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미학을 재정의한 THE LAST OF US
10년 전, 게임 업계에 몸담게 되며 첫 월급으로 플레이스테이션 4를 샀다. 당시 함께 구매했던 몇 장의 타이틀 중에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섞여 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에 큰 흥미가 없던 터라, 플레이 순위는 자연스레 가장 뒤로 밀려났다.
구매한 타이틀을 모두 플레이하고, 마지못해 시작한 <라오어>의 첫 화면을 넘긴 순간. 내 얄팍한 선입견임을 깨달았다. 영화 같은 전개로, ‘조엘, 엘리’와 겪어낸 여정은 묵직한 여운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서사'라는 것이 게임에서 얼마나 압도적인 경험을 줄 수 있는지 각인시켜 준 작품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추천해 달라면, 주저 없이 이 타이틀을 가장 먼저 말하곤 한다.
로고 표면을 덮은 거친 질감과 미세한 포자의 얽힘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동충하초 포자가 문명을 잠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세계관을 미니멀하게 담아낸 결과물이다.
매체 및 화면 비율에 맞춰 가로/세로형으로 혼용된 형태. Press Gothic 폰트를 기반으로 자연이 인공물을 붕괴시키는 세계관의 무게감을 텍스트의 형태만으로 전달한다. 타이트하게 조여진 자간은 팽팽한 긴장감과 압박감이 느껴지게 한다.
부식 정도를 심화시킨 LEFT BEHIND는 스텐실 타입의 폰트로 군사 통제 구역 느낌이 난다.
오리지널 형태를 보존하면서 하단에 골드톤(앰버톤)으로 부제를 배치했다. 이 색상은 말라붙은 곰팡이나 오래된 유기물의 쇠퇴를 상징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생존 게임들이 채택하는 차가운 블루나 그레이 톤을 배제하고 브랜드 고유의 색깔을 확립한 지점이다.
1편의 특징이었던 유기적인 포자 증식이라는 디테일 표현은 줄어들고, 물리적 균열만 돋보이는 형태로 바뀌었다. 작중 ‘도덕적 붕괴’와 ‘자기 파괴적인 복수’라는 무거운 테마를 타이포그래피 구조에 담아냈다.
PART II 이후 정립된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을 적용했다. 부제의 하단 우측 정렬배치나 전체적인 비례감이 2편과 맞춘 걸로 보인다.
게임 타이틀에 비해 선명도가 높고 정돈된 구성이다. 방송 및 스트리밍 환경에서의 가독성을 확보하기 위함일까? 세밀한 포자 디테일 표현들을 덜어냈다. 그럼에도 원작의 스산하고 부식된 정체성은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채도 높은 오렌지/레드 계열의 부제를 결합한 구성이다. 폭력이라는 2편의 지배적 정서를 각인시키는 장치 같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의 Fireflies는 멸망한 세상에서 다시 문명을 일으키려는 저항군 집단을 상징하며, 그들의 슬로건처럼 어둠(좀비/타락한 사회)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왼쪽은게임, 오른쪽은 드라마 오프닝 시퀀스
두 이미지는 '동충하초 감염'이라는 동일 소재를 다루면서, 매체의 특성에 맞게 시각적 언어를 다르게 번역했다. 게임의 오프닝은 플레이어를 자비 없는 생존의 밑바닥으로 곧바로 던져 넣기 위해, 순수하고 추상적인 흑백의 공포를 택했다.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줌으로써 압박감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반면 드라마는 게임을 전혀 모르는 대중에게 이 작품의 정체성을 단 1분 만에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곰팡이라는 생물학적 질감을 재료로 삼아, 무너진 문명과 그 위를 걷는 두 인물의 여정을 시각적인 서사시로 재조립해 냈다.
2013 게임 오프닝: https://www.artofthetitle.com/title/the-last-of-us-2013/
2023 드라마 오프닝: https://www.artofthetitle.com/title/the-last-of-us-2023/
Diegetic UI란, 게임 속 캐릭터가 실제로 보고 느끼는 세계의 일부로 존재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의미한다. 단순히 화면 위에 덧씌워진 정보가 (체력 바, 미니맵, 인벤토리 등) 아니라, 게임 속 이야기(Diegesis)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요소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다이제틱 UI를 잘 섞어, 몰입감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왼쪽이 PART I, 오른쪽이 PART II의 화면으로, 개조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줘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PART I의 十자형 UI는 화면 중앙을 차지하며 플레이어의 시야를 일부 가리고, 이제 와서 보니 조금 투박해 보이기도 한다. PART II에서는 더 직관적으로 다듬고, 스트로크가 추가되어 정보가 좀 더 잘 보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버려진 종이, 구겨지고 찢어진 편지 등을 캐릭터가 직접 손에 쥐고 읽는 연출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환경 자체로 스토리텔링의 도구를 만든다.
1편의 사실적인 소품 디자인을 완벽하게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이 장면에서 나도 감정적으로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끊임없이 피해 다녀야 하는 위험 요소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아름다운 폐허'라는 이 프랜차이즈의 핵심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다.
