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품은 아킬 Achill Island

아일랜드 여행에세이 - 아킬 아일랜드 2편

by 써니


1박2일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자전거로 돌아도 하루면 다 볼 수 있는 섬이고,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면 반나절로 충분했다. 우리는 여유있는 시간을 아껴쓰고 싶었다. 한꺼번에 다 보지 않고 반나절에 한 곳씩, 프랑스 고급식당에서 코스요리를 먹는 것 처럼 천천히 아킬섬을 음미하고 싶었다. 우리가 잠을 자기 위해 자리 잡은 곳은 킬해변. 발음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Kill 아니고 Keel이다! 경치가 죽여주는 명당자리를 캠핑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검색도 않하고, 성의없이 예약한 곳 치고는 행운이었다. 잔디밭과 모래사장 그리고 잔잔한 파도가 수평을 이루며 펼쳐진 땅위로 자동차와 사람, 양과 갈매기가 나란히 섞여 누구하나 내땅이라고 고집하지 않고 뒹구는 곳이었다. 마침 태양은 서쪽을 향하고 있으니 어디가 가장 노을보기 좋은 곳일지 관리사무소 아저씨에게 물었다. 1년중 8개월을 이곳에서 일한다는 그는 난생처음 사람을 만난 것 처럼 반가워하며 간단한 내용을 길고 길게 설명을 늘어놨다. 그의 변화없는 일상에 노랑색 방울새가 찾아 든 것 처럼 느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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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국인이라서 이런 친절을 받는거죠? 역시 여행할땐 외국인이라는 장점이 있어요! 당신의 친절을 아킬과 함께 기억할게요!" 나는 종달새처럼 발랄하게 말했다. 그는 내가 혹시라도 외국인으로서 이질감을 느꼇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지, 자신이 캐나다에서 이민온 사람이라고 구지 설명을 붙이면서 자신의 8년 이민사를 장황하게 펼칠 기세였다. 이러다가 해 지겠다고 시간을 가르키며 재촉하는 눈치없는 남편이 이 아저씨는 얼마나 야속했을까. 킬해변 왼쪽으로 봉그랗게 솟은 두가언덕(Dooega)으로 올라가자. 오늘 투어는 석양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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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처음 왔을때 가장 놀란것은 뭐든 겉보기와 속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시내 상점들은 좁고 소박한 현관문과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꽤 크고 시원스럽게 잘 갖춰져 있었다. 친구들과 선물을 교환할때도 허술한 선물상자안에서 나오는 내용물은 깊은 의미와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고, 아일랜드 이 땅은 온통 척박하고 볼품없는 자연속에 엄청난 이야기를 끌어앉고 따듯함을 품어내는 곳이었다. 그런 속다르고 겉다름으로 감동을 주는 아일랜드는 아킬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별로 높지도 않은 언덕길은 때늦은 히쓰로 덮여 있었고 언덕을 중심으로 360도 펼쳐지는 아틀란틱 파노라마는 어떤 3D영상도 담아낼 수 없는 장엄함과 아기자기한 풍경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한시도 멈추지 않는 구름의 움직임 사이로 태양은 숨바꼭질을 거듭하고 빛을 쫒는 JD 의 렌즈는 마치 씨실과 날실 사이로 날아다니는 플라잉셔틀(Flying Shuttle)처럼 빛과 함께 춤을 추는 듯했다.


섬은 온통 대서양으로 둘러 싸여 있었지만, 대서양이 말하고 싶은 다양한 언어를 섬을 통해 하고 있는건 아닐까? 때로는 잔잔한 포말로, 거칠고 높은 파도로, 절벽을 때리는 강한 힘으로, 바람에 의지해 떠 오르는 윈드서퍼의 친구로, 그리고 캠핑장을 매우고 바베큐를 하는 사람들에게 철석이는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섬이 아니었더라면, 대서양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소리로, 글로, 노래로 또는 그림과 사진으로 표현되어 세상에 보여지듯이 대서양은 고작 2천5백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돌섬에 의지하여 마음껏 자신을 말하고 있음이다. 섬을 이루는 네개의 구역은 마치 네개의 나라처럼 각기 다른 풍경을 하며 대서양을 품고 있었고, 우리는 1박2일이 너무 모자라 그곳에서 3박4일을 머물렀다. 그럼에도 차로 갈 수 없는 작은 골목을 자전거로, 발로 직접 디디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한참을 걷고, 바위에 앉아 있고, 지나가는 장례차를 보며 잠시 울먹이고, 소떼를 몰고가는 젊은 농부와 농담을 나누며 아쉬워 했다. 같은 펍을 여섯번이나 가서 마치 이 섬으로 이사온 사람처럼 종업원과 친해지고 단조로운 메뉴중 반이상을 먹어보기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많은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작지만 무언가 큰 것을 품고 있는 것 같은 아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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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느 날 갑자기 집을 훌쩍 떠나 어디론가 가고싶으면, 고함을 치며 속을 풀어내고 싶으면 이곳에 올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아일랜드 지도에 버젓이 존재해 왔던 곳임에도 마치 아무도 모르는 곳을 발견한 것 처럼 나만의 보석이 하나 생긴 것 같은 반가움, 비밀 아지트가 생긴 것 같은 은밀함, 어떤감정을 가지고 오든 그에 맞는 맞춤 자연으로 위로를 건네고 같이 기뻐하거나 울어주며 호흡해 줄 것같은 친구가 하나 생겼다. 아일랜드에는 더이상 써프라이즈가 없을것 같다는 나의 오만함도 어느새 모래사이로 스며드는 비처럼 사라지고 돌아오는 내내 들떠서 다시 올거라 약속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