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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Nov 28. 2017

좋은 시 읽고 좋은 시 쓰기

좋은 시 읽고 좋은 시 쓰기     

                                                            김한빈         


3부  이미지



머리말


  좋은 시란 인생과 자연,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탁월한 발상과 표현을 통해 높은 예술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 문학적 진실성을 성취한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 시란 통찰과 상상력과 진실성의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런데 시와 수필의 차이점은 시는 허구(픽션fiction, 꾸민 이야기), 수필은 비허구(논픽션non-fiction, 꾸미지 않은 이야기)에 있다. 시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허구이지만, 시가 소설과 다른 점은 시는 상상력의 세계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상상력(imagination)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에 의하면, 이미지(심상心象, image)를 획득하거나 그것을 창조하는 능력, 또는 그러한 이미지를 고안하는 과정을 주관하는 힘을 가리킨다. 즉, 마음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영상(映像)을 만들거나 경험을 초월한 세계를 만드는 정신적 능력을 말한다. 결국 시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본문


  시적 언어는 이미지를 환기한다. 이미지란 시어에 의해 환기되는 감각 경험의 재현이다.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의해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각적 느낌이나 인상이다. 또는 오각에 온도감각(냉온감각)과 근육감각을 추가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미지를 (정신적 이미지를 배제하고) 이러한 감각적 심상으로 한정해서 논의한다. 그러므로 시어라도 심상이 될 수 없는 것과 될 수 있는 것이 구별된다. 추상적인 관념, 가령 사랑, 연민, 동경, 향수, 마음 등은 심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추상적 관념어는 비유어로 사용될 수 있으나, 이미지를 환기할 수 없다. 


  심상이 될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자연물, 자연 현상이다. 예를 들면 산, 바다, 나무, 하늘, 별, 바람, 눈 등이다. 둘째, 구체적인 행위이다. 정지용「유리창」에서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라는 유리창 닦는 행위는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끝으로, 구체적인 상황이다. 이육사「광야」에서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한 광야의 상황을 제시한다. 이상 「오감도-시 제1호」에서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는 것은 구체적 행위이고, ‘막다른 골목’은 구체적 상황이다. 이러한 시적 상황 제시도 이미지를 환기한다.


  한편, 심상을 형성하는 방법 또는 심상을 제시하는 방법 즉, 심상을 만들어 내는 방법에 따라 분류하면, 묘사적 심상, 비유적 심상, 상징적 심상으로 나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김종길 「성탄제」 1연)에서 ‘숯불’은 대상을 묘사한 것으로 묘사적 심상(서술적 심상), ‘삶은 은총의 돌층계/ 사랑도 섭리의 자갈밭’ (김남조「겨울바다」)에서 ‘돌층계, 자갈밭’은 비유에 의해 형성된 비유적 심상,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김수영「눈」)에서 ‘눈’은 상징에 의해 획득된 상징적 심상이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비유와 상징에 의해 제시된 이미지가 아닌 순수한 묘사에 의해 환기된 묘사적 심상이다. 김춘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보자. 시의 의미를 배제하고 순수한 감각적 이미지만을 제시하려고 시도한 무의미시이다.


 김춘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날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타령조․기타』(1969)


  이 시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화가 마르크 샤갈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나 평생을 프랑스에서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알려졌다. 김춘수는 샤갈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나와 마을> <비테프스크 위에서> <오븐 앞의 어머니>)의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샤갈의 회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시세계를 형상화했다.            


김춘수는 자신의 ‘시론(詩論)’에서 비유적 이미지와 서술적 이미지를 구분했다. 비유적 이미지란 이미지가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것을 말하고, 서술적 이미지란 이미지가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는 샤갈의 회화에서 가져온 여러 이미지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특정한 관념이나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이미지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에는 숨겨지거나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없다.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현대문학, 2013. 인용)


  현대시는 과거의 음악성, 즉 청각적 심상을 중시하던 낭만주의 시로부터 벗어나 이미지, 특히 시각적 심상을 중시하는 회화시로 발전하였다. 시를 낭독하고 청중들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제한된 공간을 뛰어넘어 이제 시는 독자가 눈으로 읽는 그림이 되었다. 그림에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나타나야 성공적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참신하고, 경이롭고, 신선해야 한다. 


