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결단, 수십억 명의 하루
오늘 갑자기 여행사 담당자님한테 전화가 왔다. 5월에 잡혀 있던 투어 하나가 취소됐다고. 미국 대학생들이 한국에 방문하는 투어였는데, 미국이 지금 이란하고 전쟁 중인 나라잖아. 우연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오전에 다른 가이드님한테도 연락이 왔다. 불가리아에서 들어오기로 한 팀이 갑자기 취소됐다고. 3~4월이 성수기인데 아직 잡힌 투어도 많지 않고, 혹시 투어가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고 하시더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자꾸 다른 일하고 연결 짓는 게 사람 심리인 건 알지만, 여행업이라는 게 국제정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업이라서.
여행업은 왜 이렇게 취약한가
가장 심했던 건 코로나였다. 몇 년 동안 여행 자체가 멈춰버렸고, 음식 배달 알바하면서 버틴 가이드분들도 계셨다. 경제위기가 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여행이다. 음식은 먹어야 하니까 필수품이지만, 여행은 어떻게 보면 사치재니까. 그 타격이 저희한테 직접적으로 온다.
한 사람의 결단, 수십억 명의 영향
이번 전쟁도 그렇다. 물론 한 명이 일으켰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고 수많은 사건이 빌드업되어 있지만, 그 방아쇠를 당긴 건 결국 한 사람의 결단이었다. 그 한 사람의 결단 때문에 지금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영향을 받고 있다. 전 세계가 이렇게 연결돼 있구나. 한 명의 결정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예전 왕정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민주주의 시대인 지금 절대자의 영향력이 오히려 더 커진 것 같다. 그만큼 세계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지금 내 상황, 솔직하게
나는 그래도 4월 중순까지는 꽤 바쁘다. 전쟁 전에 이미 확정된 일정이니까. 문제는 그 이후다. 5월 투어 하나가 오늘 취소됐고, 8월 투어도 얼마 전에 취소됐다. 6월 이후로는 일이 없는 상황이다. 같은 여행사에서 5월에 다른 투어가 하나 더 있는데, 일주일이 넘는 투어라 나한테는 꽤 큰 건이다. 그것도 혹시 취소되는 건 아닌지 물어봤는데, 다음 주 월요일까지 결과를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미국인 투어라 불안하긴 한데… 취소되지 않기를.
프리랜서의 양날의 검
프리랜서 가이드 생활이 작년 재작년에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일정도 내가 조절할 수 있고, 성수기에 바짝 벌고, 쉬고 싶을 때 쉬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그게 양날의 검이 된다. 직업 안정성이 없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프리랜서 가이드는 적극적으로 이력서를 뿌려서 일을 받는 구조가 아니다. 아는 여행사, 아는 가이드분들을 통해서 일이 들어오는 수동적인 구조라서 외부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늘 취소 카톡을 받고, 갑자기 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기름값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고, 수출입 하시는 분들도, 환율도, 주가도 널뛰고. 다시 생각해도, 한 사람의 결단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할 줄이야.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코로나 때도 그랬다. 그때 여행을 못 왔던 분들이 나중에 "보복 여행"이라며 엄청나게 오셨다. 하반기에 여행이 줄어들더라도, 상황이 나아지면 내년 상반기에 더 많이 오시지 않을까. 당분간은 소비를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사려고 했던 것들은 보류해야 될 것 같다.
국제정세도 불안하고, 다들 힘드시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모두 다 화이팅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