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이게 뭐냐, 젠장

by 뉘뉘

며칠 전 유튜브를 어슬렁대다 소식을 접했다.

“어? 데이비드 린치 감독 돌아가셨네.”

“그러게.”

“난 그 감독 영화 하나도 못 봤어.”

“나도.”

“그래서 내가 어디 가서 영화 좋아한다고 말을 못 하잖아.”

“그러게.”

집안 냥반과 실없이 대화했다.



내가 사는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그를 추모하며 그의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라..

볼까, 말까,

말아?

그냥 봐?


내가 영화 좋아한다는 말을 못 하게 입 틀어막는 감독이 어디 그 하나 뿐이랴.

아, 저 아세요? 저는 처음 뵙는데..

지인이 아니신데..

아, 많이 유명하신가보죠..

아, 족적이 크신가 보죠..

모르면 큰 일 나는 건가요..?

저는 영화 같은 거 모르는 순수한 영혼입니다.

이동진씨한테나 가서 따시세요.

김혜리씨한테 가시거나.





데이비드 린치 감독(다른 거장들도)의 영화를 못 본 이유를 대충 추려보자면 세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 지루할까봐.

극장에 앉으면 온 우주가 못 나가게 내 발을 붙들고 있으니까 높아지는 공력이

집에만 오면 건포도처럼 쪼그라든다.

괜히 시도했다가 끝까지 보지 못한 영화들이

나의 자존심을 갈아먹는다.

자객 섭은낭..

자아 보호를 위해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 그 영화..를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사람들 다 망해버려.


둘, 안 좋을까봐.

온 세계 평론가들이 쏟아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 가운데서

뽀인트를 당최 이해하지 못 하고

나는 안 좋더라 용감하게 고백하고 병신이 되어야 하는지

나도 좋았다고 브라보를 외치며 비겁자가 되어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선 자신을 상상하면

괜히 우울해진다.

인생은 원래 독고다이라지만

이보다 고독한 인생이 있을까?


셋, 이해를 못 할까봐.

몰라도

아무리 몰라도

아는 척을 대충을 할 정도는 몰라야지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으면 어쩌나.

이동진의 뺨을 때려보겠다고 나섰으니

맞든 안 맞든

쨉 하나는 날려야 않겠냐고

뭐라도 써보려 노트북을 켜고

흰 화면에 물음표만 찍어내다

인생이 중요하지 영화고 나발이고가 중요하냐고

데이비드 린치고 이동진이고 김혜리고 간에 다들 나가버리라고 저주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감독이 살아계셨으면 안 갔을 것 같은데

타계하셨으니 가기로 했다.

왜 인지 언어화하기는 어려운데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 같은 거라고 해야하나.

관심도 없고

모르는 분에게

왜 갖추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몇 백석 갖춘 꽤 큰 예술 극장에서 하길래

평소처럼 텅텅 빌 것을 예상하고

꼭 예매를 해야하나 싶었는데

농담이 아니고

딱, 하나 마지막 자리가 남았다.

다급하게 클릭했다.

갑자기 반드시 보고야 말고 싶다.


애들을 우리집 아저씨께 맡기고

손가락 끝을 눈썹 끝에 위치시켜

경례를 올려붙였다.

“오늘 밤 잘 재워주길 바란다. 조교를 실망시키지 말길!”






봤다.

드디어.

멀홀랜드 드라이브

한 시간 전 쯤.


목장갑 끼고

뜨끈뜨끈 군고구마 굴리면서 노트북을 연다.



어땠는가?

나의 두려움들은 현실이 되었는가?


하나, 삐~ 안 지루했다.

너무 안 지루해서 계속 시계를 봤다.

끝날까봐.

아씨, 여기서 끝나면 안 돼. 너무 재밌는데.

어디서 끝내도 그냥 끝낼 것 같아서

재미있어 죽겠는데

그냥 끝낼까봐

후반부는 너무 초조했다.


둘, 삐~ 좋았다.

나는 이렇게 온 세계 평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이 좋은 거 왜 니네 끼리만 쳐봤냐고

다들 뚜드려 패고 다닐 뻔했다.

누가 못 보게 널 가두고 묶었더냐고 반박해도

논리고 이성이고 없이

행패를 부리고 다니고만 싶은 심정.


셋, 딩동댕! 이해를 못 했다. 전혀 못 했다.

성공.

드림스 컴 튜루.

뭔 소린지 당최 모르겠다.

쟈는 누군겨?

갸는 왜 나왔디야?

쟈는 죽은겨?

갸는 산겨?

쟈가 갸여?

아니여, 갸가 쟈잖여.

겨?

아녀.

아녀?

아닌데 겨.

뭔 소리랴.

뭐 그런 소리여.




어릴 때 혼자 천정을 보면서 이것저것 공상을 하다가

이야기가 도저히 수습이 안 되면

주인공이 소스라치게 놀라 깨면서

아 꿈이였구나~

하는 반전으로 끝내곤 했다.

그건 나의 백일몽의 마지막 보루 같은 거였다.

데우스엑스마키나!

정 안 되면 꿈이면 된다.


그걸 거장은 이렇게 하는구만.



제길.

니 똥 굵다.





이것이 영화적 체험이란 것입니꽈!

문학이 더 좋다고는 못하겠소 이젠.

내 머릿속이

감독들 깜냥보다 크다고

그래서 니들이 잔뜩 찍어서 두세시간으로 줄인 그거가

내가 읽고 상상한 거에는 쨉이 안된다고

빡빡 쌔우고 싶은데

못허겠네 허허.


저걸 저렇게 해서 들이대는데

어떻게 우기냐.



너무 좋아서 다 파괴해버리고파.

갑자기 나 자신을 시바신에게 동일시! 하게 됨.


이게 뭐냐.

젠장.





문학도 좋고 영화도 좋고


나만 노났네. 허허


좋은 건 많은데 시간이 없어.



애 둘이 저러고 새새끼처럼 입을 오물대니 원.










레스트 앤 피스, 마이스터

땡큐 베리마치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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