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터 콜 사울, 의도된 촌스러움

컬러, 미장센, 그리고 퍼스널 브랜딩으로 읽는 한 남자의 비극적 타락사

by Gil


<브레이킹 배드>의 스핀오프로 출발한 BETTER CALL SAUL은 전작의 부록에 머무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세상의 인정을 갈구하던 삼류 변호사 '지미 맥길'이 어떻게 도덕성을 잃어가고, 우리가 익히 아는 탐욕스러운 기회주의자 '사울 굿맨'으로 변모하는지. 브레이킹 배드와 독립적이면서도 또 다른 완벽한 미학으로 그려낸 치밀한 심리극이다.



로고

<베터 콜 사울>의 로고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계산된 역설적 브랜딩이다.

폰트의 충돌

투박한 세리프 체의 'Better Call'과 필기체로 쓰인 'SAUL'이 대비된다. 이는 정통 법조계에 입성하고 싶은 갈망과 결국 싸구려 마케팅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이중성’을 표현한다.




포스터 시리즈

세상에 인정받고 싶었던 남자가 어떻게 스스로 족쇄를 차고, 결국 화려하지만 텅 빈 껍데기로 변해버렸는가의 요약본 같다.

시즌 1: 광활한 사막에 덩그러니 놓인 공중전화에 기대어 있는 지미.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 3류 국선 변호사의 철저한 고립감과 처절한 시작을 보여준다.

시즌 2: 서류 가방을 들고 비정상적으로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세상의 룰(형 척의 인정, 주류 법조계)에 맞춰 성공하려는 그의 여정이 고난의 길임을 뼈저리게 시각화했다.

시즌 3: 벽에 페인트롤러로 흑백 줄무늬를 칠하고 있는데, 이 줄무늬는 '죄수복'을 연상시킨다. 꼼수를 쓰던 그가 스스로를 범죄의 세계로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 몰아넣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즌 4: 침울한 진짜 지미의 얼굴 위, 우스꽝스럽게 웃고 있는 '사울 굿맨'의 종이 가면을 들고 있다. 형의 죽음 이후 내면의 슬픔과 죄책감을 마주하지 않고, 사울이라는 유쾌한 페르소나 뒤로 숨어버리는 방어기제를 표현했다고 한다.

시즌 5: 화려한 사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갈기갈기 찢겼다가 이어 붙여져 있다. 주목할 점은 가슴쪽 조각이 떨어져 나가 있다는건데,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그의 영혼과 도덕성은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시즌 6: 도망자 신분인 흑백의 진이 사울 굿맨의 시그니처인 강렬한 붉은색 재킷을 입고 있다. 과거(사울)와 현재(진), 흑백과 컬러가 교차하며, 결국 그가 자신의 본성인 사울 굿맨의 굴레를 영원히 벗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결말을 예고한다.




VHS 질감

오프닝 타이틀은 의도적으로 화질이 낮고 색이 바랜 80년대 로컬 TV 광고 느낌을 준다. 이는 사울 굿맨이 지향하는 '저렴하고 접근성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시각화한 것.참고 링크: https://youtu.be/RCnNmOZNgtI?si=b-K59Wa3noZhdtaM




컬러 팔레트

노란색(범죄) vs 파란색(질서)

이 드라마의 미장센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 중 하나는 컬러 이론이다. 제작진은 색상을 통해 캐릭터의 심리적 위치를 규정했다.



노란색/빨간색 (Warm)

범죄, 위험, 비도덕적 선택. 살라만카 카르텔, 지미의 화려한 정장, 볼리비안 택시



파란색 (Cool)

법, 질서, 도덕적 엄격함, 하워드 햄린(HHM), 킴 벡슬러의 사무실 의상



무채색 (B&W)

상실, 후회, 정체성의 소멸미래 시점의 '진 타카빅' 시퀀스


지미가 파란색 셔츠를 입다가 점점 원색의 화려한 정장으로 갈아입는 과정은, 그가 '질서'의 세계에서 '혼돈'의 세계로 완전히 이주했음을 나타내는 시각적 브랜딩의 변화이다.



미장센: 고립을 표현하는 '네거티브 스페이스'

<베터 콜 사울>은 광활한 앨버커키의 풍경을 활용해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한다.


익스트림 와이드 샷

인물을 화면 구석에 아주 작게 배치하고 거대한 사막이나 건축물을 배경으로 채운다. 이는 거대한 운명 앞에 선 개인의 무력함과 고립감을 극대화한다.



프레임 안의 프레임

문틀, 창문, 기둥 등을 활용해 인물을 가두는 구도를 자주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퇴로가 없는 감옥에 갇히고 있음을 암시한다.



대칭과 불균형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HHM 사무실(질서)과 어지럽고 불균형한 지미의 네일살롱 뒷방(무질서)을 대비시켜 캐릭터의 사회적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미 맥길에서 사울 굿맨으로

브랜딩의 정수: 이 드라마는 사실상 퍼스널 브랜딩의 타락사이다.



네이밍 전략

"It’s all good, man!"에서 유래한 Saul Goodman이라는 이름은 유대인 변호사가 유능하다는 편견을 이용한 철저한 마케팅적 선택



시각적 상징물

'노란색 스즈키 에스티엠' 자동차에서 '캐딜락'으로의 교체, 저렴한 서류 가방에서 고급 가죽 가방으로의 변화 등 소품 하나하나가 브랜드를 구축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극 중 광고 기법

작중 지미가 직접 제작하는 촌스러운 TV 광고들은 '권위'를 버리고 '효용성'과 '자극'을 선택한 그의 비즈니스 모델을 명확히 보여준다.


<베터 콜 사울>의 비주얼 전략은 표면적인 아름다움이나 세련됨을 추구하지 않는다. 비주얼이 곧 서사라는 원칙 아래, 시청자들을 지미 맥길의 위태로운 내면과 피할 수 없는 비극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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