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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와 나

코딩 모르는데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AI와 나] 구글 Antigravity 쓰면서 느낀 점

by 이구아나

전날 4시간밖에 못 잤다. 새벽까지 개인 홈페이지를 만드느라 잘 시간을 놓쳐 버렸다. 늦게 잤으니 늦게 깰 법도 한데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얼른 홈페이지를 완성하고 싶은 들뜬 마음 때문이다. 중학교 때 게임 ‘바람의 나라’ 주술사 캐릭터를 레벨 99까지 키우려고 여름방학 한 달 간 3시간 자면서 컴퓨터 앞에 살았던 게 기억난다. 거의 그때 수준으로 꽂혀 있다.(지금은 그때보다 나이도 많은데...)


Google의 Gemini나 OpenAI의 ChatGPT 등 생성형 AI(인공지능)에게 구체적으로 지시만 내릴 줄 알면 다양한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는 소식을 최근 접했다. 진짜일까? AI 채팅창에 물어봤더니 신기하게도 간단한 페이지나 차트 같은 코드를 짜줬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이었다. 웹페이지는 메뉴가 있고, 그 메뉴를 누르면 다른 페이지로 이어지는 구조다. 디자인 요소도 추가해야 한다. 파편을 가지고 하나의 종합예술이나 다름없는 페이지를 완성할 수 없었다.


인간이 쓰는 언어 하나 겨우 구사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또다시 신기술이 출시됐다. Google의 ‘Antigravity’다. 우리말로 ‘역중력’이라는 이름을 가진 에이전틱 개발 플랫폼(Agentic Development Platform)으로, 쉽게 말하면 개발을 도와주는 AI 도구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몰라도 ‘어떤 사이트를 만들고 싶고 이렇게 구성해줘’라 AI에게 설명만 할 수 있으면 웹페이지부터 앱, 서비스 등을 만들어준다.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2024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내가 쓴 도구 중 가장 압도적이고 소름 돋는 능력자다. 나는 가끔 ‘역 선생님’이라 부르며 큰절을 올리고 싶어진다. 그 정도로 내 능력의 지평을 넓혀줬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을 하는데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줘’라고 매우 두루뭉술한 문장을 던져도, 역 선생님은 메뉴 구성부터 어울리는 디자인까지 뚝딱 그려낸다. 그걸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 진짜로 입을 못 다문다.


‘이메일 주소 옆에 ‘적절한’ 이모지를 하나 넣어줘’라고 지시한다면? 만약 상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한숨을 백 번을 쉬었을 테다. 이것만큼 어려운 지시가 어디 있는가. 대체 ‘적절한’이란 기준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역 선생님은 편지 아이콘을 추가하고 링크까지 알아서 걸어준다. 자기소개에 넣을 사진 하나를 툭 던져주면 깔끔하게 잘라서 어울리는 데 배치하며, 아이폰에서 볼 사람을 고려해 자동으로 크기가 줄어들도록 설정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지시하고 싶으면 생성형 AI 도움을 받으면 된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넘길 수 있고 가운데에 오는 사진이 크게 보이는 효과가 나는 식으로 사진첩을 만들고 싶다고 해보자. 이게 무슨 기술인지 이름을 몰라도 괜찮다. Gemini에게 대강 저런 식으로 설명하면 그걸 웹 개발 용어로 ‘커버플로우(Coverflow) 효과’라고 부르며 역 선생님에게 어떻게 여쭤봐야 하는지 질문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묻고, 또 물으며 나의 포트폴리오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 작업물이 담긴 폴더 속 소스코드를 깃허브에 올리고, 일종의 송출망(웹 호스팅 서버)인 Google firebase에 연결하고, 미리 구매해 둔 도메인 주소에 페이지가 노출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웹페이지 개발과 관련해 어떠한 지식도 없고 용어도 모른다. AI의 도움 등이 절대적으로 컸다.




스크린샷 2025-12-13 오후 6.20.14.png 이번에 만든 홈페이지 메인화면


이번에 웹페이지를 만들며 AI에 관해 생각한 것들이 있다. 하나는, AI가 옳으냐 그르냐를 논쟁할 때는 이미 지났다는 현실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생성형 AI에게 기사를 찾아달라고 물어보면서 ‘답을 이렇게 빨리 줄 수 있다니’ 하며 신기해했다. 한편으론 ‘이렇게 쉽게 정보를 얻어도 될까’ 하며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때마침 다른 업계의 개발자님을 뵐 기회가 있었고, 윤리적 딜레마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분은 재밌으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역으로 던졌다.


“네이버나 구글로 검색하실 때 죄책감 드세요?”


더 옛날 옛적, 검색엔진이 없었을 때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과거 신문을 훑어보고 책이나 논문을 일일이 서고에서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네이버나 구글이 생긴 뒤로 사람들은 이제 굳이 도서관에 안 간다. 인터넷으로 옛날 뉴스나 논문을 손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검색으로 얻은 정보값이 정확한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도서관에 가서 직접 찾아봐야 진짜 내 것이 되지 않을까?’ 하고 자책하기보다는, 검색엔진을 어떻게 ‘똑똑하게’ 쓸지 고민하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AI도 마찬가지다. 내가 찾는 정보가 맞는지, 사실관계가 정확한지를 확인하는 건 여전히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환각이나 오류가 있으니 쓰면 안 돼’라고 하기엔 너무 늦었다. 인류는 이미 강을 건넜다. 똑똑하게, 최대한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어떻게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할지 생각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안 써도 숨 쉬고 밥 먹고 걷고 자는 데 지장은 없다. 다만 나처럼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은 ‘쓸 줄은’ 알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AI 시대에는 암기력이 아닌 다른 능력이 요구될 것이다. 약 8~9년 전, 내 전공인 국사학과에는 ‘강독’이란 수업이 있었다. 교수님은 옛날 문헌 속 한자의 뜻과 음을 일일이 찾고 한문을 해석해 오는 과제를 내주셨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매주 고통에 몸부침치곤 했다.


갑자기 과거 얘기를 하는 건, 최근 겪은 신기한 경험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하던 중 왕이 이순신에게 보낸 서신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ChatGPT에게 음독과 해석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10초도 안 돼 결과물을 줬다. 만약 그때와 같은 과제를 요즘 시대에 낸다면 ‘과제’의 의미가 전혀 없지 않을까?


이젠 웬만한 지식과 정보는 언제든 생성형 AI에게 물어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는 정보나 기술이 머릿속에 많은 사람이 유리했다면, 앞으로는 AI를 활용해 남들과 다른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회사 선배가 12.3 내란에 연루된 인물들의 형사재판 현황을 모은 비주얼 페이지를 만들었다. 하나회 단체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어 일러스트 형식으로 디자인 요소를 가미했다. 이걸 보며 ‘일을 이렇게 해야겠구나’ 싶었다. AI 도구를 써서 기존의 정보를 재가공하고, 알고 있던 문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질문하고, 조합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코딩을 몰라서, 디자인을 못해서라는 핑계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 모르면 물어보고, 이런저런 기술과 정보와 문화를 조합해 보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추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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