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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요한 Jan 27. 2022

젊음과 늙음 그리고 기억과 망각

젊음과 늙음 그리고 기억과 망각  

        

 대학교 수업이 끝나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었을 때다. 다른 학교도 많이 타는 버스라 사람이 많은  보통이다. 그날은 운이 좋아 남는 자리가 많아 앉아   있었다. 날도 좋고, 앉아서 집에   있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원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노래를 들으며 다니는 편이다. 사람들의 잡담, 노랫소리, 전도활동 등의 소리는 소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이용해야 하는 대중교통에서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의 소음일 경우에 말이다. 여하튼 노래를 듣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보통은 내 통제 하에 놓이지 않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버스가 큰 사거리를 지날 때쯤, 누군가가 하차벨을 눌렀다. 버스가 정차하기 위해 섰다. 버스 안에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한 어르신께서 지팡이를 짚으며 마음은 급한데, 몸은 따르지 않아 처절하게 뛰는 모습이 보였다. 실제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1cm였지만 말이다. 사람들 때문에 버스 기사는 보지 못했는지 문을 닫았다. 그러자 어르신께서 비명에 가까운 말을 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문을 닫지 말라는 말은 확실했다.


 이날 나는 인간의 노화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명에서 죽음까지, 젊음에서 늙음까지를 인생의 흐름이라 생각한다. 근데 나누는 기준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을 읽거나, 강연을 보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늦었다, 늙었다고 생각하는 건 남들의 시선일 뿐이다.’ 이 같은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기대수명을 후하게 계산해 백 살이라면, 육십 살, 칠십 살이 아닌 이상 그렇게 늦은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신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함에 있다. 그래서 나는 오십 살 정도가 그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어느 정도 평가할 수 있는 나이 때라 생각한다. 20~30대 때부터 일 했다면, 살아온 나이의 반 정도 일 했으니 성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는 20대를 보며 내가 저 나이 때였으면 엄청난 도전의식을 갖고 변화와 혁명을 일으켰을 것이라 말한다. 40대는 30대를 보며 그렇게 생각한다. 50대도, 60대도, 70대도 그렇다. 요즈음 경로당에 가면 60대, 70대 어르신은 막내 생활을 한다고 한다. 우리 눈에는 다 늙음으로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60대, 70대는 젊음으로 보인다.


 사실 요람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을 향해 늙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체 성장이 멈추고 노화하기 시작하는 20대 중·후반을 신체적으로 젊음이 끝나며 노화된다고 본다.


 외형적인 신체의 성장을 기준으로 젊음과 늙음을 나누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어릴 때 말을 인출하는 게 힘들고, 나이가 들어서도 말을 인출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비명, 괴성과 같은 원색적이고 원초적인 소리를 주로 내신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려지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배움과 학습의 자세가 젊음과 늙음, 생명과 죽음을 나누는 기준이라 생각한다.


 우리 과에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고민 상담과 조언을 받는 후배가 있다. 나와 한 살 차이인데, 내 휴학 기간이 길었던지라 나보다 일 년 먼저 졸업을 했다.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형, 저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 그만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당 당직자의 생활은 보통의 회사생활은 아니어서 보통의 공감대와 경험을 말하기에는 뭔가 마음에 걸렸다. 인턴 생활과 아르바이트의 경험을 말하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안 그만두면 되는 거다. 왜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알고 싶어.”     

 우리의 대화는 맥줏집에서 이루어졌는데, 후배는 취기를 통해서라도 말하고 싶었나보다. 큰 맥주잔을 벌컥벌컥 몇 모금 만에 다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제가 늦었다고 생각해요. 형이 알고 있듯이 공기업에 들어가고 싶은데, 치열한 경쟁을 이길 자신이 없어요. 합격과 안정이 보장된 삶을 살고 싶어요. 근데 공기업 시험에 떨어져서 아무 곳도 갈 수 없게 되면, 어떻게 살아요.”   

  

 말을 듣고는 이 친구는 위로보다는 ‘본인의 의지실현과 결정을 하는데 다른 관점이 필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시험을 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 있어. 매몰 비용이야. 공무원 시험은 고시와 달리 불합격을 하게 되면 남는 게 없어. 고시는 1차 합격을 하면 자소서에라도 쓰지만 공무원 시험은 그러지 못해. 공무원 시험은 전문성도 없다고 보는 거지. 나도 18개월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2년 차 시험은 접수하지도 않고 그만뒀어. 어머니는 그만두더라도 아까우니까 시험이라도 봤으면 하셨지. 근데 난 그러지 않았어. 한 번 더 보면 괜한 아쉬움과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질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어. 그렇게 공시 낭인이 되는 걸 알았거든.


