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를 보고 숙이는 일

by 고닉


어느 날, 김민정 북토크 초대 문자를 받았다.

북토크 예정일은 독서모임의 정기모임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때였다면 고사했겠지만, 그날은 유난히 갈등이 심했다. 어떠한 동시성 때문에.


그 무렵 나는 2월 내내 한 권의 책을 붙잡고 있었다. 소유정의 <세 개의 바늘>이 그것이다.


최근에 읽은 ‘여전히 나를 쓰게 하는 김민정의 이야기’를 오래 마음에 품다가 마악 보내주려던 때였기에, 밑줄 친 구절을 살펴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작가를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면 ‘읽기’를 계속하게끔 하는 이와 ‘쓰기’를 개진하도록 하는 이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중략) 후자의 경우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읽는 이로 하여금 문학 안에서 일렁이는 에너지를 발견하게 하는 것, 그 에너지는 단지 읽는 행위만으로는 온전히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쓰는 이의 자리로까지 가게 만드는 것, 당신의 이야기를 매개로 나의 것을 꺼내 보이게 하는 것. 이것이 후자의 영역이다. (p.130)”


결전의 날이 밝았고, 나는 전포 크레타로 향했다. 마치 그 구절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서.


시인이기 이전에 출판사 난다 대표로 내게 먼저 자리매김한 김민정은 어떤 사람인지 점점 궁금해져갔다. 내가 좋아하는 이의 좋아하는 이를 알게 된 기쁨이 고리를 이어갔고, 제삼자의 것을 꺼내 보이게 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도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파주에서 부산까지 오는 그의 마음이 정말 지극하게 느껴졌다. 나는 좋아하는 일에는 거리를 재고 따지는 타입이 아니라 부산에서 서울로 도서 관련 행사도 여러 번 다닌다. 그러면 주변 독자들과 작가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가 여기까지 와주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이 기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정말 지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니라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겠다.


북토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깊고 단순하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들으며 조금씩 그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져가는 감각이 좋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

11개월 동안 매일 ‘살아숨쉬는 글’을 쓰기 위해 신호등 앞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블랙베리 자판을 두드리며 매일 680자를 마감하는 일.


백지와 제목이 그에게는 오늘의 기쁨이자 내일의 희망이 되는 일.


누군가 오해하더라도 아낌없이 나의 마음을 베푸는 일.


내가 살아있는 오늘에 할 수 있는 표현을 하는 일들.


시를 쓸 때보다 편집할 때 더욱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동료 시인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늘 시를 공부하는 마음을 헤아려보는 순간들.


북토크를 끝나고 계속 잔향처럼 남는 그는 인정의 끈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참 귀하고 고맙다. 점점 표현에 인색하고 무뎌져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은 AI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다. 다그치지 않고, 풍경같은 기분 좋은 울림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유정은 김민정을 적확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렇게 그를 빌어 나를 쓰게 만들었으므로.


문학을 통해 일렁이는 바람따라 청아하게 울린 풍경의 소리가 고요해질 때까지 가만히 따라가보기로 한다.


앞으로 나는 내 마음 속 웅덩이에 물결이 일렁이는 걸 자주 마주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래를 보고 숙이는 일이 사랑이라 배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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