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30
현대적인 좌파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철학은 “약자에 대한 보호”일 것이다. 물론 좌파의 출발은 프랑스혁명 당시의 급진파로 그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는 것이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거대한 사회실험이 실패로 끝난 지금에 있어서 좌파들이 추구하는 가장 강력한 목표는 “약자에 대한 보호”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때 좌파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도덕주의가 아닌, “역사발전의 과학적 원리”에 의거하여 노동자들의 이상사회 건설을 목표로 경제적 생산수단의 국가 집중화를 도모하였으나, 이러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현대의 좌파세력은 민주사회주의적 리버럴리즘과 정체성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이른바 “리버럴”이 주류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소위 ‘리버럴’이라 불리는 현대적 좌파들의 이 숭고한 목적의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가 모두가 다같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약자에 대한 보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심지어 동물이라 할지라도 같은 무리의 약한 개체를 보호하고자 하는데 사람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좌파의 주의주장이 순기능만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현재의 상황만을 두고 볼 때에는 그들의 그런 순진한 주의주장이 순기능을 압도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도대체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에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개별 인간에 대한 보호가 아닌 지극히 편의주의적으로 설정된 “약자 집단”에 대한 보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좌파들이 말하는 “약자”란 대개 어떤 특정한 사회적 그룹을 가리킨다.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 장애인 등등. 좌파들은 대단히 자의적으로 사회의 여러 집단에 “약자”와 “강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약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진영의 지원사격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에게 자기가 속한 집단이 “약자”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좌파들이 전혀 근거없는 자의적인 기준으로 “약자”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와 같은 집단은 사회의 마이너리티로서 여러 차별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사회를 개혁”한다는 거창한 운동을 하는 좌파세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곤란을 겪는 개인 1명 1명의 사정을 살뜰하게 살펴서 케어를 해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결국에는 범주화된 집단으로 사회적 약자를 식별하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로는 일상생활에서 차별과 곤란을 겪는 사회적 약자들이 좌파들이 인증(?)하는 사회적 “약자”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받고 소외된다는 점이다.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꼭 반드시 여성이거나 성소수자라야 삶이 고단한 것은 아니다.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겉보기로는 “강자 그룹”에 속한 사람들도 나름대로 삶의 고단함과 억울함을 안고 살아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이거나, 이성애자이거나, 현지인이라고 해도 유복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여성이나 성소수자, 혹은 이민자에 비해 더 큰 고통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더 큰 문제는 좌파의 목소리가 “리버럴”의 이름으로 점차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좌파들이 인정하는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한 보호만이 공식적으로 강조되고, 그러한 집단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 연대와 지원의 범주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로 이어지는가?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들의 고통이 좌파세력에 의해 무시당하고 주변화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내 삶은 이렇게 힘든데, 사회 주류 스피커들은 허구헌날 여성이니 성소수자니 나와는 무관한 집단만이 피해자이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부르짖는다면 화가 나지 않겠는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데마고그(선동가)들이 이러한 사회적 약자 집단으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해 소외된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이런 데마고그들은 무시당하고 잊혀진 사람들에게 좌파의 위선에 대해 설파하고, 자기에게 힘을 모아주면 좌파들을 뿌리뽑고 그들의 불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러한 구조가 지금 주요 선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극우 정치세력의 부상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극우세력은 좌파들이 사회적 약자로 인정하지 않고 무심결에서 무시하고 넘어가는 사람들 중 불만에 가득찬 집단을 규합하여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이 아닌 남성, 성소수자가 아닌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이성애자, 이민자가 아닌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살았던 선주민들을 모아 좌파들의 위선을 규탄하고 잊혀진 목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급격한 정치적 역학구조의 변화에 리버럴 주류로서 안락함을 누리는 좌파들은 능동적으로 대처하는데 실패하고 무기력하게 극우세력의 성장을 지켜보고만 있다. 극우세력들은 그동안 무시당했던 자들의 분노를 규합하여 기존의 사회적인 룰을 때려부수는 과격하고 위험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결국 이념적인, 혹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특정 집단만을 사회적 약자로 선별하고 그들에 대한 보호만을 부르짖는 좌파들의 행동양식이 극우세력의 성장과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 곤란을 겪는 모든 개인의 상황을 일일이 식별하여 도와줄 수는 없다. 하지만 특정 집단만을 “약자”로서 보호하고 나머지 집단들은 방치하는 식의 게으른 관점은 좌파들의 결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