고 그러한 캐릭터와 평범한 여자주인공 간의 로맨스가 재차 인기를 얻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들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했고, 상위 계급을 욕망하는 문화 주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데렐라 서사는 결코 자본주의에 기반한 젠더 권력 차와 분리하여 설명할 수 없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러한 권력 차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서 여성 시청자가 얻는 대리만족이 단지 재력이 뛰어난 남성과의 ‘로맨스’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최근에 현대화를 거친 신데렐라는 더 이상 평범하고 가난하지만 예쁘고 착하다는 특징만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상대 남성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매력과 남성과 어울릴 수 있게끔 하는 최소한의 능력을 요구받는다.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계급을 전복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뛰어난 재력과 매력의 소유자가 평범한 여자 캐릭터에게 휘둘린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즉, 대리만족은 평범한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인 재력가 남성 캐릭터와 결합하는 데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결합 과정에서 재력가 남성이 자진해서 여성 캐릭터와 결합하려고 ‘노력’하는 데에 있다. 그러한 대리 만족은 연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을 이용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권력 차이를 좁히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김흥규와 오세정의 연구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꽃보다 남자>의 경우, 시청자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종의 부와 권력의 계급 차이가 두 주인공 간의 관계에서는 파괴되면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즐거워한다. 반대로 여자주인공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막대한 재력을 발휘하는 데에서는 빈과 부의 대비를 통해 극대화되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없을뿐더러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데에 방해되는 억지스러운 설정이라고 느낀다.(김흥규 ‧ 오세정, 「판타지 드라마의 심리적 만족 유형에 관한 연구: <꽃보다 남자>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 『방송 문화 연구』, 제21권 1호, 한국방송공사, 2009, 159쪽) 이를 통해 여성 시청자가 남성 캐릭터의 부를 단순히 동경하거나 그들에게 의존하고 싶은 심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낭만적 사랑이라는 수단을 통해 주인공들 간의 현실적인 계급 차를 극복하는 데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내맞선>의 경우, 매력적인 재력가 남성 캐릭터에 대응하는 ‘강태무’가 평범한 여성 캐릭터 ‘신하리’에게 매달리게 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위장 계약 연애 전략을 취한다. 원래라면 그렇게 엮일 이유가 없는 두 사람에게 자꾸 만날 수밖에 없는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진영서’를 대신해 맞선에 나옴으로써 신하리를 재벌녀인 진영서로 오해한 강태무는 신하리에게 비즈니스적 정략결혼을 제안한다. 결혼을 파토내 달라는 진영서의 부탁을 받고 맞선 자리에 대신 나온 신하리는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거절하고 맞선 자리를 나오다가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인 민우를 마주칠 뻔한 신하리는 어쩌다 강태무의 차량에 올라타게 된다. 왜 차에 올라탔냐는 물음에 어쩔 수 없이 다시 확실히 결혼 거부 의사를 밝히기 위해 왔다고 설명하고, 그 이유를 말해달라는 강태무에게 신하리는 온갖 변명을 쏟아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하리는 의도치 않게 강태무에게 각인된다. 



신하리 : 어, 정말 다시는 얼굴 보고 싶지도 않고 또 그쪽이랑 저랑 결혼하고 싶은 생각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다시는 연락하지 마시라고 제가 그 말을 하려고 왔네요. 그럼 전 이만...

강태무 : 그래도 난 할 겁니다, 결혼.

신하리 : 네?

강태무 : 그러니까 말해 봐요. 왜 나랑 결혼하기 싫은지.

신하리 : 다, 다 싫어요, 다. 막 ‘나 잘합니다’ 어쩌고 그런 이상한 느끼한 멘트 하는 것도 싫고요, 또 시조새 닮은 그 얼굴도 싫어요.

강태무 : (어이없는) 시조새요?

신하리 : 그럼 전 이만 갈게요. (차문을 열고 휙 나가는)



이후, 강태무는 정략결혼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보다 신하리가 자신을 칭했던 ‘시조새’라는 모욕적인 별칭에 골몰한다. 비서인 ‘차성훈’에게 시조새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고, 이후에 신하리가 가짜 진영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어떻게 감히 대타 주제에 느끼하다느니, 시조새를 닮았다느니 할 수 있냐며 치졸한 복수를 다짐한다.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설정된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여자주인공의 사소한 말에 심기가 어지럽혀진다는 것 자체가 여자주인공의 장악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두 사람이 실은 상사와 직원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갑을 관계가 해소되는 기분마저 느껴진다. 게다가 높은 권위의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막말에 혼란을 느끼고 심지어 삐지기까지 하는 모습은 남자주인공의 귀여운 매력을 한층 높이는 효과까지 낸다.(처럼 남자주인공의 권위를 낮춤으로써 서사에 재미를 더하는 전략이 <사내맞선>에서만 쓰였던 것은 아니다. <꽃보다 남자>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언뜻 완벽해보이는 남자주인공 ‘구준표’가 고사성어를 당당히 틀리는 모습을 부각함으로써 시청자가 남자주인공에게 느끼는 괴리감을 줄이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권력 관계를 전복하는 전략에는 남자주인공에게 의도적으로 정신적 결핍을 부여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 이는 <파리의 연인>에서의 결벽증, <시크릿 가든>에서의 폐소공포증, <상속자들>에서의 서자 설정 등 수없이 반복된 클리셰의 일부다. <사내맞선>의 경우, ‘비 공포증’이 정신적 결핍에 해당한다. 비 오는 날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까닭에 비를 두려워하는 강태무를 신하리가 치유해준다는 서사다. 성인이 되도록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강태무를 신하리가 보듬어줌으로써 신하리가 강태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이유를 부여한다. 거기다가‘비 오는 날 지하철 데이트’, ‘꽃 시장 데이트’, ‘습하고 꿉꿉한 날씨에 전 먹기’와 같이 일상적이고 서민적인 트라우마 치유 방법은 두 사람의 계급 차가 서로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서사를 두고 ‘대안적 가치를 통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가치 전복’(윤선희, 위의 글, 105쪽)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여자주인공이 가부장제의 질서에 편입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맺어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전복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이 글은 김상미 선생님의 성균관대학교 2022학년도 1학기 국어국문학과 수업 <한국대중문화론> 과제물로 제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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