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여행에세이 - 아킬 아일랜드 1
나는 왜 이 섬에 이제야 왔을까?
섬나라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또 다른 섬, 더 작은 섬, 훨신 깊은 섬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을런지 모른다. 나의 여행 자세는 늘 동쪽을 향해 있었다. 여행을 일로 삼은 나는 동서남북 다 휘젓고 다녔지만, 나만의 휴식을 위한 도시들은 이 섬을 빠져나가 더 큰 섬으로 향했고, 더 큰 대륙의 문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런던에서, 파리에서 시골 촌띠기 티를 안내려고 더 진한 썬글라스로 두리번 거리는 눈을 가렸고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으며 느긋한척하고 다녔다. 그곳엔 세련됨이 있었다. 보지 못했던 색상의 옷을 화려한 리본으로 감싼 상자가 가득 쌓여 있는 부띠크 백화점의 윈도우를 보는 것 처럼 도시는 값비싸 보였다. 그 도시를 걷는 사람들도 외국인 같았다.
나에게 외국인은, 서울 광화문 어느 거리에서 처음 본 피부 하얀 사람이다. 머리는 약간 곱슬한 브론드를 하고 키가 커서 내가 고개를 젖히고 봐야 할 만큼 높은곳에 머리가 달린 사람이다. 길다란 다리가 중국집 요리할 때 쓰는 긴 젓가락을 반으로 뚝 접어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채, 그러나 너무나 잘 반듯하게 접어지는 모양을 한 사람이다. 아빠의 넙적하고 구김많은 신발과 달리 코가 반듯하게 앞으로 쭉 나온 샤이니한 구두를 신은 인간이다. 흰 피부와 대비를 이루는 작고 얇은 선홍색의 입술에서는 말랑말랑한 젤리향기가 날것 같은 단어들이 쉼표 없이 굴러나오는 사람. 그런 외국인들로 가득한 조각같은 도시에서 나의 미개함을 벗고 싶었는지 모른다.
일년이면 육개월을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을 사랑하는 나는 휴식 시간이 되면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떠나 누군가의 낯선 이가 되길 반복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일랜드에 안가본 곳 없이 다 가보셨겠네요?"하며 떠돌이 같은 생활을 부러워하며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 "아뇨, 많이 다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국의 골목을 다 다녀본 건 아니니까요, 아직도 가 보지 못한 곳들이 많아요!"하고 겸손한척 답한다. 하지만 사실 '네, 맞아요! 더이상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시나 마을은 없어요. 어딜가도 이제 상상을 벗어나지 않는것이 식상해요.'하고 답하였다. 그것이 진심이었을거다. 하지만 전세계를 뒤엎은 전염병은 나로하여금 반드시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한다고, 그래야 나의 평범한 일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남편의 휴가를 맞아 우리가 선탠한 것은 캠핑이었다. 같은 도시,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캠핑이라면 잠자리 분위기가 확 바뀌니 좀 새로울 것 같았다. 몇 해전 남편과 아일랜드 남쪽 어느 해변에서 파도가 코 앞까지 와 닿는 곳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한 적이있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온 신선한 쇠고기 등심을 굽기 위해 후라이팬과 가위, 집게까지 샀다. 캠핑을 하더라도 음식은 다 사먹기로 했었는데 그 근처 어느 식당도 자연을 문앞까지 끌어당긴 곳은 없었다. 그날의 조촐하고 후줄해 보이는 우리의 바베큐는 그렇게 세상 자연을 다 담아 최고의 맛을 냈고 늘 한결같은, 지루하기도 한 남편을 잠시 근사한 남자로 빛나게 했다.
휴가는 일주일이었지만 나는 이틀만 캠핑을 하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무리 새롭고 특별한 것도 불편함을 동반한다면 이틀정도로 충분했다.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이쁜 드라이브코스로 꼽히는 딩글반도를 선택했다. 스무번도 넘게 간 곳이었다. 그러나 나의 미션은 새로운 것 찾고 경험하기였으니 좀 비장했다. 여행가이드로서 여행의 설레임을 자주 경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그리고 어쩌면 전염병이 이런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구나 싶을만큼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은 가보지 않은 곳을 더 가 보자고 제안했다. 며칠 전 뉴스에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리쉬들이 너무 많이 휴가를 와서 몸살을 하고 있다는 아킬아일랜드가 떠 올랐다. 이미 피크시즌은 좀 지난 후라서 한적할테니 그럼 한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섬을 향했다. 그렇게 별 기대도 설렘도 없이 아킬섬으로, 여행의 방향은 서쪽을 향했다.
섬은 폭 좁은 다리(Michael Davitt)가 연결되어 있었다. 섬 입구는 초라했다. 삼류호텔즘으로 보이는 건물은 문을 닫았고 호텔 1층에 자리한 펍의 창문도 닫혀 있었다. 슈퍼벨류 미니슈퍼마켓 앞에는 2미터씩 떨어져 줄 선 사람들은 아무 맛도 않나는 맹물같은 눈빛으로 간식을 사러 온 우리를 쳐다 보았다. '이 시국에 해외여행을 온 사람들이라니, 더구나 아시안이구만!'하는 표정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더블린 거주민 증표가 되어줄 차 번호판을 뜯어 목에 걸고 다니고 싶었다. '나도 자네들처럼 여기 사람이라고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염병의 발원지가 우리의 이웃 나라라는 인식은 나의 국적도 정체성도 모두 그들에게 설득력을 잃어 버렸다. 단 하나, 좁은 상점에 들어선 사람들이 다 들리도록 말을 하는 방법이 있다. 마침 핫푸드 파는 코너에서 내가 좋아하는 하쉬브라운과 남편의 기호식품 소시지 롤을 따듯하게 구워 팔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시간을 훌쩍 넘었지만 아직 아이리쉬 브랙퍼스트 아이템이 남아 있었던거다. 나는 블랙푸딩은 더 남은 게 없는지, 소시지 롤에 들어가는 소시지는 여기 로컬에서 생산된걸로 구운건지 쓸데없는 질문을 하였다.
난 언제나 장구치고 북치고, 검사도 하고 변호사도 하고, 손님도 하고 주인도하며 나의 인생을 그렇게 1인 2역으로 살아온 사람. 이정도 오해즘은 얼마든지 풀어줄 수 있지요!! 하며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섬 사람들은 나의 슬라이고 액센트와 더블린액센트가 어설프게 섞인 영어 발음을 듣고 아마도 '휴~'하면서 최소한 우리가 중국에서 온 사람은 아니구나 안도하였을테지. 이방인이라서 더 좋았던 나의 이민생활에 로컬인척 티를 내며 살아야 할 날이 올 줄이야.
아일랜드 여행에세이 - 아킬 아일랜드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