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어야 하니까, 인간은 이야기를 발명하다.

by 뉘뉘

어느 유명 철학자가 고통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고 했던가?

고통받는 동물은 서사를 발명했다. 우리는 이야기에 집착하는 동물이다.

왜?

굳이 그런 걸 발명까지 하지 않아도 100년도 못 채우고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겨나는 이야기는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또 다른 유명 철학자는 인간의 삶을 시시포스 신화에 찰떡같이 비유했던가?

우리는 언덕 위로 돌을 굴러 올린다, 어차피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니나 달라 돌은 다시 내려가고 우리는 그 무거운 것을 밀어 올리길 반복한다. (나는 ‘스스로’ 인간이 모두 시시포스 신세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후에 알베르 카뮈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자랑이다.) 차이가 있다면 시시포스는 영원히 이 짓을 해야하지만(아마 이 순간도 하고 있을 거다) 우리의 짓거리는 유한하다는 것, 운이 직살라게 좋아야 100년 정도면 족하며 이후에는 돌 떨어질 걱정 없이 편안히 누워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우리는 수 없는 추락(Fall)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굴러떨어진 돌을 다시 밀러 내려가야 하니까. 더 폴의 주인공 로이처럼. 무성 영화 배우인 그는 촬영 도중 다쳐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 누워있다. 게다가 여자친구는 그와 헤어지고 동료 배우에게 떠났다. 절망한 로이는 돌을 그만 굴려 올리고 싶지만 다리를 못 쓰는 탓에 자살할 수단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는 우연히 만난 여자 아이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며 모르핀을 훔쳐 오게 한다. 자기 나이에 비해 사정없이 똑똑하지만 결코 로이의 숨은 의도(안 똑똑한 나는 어른이라 단박에 파악할)를 알아차릴 수 없는 어린 알렉산드리아가 자기의 방식대로 로이를 도우려다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을 찾아온 로이에게 이야기를 이어갈 것을 집요하게 요청하면서 결국 그의 추락을 막아낸다. 이제 이야기는 로이의 것만이 아니고 알렉산드리아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로이는 이를 함부로 끝낼 수 없게 되었다. 로이는, 그가 찍은 영화에서 수없이 떨어졌듯, 떨어졌고 또 떨어질 테지만 이야기의 힘으로 다시 한번 돌을 굴려 올리며 올라가 보기로 한다.



우리는 언제나 곤두박질친다.

우리가 던져진 세상은 중력이 작용하니 어쩔 수가 없다.

태어난 것 자체가 엄마의 다리 사이에서 떨어진 일 아니었나!

추락의 장력을 초월하는 이야기의 힘만이 우리를 다시 올라가게 한다. 매일 밤 우리가 이물감 없이 받아들이는 그 뒤죽박죽 말이 안 되는 꿈의 서사처럼 말이다.


그것이 아이들이 자기 전 나에게 동화책을 내미는 이유일 테고 내가 극장을 찾는 이유일테다.

추락하는 자신에 날개를 달아 줘야 하니까.







총 28개국 로케이션에 장소 섭외만 17년이 걸렸다고 하고, CG 하나도 없이 전부 실제 촬영으이라고 호들갑을 떨던데, 눈이 있어 보아도 믿기지는 않는다. 다른 건 다 타협해서 그래, 그렇다 쳐도 대체 수영하는 코끼리 타는 장면은 어떻게 찍은 건가?

인간이 돌 굴려 올리는 능력은 가히 한이 없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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