1편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어둡고, 축축하다.
PART I 관련 시리즈들은 밝은 빛(골든아워)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유대감이나 희망을 암시하는 구도가 많다. 반면 PART II 관련 시리즈들은 어둡고, 피투성이에, 분노와 고립감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로고의 타이포그래피와 마찬가지로, 타이틀 디자인 역시 서사의 톤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게임을 넘어 대중 매체로 확장하면서, '인물'과 '균사체(포자)'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전면에 내세웠다. 게임 타이틀이 인물의 감정에 집중했다면, 드라마 포스터는 그들이 마주한 불가항력적인 세계의 질감을 강조해 (무너진 도시, 거대하게 자라난 곰팡이) 재난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색채를 완전히 배제하여 플레이어의 시선을 오직 인물들의 피로감과 서늘한 눈빛에 묶어둔다. 명암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두 인물이 짊어진 생존의 무게를 보여준다.
거친 붓터치 스타일로 등장인물들을 하나의 군상으로 묶어냈다. 인물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덩어리처럼 얽혀 있고, 배경에 희미하게 번진 파이어플라이 심볼은 이들의 엇갈린 운명이 결국 하나의 목적지로 도달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PART I의 컨셉아트. 오랜 시간 버려진 도심을 뒤덮은 무성한 식물들의 대비, 쾌청한 하늘과 맑은 광원으로 멸망한 세상임에도 역설적으로 희망을 부여하는 시리즈 고유의 톤앤매너
빛줄기가 마치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처럼 전투의 처절함을 비춘다. 불쾌하게 느껴져야 할 살육전마저 회화적으로 승화시킨 연출
그래픽 기술의 발전을 서사의 도구로 잘 활용하고 있다. 얼굴의 주근깨, 먼지, 입술의 주름, 낡은 면 티셔츠와 캔버스 가방의 마모된 질감 하나하나. 디테일로 가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PART II의 핵심 정서를 관통하는 클로즈업 샷. 피와 오물을 뒤덮은 엘리는 서늘한 배경에 통제력을 잃은 듯한 살의의 눈빛을 하고 있다. 2편에서는 맹목적인 복수와 자기 파괴라는 끝없는 수렁으로 플레이어를 끌고 갈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엘리와 애비(Abby)의 모습이 붉은 화염으로 오버랩되어 있다. 이중 노출을 연상시키는 이 구도는 두 인물의 핏빛 복수극이 얽혀 있음과 '증오의 순환'이라는 게임의 메시지를 단 한 장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횃불과 차갑고 서늘하게 느껴지는 숲 (어둠)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입장이 수시로 뒤바뀌는 게임플레이의 극단적인 긴장감을 시각화했다.
채도를 극단적으로 낮춰 화면을 무겁게 짓누르고 긴장감을 높이며 고립감이 느껴진다.
엘리의 불안, 분노, 살의를 사실적이고 다채롭게 보여주면서 기술적, 예술적 성취를 증명한다.
두 인물의 엇갈린 시선만으로도, 이 시리즈의 근간은 결국 '두 인물의 떼어낼 수 없는 유대와 비극'에 있음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실사화된 인물들, 무너져 내린 도시의 풍경을 정석적으로 배치했다. 게임의 아트워크들이 인물의 극단적인 감정이나 내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 포스터는 대중 매체의 문법에 맞춰 '포스트 아포칼립스 재난물'이라는 장르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두 인물의 등 뒤로 동충하초 균사체가 기괴하게 얽혀 거대한 '나방(Moth)'의 실루엣을 형상화했다.
화면 전체를 집어삼키듯 뻗어나가는 ‘가지’들은 감염체의 포자 덩굴이다. 동시에 인물들을 옭아매는 혈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캐릭터의 실루엣 내부에 그들을 상징하는 핵심 오브제와 부식되는 자연의 형상을 채워 넣었다. 폭력적인 외부 환경과 과거의 기억이 인물의 내면을 어떻게 잠식하고 있는지 여백과 먹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세련되게 보여준다.
여백을 극도로 살린 시리즈. 각 인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물(기타, 시계, 파이어플라이 펜던트)을 마치 그들이 걸어가야 할 거대한 지형처럼 과장시켜 묘사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프랜차이즈의 디자인은 단순한 그래픽 과시나 겉치레가 아니다. 이야기의 뼈대에 사실적인 질감을 입혀, 눈앞의 현실로 빚어낸 집요한 기록물을 보는 것 같다. 오리지널 로고를 덮었던 생물학적 부식은 파트 2에 이르러 폰트 자체의 파괴로 이어지며, 인물들의 도덕적/심리적 붕괴를 암시한다. 세계관에 완전히 녹아들어 화면을 가리지 않는 다이제틱 UI(Diegetic UI)와 손때 묻은 수집품들은 플레이어와 시스템 사이의 장벽을 완벽히 허물어주는 장치이다.
참고
https://www.playstation.com/ko-kr/the-last-of-us/
https://www.playstation.com/en-us/the-last-of-us/commu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