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온 손님 16명을 데리고 서울-경주-부산을 도는 일주일짜리 투어를 마쳤다. 몇 번 해본 코스지만 손님이 많으니 꽤 빡셌다. 그래도 마지막에 팁 봉투를 받았는데, 오만 원짜리도 있고 천 원짜리도 있고, 달러에 파운드까지. 봉투가 두둑한 걸 보니 만족하신 것 같다. 이번 투어 팁으로만 80만 원 정도 벌었다. 전 일정을 진행했던 투어 가이드로서 보람도 있고 돈도 벌면서, 기분 좋게 마무리한 투어였다.
케데헌, BTS, 오징어 게임... K-컬처 열풍 덕분일까, 요즘 한국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자유여행으로 오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패키지로 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한국은 교통도 편하고 안전한데, 왜 굳이 패키지로 올까?" 여행 가이드인 나도 처음엔 이런 질문이 들었다. 그 이유는 나라마다 좀 다르다.
동남아 관광객이 패키지로 오는 이유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오는 분들은 개인 여행으로 한국에 올 때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태국은 무비자지만 입국심사에서 거절당하는 일도 종종 있다. 패키지로 오면 단체비자로 비교적 쉽게 입국이 된다. 여기에 홍삼, 화장품 쇼핑센터 방문이 포함된 '쇼핑 패키지'는 가격도 저렴하다. 일정도 3박 4일 정도로 짧고, 주로 서울과 남이섬, 에버랜드 등 수도권 위주로 돌아본다.
영미권 중장년층이 패키지로 오는 이유
북미나 영국 쪽은 좀 다르다. 이분들은 무비자에 노쇼핑이니 비자나 가격 문제로 패키지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그냥 편해서 온다. 패키지는 보통 일주일, 10일, 길면 2주짜리도 있다. 아무리 한국이 여행하기 편한 나라라도, 그 일정을 전부 직접 짜고 호텔, 교통, 티켓까지 예약하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프로젝트다. 그 수고를 덜고 싶은 거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패키지를 선택하는 이유랑 똑같다. 그래서 50~70대가 많다. 이번 투어에는 80대 분도 한 분 계셨다.
20~30대 여성 여행자가 패키지로 오는 이유
꼭 나이 드신 분들만 패키지로 오는 건 아니다. 몇 달 전에 진행했던 투어는 K-POP 댄스 수업이 포함된 배낭여행 스타일의 패키지였는데, 총 18명 중 17명이 20~30대 여성이었다. 남자 한 명은 여자 관광객의 남자친구.
이분들이 패키지를 선택한 중요한 이유는 치안이었다. 실제로 영국에서 온 관광객한테 들은 얘기인데, 런던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꺼내들 때도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탄 소매치기들이 휙 낚아채 가는 일이 많다고. 자국의 치안이 불안하다 보니 아무리 한국이 안전하다는 말을 들어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를 혼자 가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패키지를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면 카페에 핸드폰이랑 노트북을 놔두고 화장실을 가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투어 끝날 때쯤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요?" 물으면, 여행 내내 안전했던 게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거리를 걸으면서 불안하지 않았다는 분도 있었다.
사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매일 마시는 공기처럼, 느끼지 못하고 사는 거다. 길거리를 걸을 때 누가 따라오지 않을까, 물건을 낚아채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거의 느껴본 적 없으니. 하지만 그게 당연하지 않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안전함이 그 어떤 관광지보다 인상적인 경험이 되는 것 같다.
한국의 안전함을 실제 확인하고 경험했으니... 이런 분들은 다음엔 패키지 없이 개인 여행으로 온다. 나 같은 가이드가 필요 없어지는 거지만... 그래도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한국인 패키지 vs 외국인 패키지, 어떻게 다를까?
한국인 대상 패키지는 항공권이 포함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반면 외국인 패키지는 항공권이 빠진 경우가 많다. 여행사가 "몇 월 며칠 저녁 6시, 명동 A호텔 로비 집합"이라고 정해두면, 손님들이 각자 알아서 그 시간에 맞춰 온다. 한국은 나라가 작으니 어디서든 인천공항으로 모이면 되지만, 미국은 워낙 크니 뉴욕, LA, 댈러스에서 각자 출발해서 한국에서 만나는 거다. 어떤 분은 집합 날짜에 딱 맞춰 오고, 어떤 분은 며칠 일찍 와서 자유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첫날 저녁에 호텔에 다 모이면 웰컴 미팅을 하고, 웰컴 디너로 투어를 시작한다. 인솔자 없이 현지 가이드인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담한다.
식사도 다르다. 한국인 패키지는 식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외국인 패키지는 대부분 호텔 조식만 포함이다. 점심과 저녁은 각자 부담이지만, 많은 분들이 가이드가 추천해준 곳에서 함께 식사한다. 그런데 같이 갈 수 있는 식당을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채식주의자, 계란은 안 먹지만 유제품은 먹는 채식주의자, 해산물 알레르기, 땅콩 알레르기... 외국인 손님들은 스페셜 식단이 많다. 그래서 투어 전에 "이번엔 스페셜 식단 없음"이라는 정보를 받으면 속으로 "삼겹살이다!" 하고 혼자 기뻐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상대적으로 식단 제한이 적을까,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별로 없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동 방식도 차이가 있다. 보통은 전세버스지만 젊은 여행자 대상 투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럼 내가 미리 티머니 카드를 10장 넘게 사서 충전해서 나눠줘야 한다. 지방에서는 택시를 잡아야 할 때도 있는데, 18명이면 택시 5대다. 한 대 잡고, 손님 4명 태우고, 짐 싣고, 또 다음 택시 잡고.
가이드라고 하면 관광지에서 유적 설명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기차역 데려가고, 화장실 위치 알려주고, 택시 잡아주는 이런 보이지 않는 업무가 훨씬 많다.
가격은 얼마나 할까?
북미·유럽 관광객 대상 스탠다드 패키지(클래식 투어라고도 한다)는 보통 3성급 호텔 기준이다. 금요일 도착, 다음 주 금요일 출국 기준으로 서울-경주-부산 7박 8일 일정을 예로 들면, 항공권 불포함, 호텔 조식 포함, 점심·저녁 불포함, 호텔·교통·기본 입장료·가이드 포함 조건으로 300~400만 원 선이다.
지금까지 외국인들이 왜 한국에 패키지로 오는지, 여행 가이드 입장에서 적어봤다. 해외 여행을 패키지로 가본 적이 거의 없어 잘 모르는데, 한국인이 해외 여행 패키지 투어를 선택하는 이유와 비슷한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