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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16. 2021

가이드의 조건 3편 - 언어

여행가이드, 가이드하는 가이드

가이드의 언어는 어떤것인가?


해외여행을 갈때 언어가 여행의 제약이 되는가? 

내가 살고 있는 영국과 아일랜드는 영어를 쓰기 때문에 여행을 위해서 가이드로서, 오퍼레이터로서 당연히 영어를 잘 해야 한다. 현지 언어를 알고 모름의 차이는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그건 삶의 질도 결정한다. 하지만 언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로컬 문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는 언어를 통해 가장 많이 표현되는데 그것을 무시하거나 잘 모르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어찌보면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 보다도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며 소통하느냐 하는 능력이 가이드에게는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언어를 100%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그 나라에서 유년,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가능하겠지만 본인처럼 성인이 되서 이민온 사람이라면 한계가 있다. 


몇 해전, 한국에서 팀을 이끌고 온 인솔자는 유럽 일주팀을 자주하는데 프랑스나 스위스, 독일, 이테리같은 비 영어권 나라보다는 영국처럼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인솔자 역할을 하는게 훨씬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영국, 아일랜드에서는 로컬 가이드를 배정받고 다른 나라의 경우 본인이 인솔겸 가이드를 한다는 것이다. 비용을 절약해야하는 단체 팩키지 팀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언어때문이라고 했다. 


불어나 독어, 스파니쉬, 이탈리안 같은 언어를 잘 하는 여행객은 드물기 때문에 인솔자를 좀더 신뢰하고 의지한다. 인솔자 입장에서도 손님들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권 나라보다는 현지인과의 소통이 불편한 곳에서 돌발상황이나 이탈 또는 불평이 훨씬 적기때문에 정신적으로 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유럽일주를 하는동안 모든 나라의 언어를 인솔자가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인솔자는 여러차례 다녀본 길이기때문에 여행객보다는 자신감 있게 길을 안내하고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다. 더구나 인솔자조차도 비영어권에서 영어로 현지 관련자들과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일이 생기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능력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단순한 메세지 전달의 기능인 것이다. 비영어권이 편하다는 말은, 사실 어느정도의 오류가 있어도 확인가능성이 적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어찌보면 참 슬픈일이다. 서로의 약점을 장사에 이용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하고. 


그런데 다양한 컬러의 팀과 여행을 하다보면 위의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오해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끼리 더 빈번하게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정서상 직설적인 표현 보다는 숨은 뜻 찾기 해보라는 식의 은유, 비유, 과장, 인용등을 많이 하기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 단어 자체보다는 그 내면에 있는 의도, 표정, 자세 그리고 전후 사정까지 고려해서 소통을 해야한다. 


우리 말에 '말귀를 못알아 듣는다'는 말이 있다. 가이드가 아무리 로컬 언어를 잘 구사하고 한국말을 잘해도 말귀를 못알아 듣는 사람이면 가이드로서는 빵점이다. 현지인 또는 한국인의 말, 그들의 의사표현을 잘 알아 들을 수 있어야 여행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다. 


여행 3일차에 어느 중년의 여행자가 도저히 식사가 맛이 없어서 먹을 수 없다고 불평을 했다. 

"우리가 여기 내고 온 돈이 얼만데 밥을 이런식으로 줍니까? 먹을 수 있을정도는 해 줘야지, 이거 메뉴판 가져와 보세요. 도대체 얼마짜리인지 좀 봅시다!"

그는 격앙되어 있었다. 그는 첫날부터 식사를 잘 하지 못햇다. 조식을 먹을 때도 스크럼블 애그와 요거트정도만 먹고 점심식사, 저녁식사는 거의 남겼으니 3일차즘 되어서 신경이 예민해 졌을것이다. 나는 그것이 식사 자체의 문제가 이님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방에 부탁하여 밥과 간장을 조금 얻어다 주니 못이긴척 하며 식사를 마쳤다. 그는 당뇨를 앓는 환자였다. 그리고 여행일정에 한식이 거의 없는 팩키지를 처음하는 것이라 본인이 그렇게 서양식을 잘 못 먹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다른 손님들은 '맛있기만 하구만, 한국에서 먹으려면 이런 메뉴가 대체 얼마인데....'하면서 수근대기도 했다. 이런일이 있을때 손님의 말대로 메뉴판을 갖다주면서 당신이 낸 돈만큼 다 주는 것이니 한번 보시라고 했다가는 여행을 망쳤을 것이다. 


때때로 가이드의 언어는 말하기, 듣기 능력보다 이해력을 더 요구한다. 그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 마음을 이해하는 것, 한국과 많이 다른 현지의 상황이나 문화를 잘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 이것은 인내력과는 좀 다른 부분이다. 혹자는 그런 진상손님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비굴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비굴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가 사람을 그렇게 표현하도록 만든 부분도 있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그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날 슈퍼마켓에 가서 현지식 햇반을 몇개 사서 아침마다 햇반을 렌즈에 데워 그 중년에게 선물했다. 어떤 아침에는 오이피클을 같이 주고, 어떤 아침에는 할라페뇨를, 타바스코 소스를 주었다. 여행내내 그는 점심, 저녁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아침식사를 든든히 했으니 밝은 표정이었다. 가이드의 언어는 '말귀를 알아 듣는 언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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