 나도 안정된 삶을 꿈꿨고, 하루아침에 천재적인 머리를 갖게 되어 합격을 보장받고 싶었어. 나는 내 이름과 달리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 근데 수험생 생활을 할 때는 잠자기 전에, 아침에 독서실에 가기 전에 30분씩 매일 기도 했어. 모든 신에게 심지어 조상에게도 했어. 제발 합격시켜달라고. 제발 합격시켜준다면 나의 삶은 내 주위 사람들부터 모르는 사람들까지 도움을 주며 살겠다고 말이야. 이기적인 기도였지.


 여하튼 매몰 비용을 감수하고 나는 손을 털고 복학을 해 졸업을 앞두고 있잖아. 돌이켜보니까 수험생 생활을 때에는 시험의 결과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인 것 같고, 안 되면 자살을 해야 하나 싶고, 어머니와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죄송하고 부끄러웠어. 내 인생의 전부였던 거지. 실은 아닌데 말이야. 시간이 지나 떨어지다 못 해, 저 심연 밑바닥에 있는 자존감을 올리며 드는 생각은 정말 살 길은 많다는 거였어. 다만 내가 다른 길들을 몰랐던 것뿐이지. 좁은 식견으로 남들 가는 길 불안에 떨며 좇아다녔던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패배자가 하는 말 들어서 뭐해.’ ‘자위나 하고 있네.’라 누군가는 말할 수 있지만, 1년 뒤 손요한은 누구도 몰라. 심지어 나도 몰라. 네가 늦었다, 늙었다 하는 그런 말들의 기준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치열하게 살자”     


 후배는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며, 연거푸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우리는 지나치게 사회의 시선에 예민하게 구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쟤는 쟤고, 나는 나다.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닌데 그리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할까. 다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이들의 말은 들어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도 그들에게는 모든 걸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 도전하고 싶다는 당신의 얘기를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해.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고”          


 젊음과 늙음에 관해 얘기가 나온 김에,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자신이 부끄럽거나, 괴로운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때로는 그런 기억 때문에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빨개져 몸 둘 바를 모른다.


 나에게는 연애가 그렇다. 나는 정말로 연애를 못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왜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문제를 모르는데 어찌 해결 하랴. 수많은 여성에게 데이트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거절당한 기억을 떠올리면 정말로 표현 그대로 침대 이불 속에 숨고 싶다. 그러면서 아직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을 뿐이라며 위안으로 삼는다.


 기억을 지운다는 게 좋기만 할까? 문뜩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은 하기도 싫기 때문에 그러고 싶다. 사회에서도 잊혀질 권리를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수많은 고통과 부끄러움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기억을 지우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기억을 극복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기억은 우리를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즉 더 나은 자신, 더 나은 사회로 우리를 이끌고 변화시켜주는 원동력이 된다.


 극복하는 방법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기억을 마주하는 거다. 마주하여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피해자로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거다.


 물론 정말 어렵고 고통스러움을 나 자신도 안다. 나에게는 문소리 트라우마가 있다.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하며 사셨다. 다른 날과 같이 그 날도 밤늦게 취한 상태로 와서, 집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며 욕설과 살해 협박을 했다. 집에 들어오면 어찌 될지 알기에 문을 열어주기 싫어 문을 잠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의 집이기도 한데 어쩌겠나. 경찰에 신고해도 이와 같은 논리로 그냥 돌아가기만 했다. 심지어 방금 폭행당한 상처를 보여줘도, 파출소에 데리고 갔다가, 아침에 귀가 시켜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무섭다. 심장이 떨리고 초조해진다. 배달 음식을 시켜서, 누군가가 그럴 것을 알아도 똑같다

.

 그래도 과거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받아들이고 나는 살아간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조금은 무뎌지고 있다. 언제 극복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굳이 논문을 인용하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우리는 기억이 수정, 왜곡됨을 알고 있다. 기억을 미래에 대한 생각처럼 인정해주는 건 어떨까. 쉽지 않지만 그만큼 값어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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