  김영랑「내 마음을 아실 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 줄 임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지 못한다. 시상이 전환되는 3연에서 탄식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아, 그립다.’라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한다. 그러나 현대시에서는 이러한 감정의 직접적 표출을 삼간다. 그 대안으로 현대시에서는 화자의 절실한 정서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이미지즘의 수법이 통용되고 있다. 


  이미지즘의 수법은 표현대상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관념적이고 비가시적인 표현 대상인 시인의 관념과 정서를 생생하고 구체적인 감각적 이미지(특히 시각적 심상)로 형상화하는 방법이다. 여기엔 필연적으로 감정의 절제와 대상의 객관화하기, 지적인 태도가 수반된다. 이때 제시되는 이미지는 반드시 객관적 상관물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즉,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을 새로운 이미지로 묘사하거나 다른 대상에 비유하여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비가시적인 표현대상을 시각화할 때 공감각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정지용「유리창」은 죽은 자식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라는 유리창을 닦는 행위로 형상화한다.「그의 반」은 절대자(‘그’)를 여러 가지 자연적 이미지(불, 달, 금성, 고산식물 등)에 비유한다.  


「그의 반」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운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金星),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식물(高山植物),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黃昏) 길 위 ―

나 ―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시문학 3호>(1931. 10)


  김광균「와사등」은 방향 감각을 잃은 현대인의 도시적 삶의 중압감과 비애를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들은 전자의 사례이다. 


  다음은 후자의 사례이다. 정지용은「바다 2」에서 ‘썰물’을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처럼/ 재재 발렀다.//”라고 새로운 감각적 이미지로 제시했다.「비」는 산속에 비가 내리는 정경을 감각적이고 묘사적인 이미지를 통해 8개 연으로 형상화했다. 


「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서구 문학 이론인 이미지즘의 수법도 알고 보면, 중국 북송 휘황이 출제한 과거시험 문제가 더 원조격일 것이다. “꽃을 밟고 돌아온 말발굽에 꽃향기가 그윽하다.”의 경우, 나비를 그려서 그윽한 꽃향기를 표현한 것은 현대어로 공감각적 표현에 해당된다. “깊은 산속에 절 하나”의 경우엔, 계곡에서 물동이를 지고 가는 동자승을 통해 깊은 산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절을 표현했다. 이 장원급제한 그림들의 공통점은 ‘감춤으로써 드러내기’의 수법이고, 오늘날의 이미지즘의 수법이다. 표현대상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다른 사물이나, 사건, 상황 등을 통해 간접 제시하는 수법과 상통한다. 차이가 있다면, 서구의 이미지즘은 현대 문명사회를 비판하는 모더니즘과 결합하여 현대문명의 물질적 이미지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한 편의 시 작품 속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어느 하나가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이미저리(imagery)’란 ‘이미지들’을 말하고, 흔히 ‘이미지군(群)’이라고 한다. 좋은 시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이미저리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이를 중심으로 감상하는 내재적 접근 방법도 있다. 


  우선 한 작품 속에 동일 혹은 유사 이미지와 대립 이미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를 보자. 김현승 「가을」은 봄과 가을의 이항 대립을 통해 봄은 ‘꽃잎, 살, 노래’, 가을은 ‘별, 보석, 뼈마디’로 ‘가을’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가을」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이와 같이 대립관계의 이미저리는 비록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드러내더라도 시적 긴장감을 획득하여 시의 주제, 즉 시적 화자의 정서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1공화국 말기 김수영「눈」은 자유와 정의를 온몸으로 절규하는 “젊은 시인(지식인)”의 순수한 영혼을 회복하기 위해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자’고 권유한다. 지향해야 할 가치인 ‘눈(순수)’과 제거해야 마땅한 ‘가래(비순수)’의 간결하고 극명한 대립을 단순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당위와 존재 사이의 갈등을 뛰어넘는다. 신동엽「껍데기는 가라」는 1960년대 4.19 혁명 직후의 시대정신을 이원적 대립 이미지를 통해 노래한다. 일체의 비순수와 가식, 폭력성을 거부하고, 민족의 순수성을 회복하여 분단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명령법의 어조로 외친다. ‘껍데기와 알맹이 ․ 그 아우성 ․ 빛나는 부끄럼의 대립, 껍데기와 동일한 시어인 쇠붙이와 향그러운 흙가슴의 대립을 보여준다.


