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서 울컥해지는 이유

조용한 광장 아래 잠든 역동의 역사

by 이동익

광화문광장에 서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있습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중심지입니다. 그러면 서울의 중심은 어디일까요?"



서울의 중심은 어디일까


요즘은 강남 스타일이 워낙 유명하니 강남일까? 사실 서울은 인구 천만의 거대한 도시라 딱 중심이라고 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그때의 서울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성곽 둘레가 약 18km, 경복궁을 중심으로 반경 2~3km 정도의 도시였다. 그 서울의 한가운데에 조선의 주궁 경복궁이 있었으니, 당연히 여기가 서울의 중심이었고, 곧 조선의 중심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 역사가 대한민국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복궁 바로 뒤에는 대통령 집무실이었던 청와대가 있다. 광화문 주변을 둘러보면 정부종합청사, 외교부 본부가 보이고, 한국 최고의 예술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도 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신속하게 정치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 주요 언론사도 이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서울이 엄청나게 커졌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여전히 이곳이 서울의 중심부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중심부이기 때문에 곧 대한민국의 중심부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성지


중심부라서 그런 걸까. 이곳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을 함께한 공간이다. 사실 광화문 광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이기도 하다.


1987년, 수십 년간 이어진 독재에 맞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이 광장에 모였다. 독재에 저항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민주주의의 성취를 이루어냈다.



위기는 반복된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은 항상 위기를 겪게 마련이다.


2016년에는 국정농단에 휘말린 대통령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여기 광화문에서 열렸고, 결국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그리고 채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2024년 12월, 당시 대통령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불법적으로 군대를 국회까지 보냈다.


결국 그 대통령도 탄핵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집회를 했다. 다만 2016년과 달랐던 점이 있다. 2016년에는 거의 한 목소리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지만, 2024년에는 한편에서는 탄핵을 찬성하고 한편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두 개의 상반된 그룹이 같은 공간에서 집회를 했다. 둘 사이의 충돌이 우려될 정도로 긴장감이 높았지만, 다행히 어떤 폭력적인 사고도 없이 집회가 진행되었다.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 분명 아픈 역사였다. 하지만 탄핵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과정이 모두 민주적 절차에 의해, 법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붉은 악마의 함성


광화문 광장은 이런 정치적 공간만은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 한국 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응원을 했다.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이 빨간색이었기 때문에 응원객들도 모두 빨간 옷을 입고 응원을 했고, 그래서 '붉은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뜨거운 함성 덕분이었을까. 한국 팀은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았던 곳


지금 이 순간 광화문 광장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하지만 이 광장은 대한민국의 과거뿐 아니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지금은 이렇게 평화롭지만, 미래에 또 어떤 정치적 격변이나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이 공간에는 다시 수만, 수십만 명이 모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외국인 관광객에게 들려줄 때도 숙연해지지만, 이 광장에서 펼쳐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얘기할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마 수백 년 전의 일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한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 이렇게 광화문 광장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다가온다. 10시에는 경복궁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기 때문에 그걸 보기 위해 경복궁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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