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시선
4년 전쯤 일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늦깎이 대학원생.
다행히 사회복지 전공은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나와 같이 가족이 장애인으로 구성된 학생은 많지 않았다.
그 당시 이렇다 할 벌이 없이 공부만 하던 때여서 정말 많은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바리스타, 건설기계, 떡제조기능사, 조주사 등의 자격증과 철학서적, 여행 등 정말 많은 일들을 벌여서 일을 할 때 보다도 더 바쁜 시간을 보냈다. 백수가 더 바쁜 법이니까...
그러던 중 장애인식개선 강사라는 것이 있어 빠르게 검색해 보았다.
우선 자격은 장애당사자 혹은 그 가족이었다.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주최하고 시험은 1차 강의 PT, 2차 필기시험이었다. 이 시험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더욱 깊숙이 빠져서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반드시 합격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죄를 짓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
먼저 실기시험은 3주 후. 10 분량의 PT를 만들어 제출. 시간이 많지 않았으나 도전. 운이 좋게도 합격되었다.
2차 필기시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쉽게 출제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었다. 뭐 그냥 기능사 정도 필기시험의 수준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장애인 당사자 가족으로서 또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었기에 크게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동안 시행된 시험문제에 대한 족보도 자료도 없었다.
난감했다. 자격 허들이 높다 보니 그럴 수밖에... 그렇게 필기시험을 보고 나오니
이건 뭐 완전히 배신당한 느낌이었고 너무 굴욕적이었다. 너무 어려웠다 시험이. 1차를 통과한 100명 정도가 2차에 참석했는데 나중에 합격자 리스트를 보니 8명이 합격되었다.
다행히도 그 안에 나의 이름도 있었다.
사실 내가 장애인식개선 강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나와 사랑하는 작은아이와 겪었던 수많은 날의 추억이 강의자료로 만들어지길 원했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꼭 필요한 내용을 넣다 보니 많은 강사들의 자료는 조금은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고통스러운 날들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목표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난 그것이 좀 마땅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과 지낸 좋은 추억과 해프닝 위주로 자료를 만들어 강의를 하고 있다.
나의 아들이, 우리나라 인구 중 5~6%의 장애인들이 타인의 시선에서부터 편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단지 비장애인일 뿐이니까.
이 글은 이란성 쌍둥이 아이(장애인)를 키우며 살아가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연재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If Only I Wer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