김수영「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중략>-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신동엽「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현대한국문학전집』제18권 [52인 시집] (신구문화사, 1967) 


  현대 문명사회를 비판하는 모더니즘의 시세계를 구축한 박남수「새」에서 현대 문명의  비정성과 폭력성을 고발하기 위해 ‘한 덩이 납으로’ 새의 순수성을 유린하는 ‘포수’를 극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포수(비순수한 현대인)’는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 즉, 훼손된 순수만을 포획할 뿐이다.

 

박남수 「새」


1

하늘에 깔아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의 부리는/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 ․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한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이미저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심상을 ‘지배적 심상(모티프motif)’이라고 한다. 이것은 주제(theme)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심상이거나, 가장 강렬한 인상이나 정서를 유발하는 심상, 한 편의 시 작품에 자주 반복되어 나타나는 심상을 말한다. 완성도가 높은 시 작품엔 지배적 심상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김춘수「꽃」은 한시의 절구 형식인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성을 따르고 있다. 2연과 3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꽃’이 지배적 심상이요, 동시에 시의 제목이다. ‘꽃’이라는 비유를 통해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 맺음을 희구하는 소망을 노래한다.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종길「성탄제」는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라는 6연을 중심으로 과거의 전반부와 현재의 후반부가 대칭적 구조로 연결된다. 아버지가 열병을 앓고 있는 화자(아들)을 위하여 구하기 힘든 “붉은 산수유 열매”를 해열제로 따 오셨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생명 속에는 언제나 “산수유 붉은 알알”이 녹아 흐른다. 전반부와 후반부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산수유 붉은 열매’가 지배적 심상이다. 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회상한다.


김종길「성탄제」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것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다음은 서정주「자화상(自畵像」이다. 흔히 화가나 시인들은 자화상을 그리곤 한다. 어떤 화가는 모델료가 없어서 거울을 보며 자신을 그릴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자아성찰의 의미가 들어있다. 이 작품은 시인 개인의 자화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다른 시인들의 자화상과는 다르다. 3연 구성에서 1연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의 ‘바람’이 지배적 심상이고, 2연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에서 ‘죄인과 천치’가 지배적 심상이고, 마지막 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의 ‘병든 수캐’가 지배적 심상이다. 전체의 지배적 심상은 3연의 ‘병든 수캐’이다.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우리 민족의 자화상을 이와 같이 단적으로 표현했다. 


서정주「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니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한 편의 시에 지배적 심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좋은 시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지배적 심상의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곧 그 작품의 주제를 묻는 것과 같다. 시는 지배적 심상을 중심으로 시상이 전개된다. 시상 전개 과정에서 긴밀하게 연결되는 심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육사「자야곡」의 ‘자야’는 이백의「자야오가(子夜吳歌)」를 연상하게 하는, 깊은 밤이고, 암담한 시대상황을 상징한다. 독립투사로서 활동하던 시인은 오래간만에 귀향했으나, 번성했던 고향의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파이프에 타오르는 담뱃불이 옛고향의 모습과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연기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실어나른다. ‘빛’(고향의 이미지)에서 ‘꽃불’(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거쳐 ‘연기’(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실어나름)로 이미지가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 이미저리는 전체적으로 ‘불’의 이미지들이다.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에서 촛불을 바라보는 사람은 단순히 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바라보며 고요하게 생각에 잠기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마찬가지로 이 시의 화자도 ‘향기로운 꽃불’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는 것이다.


