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없었다면? 경복궁 자리에 일본 신사가 있을 것이다

외국인 투어 가이드가 광화문에서 들려주는 이순신 장군 이야기

by 이동익

만약 한국을 일주일 동안 여행한다면 어디를 가보고 싶을까? 뭘 해보고 싶을까?


나는 외국인 대상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 손님들이 7박 8일 패키지 투어로 한국에 오면 서울에서 2~3일, 경주에서 2일, 부산에서 2~3일. 대략 이렇게 돈다. 물론 일정 사이사이에 템플스테이나 DMZ 방문 같은 투어가 포함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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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런 관광지에서 외국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사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경복궁이나 부산 같은 관광지가 너무 일상적인 공간이라서 오히려 깊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광화문 근처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경복궁 앞을 지나는 사람이었지만, 가이드를 하기 전에는 경복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이드를 하면서 한국의 관광지, 역사, 문화에 대해 다시 배우고 있고 지금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앞으로 이런 글들을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투어 시작점, 서울. 서울의 주요 관광지와 그곳에서 내가 외국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광화문이라는 공간


보통 외국인 관광객들이 금요일 밤에 한국에 도착하면 간단히 웰컴 미팅을 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한다. 시간이 되면 청계천을 산책하거나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을 즐기러 가기도 한다.


본격적인 투어는 2일 차부터 시작이다. 서울은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관광지가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곳은 경복궁이다. 그래서 오전에 보통 경복궁을 간다.


대부분의 가이드는 바로 경복궁으로 향하는데,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광화문 광장은 가이드를 하기 이전부터 내게 특별한 공간이었다. 집 근처라 산책도 자주 했고, 주변 카페나 음식점에서 약속을 잡기도 했다. 나에게는 정말 친숙한 공간이라 그만큼 정이 더 많이 들어서일까?


보통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투어 일정 상당수에 광화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바로 경복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라도 나는 호텔을 조금 일찍 출발해 광화문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경복궁으로 간다.


그럼 광화문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광화문의 두 동상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두 개의 동상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외국인들에게 "당신 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두 명은 누구냐"고 물으면 대답이 정말 다양하다. 예를 들어 영국인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윈스턴 처칠, 아이작 뉴턴, 넬슨 제독,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두 이름을 말할 것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그만큼 이 두 사람이 한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한국 역사에서 세종대왕은 '문(文)'을, 이순신 장군은 '무(武)'를 대표하는 영웅이라고 설명한다.


그럼 외국인들에게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설명할까?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생애


16세기 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다.


그 당시 한반도의 왕국이었던 조선은 200년간의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며 국방력이 약화되어 있었다. 반면 일본은 100년 이상 지속된 내전이 막 끝난 상태였다. 그 오랜 전쟁 속에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고, 거기에 최신식 무기인 조총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이런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일본은 부산 상륙 후 불과 20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왕은 급히 수도를 버리고 북으로 피난을 떠난다.


나라가 거의 무너질 위기. 그 절체절명의 순간, 바다 위에서 일본 수군을 연이어 격파하며 나라를 지켜낸 장군이 바로 이순신이다.


그런데 이순신의 생애는 정말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하며 전쟁의 전세를 바꿨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파면당한다. 투옥, 고문까지 겪는다.


우여곡절 끝에 복귀하지만 상황은 처참했다. 그가 투옥되어 있던 동안 조선 수군은 일본군에게 대패했고, 남은 배는 겨우 12척.


모두가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며 출전을 만류했다.


그때 장군이 왕에게 올린 한마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12척만으로 130척 이상의 일본 함대를 상대해 기적 같은 대승을 거둔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이제 그 격동의 삶에도 드디어 평온이 찾아오는 걸까?


아니었다.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해전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한다. 그 마지막 순간에도 전쟁의 승패를 걱정하며 이 유언을 남겼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만일 그가 없었다면


만일 그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투옥되어 풀려나지 못했다면? 아마 여러분은 지금 한국 여행이 아니라, 일본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본 가이드인 나는 이런 설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은 16세기에 일본에 병합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왕조였다. 여기 광화문은 그 왕조의 주요 정부 부서가 있던 곳이었다. 저기 신사가 보이는가? 저곳은 원래 조선의 주궁 경복궁 터였는데 전쟁 때 완전히 불탔고, 이후 조선이 일본의 일부가 되면서 일본은 전쟁에서 사망한 자국의 영웅을 기리기 위한 신사를 세웠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영웅. 초인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코리아의 국민이고, 한국어를 쓰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K-팝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는 수백 년 전에 전사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절대 잊히지 않는, 영원히 살아있는 불멸의 영웅이다.


지금도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 선 그의 동상은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조선의 주요 관청이 있던 광화문은 단순히 과거의 공간이 아니다.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도 결정적인 순간들을 함께한 장소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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