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대를 지우는 잔혹한 붓터치
2025년은 <클레어 옵스큐어: 익스페디션 33>의 해였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AAA급 블록버스터들이 즐비한 게임 시장에서 인디 스튜디오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선보인 이 작품은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 게임이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고 비평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혁신적인 '반응형 턴제' 전투 시스템 때문만은 아니다. 그 기저에는 19세기말 프랑스의 눈부신 '벨 에포크(Belle Époque)' 미학과, 붓을 들어 매년 사람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페인트리스(The Paintress)'라는 잔혹한 다크 판타지 설정이 완벽하게 맞물린 압도적인 시각적 스토리텔링이 자리하고 있다.
*벨 에포크 (Belle Époque)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 또는 '좋은 시대'를 뜻하며, 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 문화, 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던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획의 일부분이 미세하게 깨지거나 마모되어 있다. 이는 이들의 원정(Expedition)이 결코 순탄치 않으며, 희생과 파괴를 동반하는 험난한 여정임을 폰트의 형태만으로 암시하는 것 같다.
금색은 게임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의 우아함, 풍요로움 그리고 고도화된 문명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금빛은 매끄럽지 않고 거칠게 닳아 있다.
상단의 'CLAIR OBSCUR'는 우아하고 고전적인 세리프 폰트로 게임의 배경이 되는 '대체된 파리(Lumière)'의 세련된 문화를 상징한다. 가장 눈에 띄는 하단의 '33'은 거칠고 역동적인 붓터치로 디자인되었다. 이 붓터치는 게임의 핵심 빌런 '페인트리스(화가)'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다이어제틱 디자인 요소이다. 숫자를 그려 사람들을 지워버리는 파괴적 권능이 로고에 그대로 시각화되어, 클래식함과 혼돈이 공존하는 게임의 아이덴티티를 완벽히 요약했다.
원정대원들이 거대하고 초현실적인 기념비를 마주하고 있는 구도. 유화 같은 회화적 질감이 섞여 있다. 빛과 그림자를 뜻하는 게임명 'Clair Obscur'에 걸맞게 명암 대비가 극명하다. 이 이미지는 거대한 절망에 맞서는 원정이라는 스토리의 '다윗과 골리앗' 서사를 한 장으로 보여준다.
UI 자체에 세계관의 문화를 반영한 걸 볼 수 있다.
캐릭터 카드 테두리에 적용된 아르데코(Art Deco), 벨 에포크 시대의 우아한 기하학적 문양과 장식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전투 화면
전투 UI는 텍스트를 나열하는 전통적 JRPG 방식에서 벗어나, 3D 공간에 떠 있는 듯한 감각적인 액션 링(Action ring) 형태를 취한다. 우하단의 스킬/상태창도 화면을 가리지 않으면서 가독성이 높다.
메시지 화면
원정 실패(EXPEDITION FAILED) 화면은 마치 캔버스 위에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칠한 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인게임 메뉴, 로고에서 사용된 글꼴과 붓터치 그래픽을 웹사이트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거친 캔버스 질감을 살려 채널 간 브랜딩의 일관성을 극대화했다.
2025년 출시 후 발매 6개월 만에 전 세계 5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2025년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에서 '올해의 게임(GOTY)'을 비롯해 최다 부문을 휩쓸며, 독창적인 아트 디렉션과 '반응형 턴제' 시스템의 완벽한 조화를 증명했다.
33원정대의 브랜딩은 일관된 테마의 확장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The Paintress)라는 스토리텔링 요소가 단순히 대사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로고, 인게임 UI, 웹사이트까지 파고들어 하나의 정교한 예술 작품 같은 브랜드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