  이육사 「자야곡」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눈보래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막힐 마음 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라.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반면에 박 재 삼「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전체적으로 ‘물’의 이미지들이 지배적 심상으로 나타난다. 삶의 과정이 ‘강’의 흐름을 통해 제시된다. 젊은 날이 ‘기쁜 첫사랑 산골 물’로 흐르다가 ‘사랑 끝에 생긴 울음’을 삭이고, 이제 인생을 살만큼 살면 ‘소리죽은 가을강’이 되어 저녁놀에 붉게 타면서 죽음의 세계인 ‘바다’로 향한다.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물’의 이미지를 분석한다. 물은 외적 ․ 내적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며 어떤 것이든지 품어 안는 성격이 있다. 이것은 물이 깊이를 갖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속성으로 인해 물의 표면은 생성과 소멸에 관련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는 모든 것을 품는 내밀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의 모양은 잠깐 존재 했다 사라져 곁에서 멀어지고 서서히 스러져 아무것도 없는 텅 빔을 느끼게 하여 허무함을 알게 만든다. (이지훈, 『예술과 연금술』, 창비, 2004, 인용) 


박 재 삼「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을 처음 보겄네.


  박목월「나그네」는 두 갈래의 이미저리가 나타난다. ‘유랑’의 이미지들은 ‘강나루 - 길 - 구름 - 달’이다. ‘풍류’의 이미지들은 ‘밀 - 술 - 놀’이다. 이 시의 시상 전개 과정은 마치 물감 칠한 종이를 접었다가 좌우로 펼친 것 같다. 가운데 3연에서 외로운 나그네의 유랑길을 시적 상황으로 제시하고, 그 앞뒤가 대칭적 구조로 마주 보게 구성한다. 일체의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유랑길도 풍류를 잃지 않는 달관의 나그네 모습을 제시한다. 


박목월「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우주의 근본 물질에 대한 물음은 서양의 고대부터 현대까지 계속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의 기본은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4원소인 어둡고 차가운 ‘물’ · 따뜻하고 빛나는 ‘불’ · 무겁고 단단한 ‘흙’ · 자유롭게 움직이며 투명한 ‘공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상상했다. 한편 동양(중국)은 일월(日月) 음양과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오행(五行)사상을 발전시켰다. 동서양의 사고의 차이는 물질성과 관념성에 있다. 동양(중국과 동북아)은 음양오행을 관념적으로 해석한 반면에 서양은 물질성에 주목하여 나중에 연금술로 이어졌다가 화학과 원자론 등의 학문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4원소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바슐라르는, 인간 상상력은 근본적으로 ‘물, 불, 흙, 공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가정한다.


  ‘물질성은 물질이 갖는 본질적인 물리적 속성으로 4원소는 개별적으로 각기 다른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성격을 대표하는 4원소는 고유한 물질적 특징을 지니며, 이 자연 요소들이 상황에 따라 우리에게 저마다 다른 속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은 근본적으로 물질이며 모든 이미지들을 물, 불, 공기, 흙의 기준에 의해 분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물질적 이미지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동일한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홍명희,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살림, 2005. 인용)


  이와 같이 시의 이미저리를 바슐라르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이미저리를 이미지들의 상관 관계성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상승적 심상과 하강적 심상, 확산적 심상과 응축적 심상, 생성적 심상과 소멸적 심상 등이다. 상승적 심상은 상승적 지향 의식, 즉 동경, 염원, 추구, 흠모 등으로, 하강적 심상은 자기 희생, 죽음, 허무, 좌절 등으로 해석하고, 확산적 심상은 수평적 공간 이동하는 움직임과, 응축적 심상은 강한 밀도로 응결되는 것과 대응된다. 생성적 심상은 좌절과 허무의 극복이나, 새 희망의 생성으로, 소멸적 심상은 좌절과 허무, 사라짐 등으로 해석한다. 


  우리 시문학 전통에 길이 남을 시인들의 시에는 반드시 이러한 이미저리가 복합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사례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작품들을 열거하는 일은 끝도 없다. 상승적 심상: 향가「찬기파랑가」에서 시인은 찬양의 대상인 기파랑을 서리를 모를 잣나무 끝에 비유한다. 화자의 시선이 잣나무 끝을 바라보는 것은 상승적 지향의식이 투영된 것이다. 곧은 나무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 자체가 상승적 심상이다. 윤동주「십자가」에서도 화자는 교회당 첨탑 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상승적 지향의식을 드러낸다. 교회당 첨탑 자체가 상승적 심상이다. 정철「관동별곡」에서 화자는 금강산 비로봉 상상두를 바라보며 오를 수 없는 대상으로 파악하고 공자의 높은 덕을 연상한다. 높은 산봉우리 자체가 상승적 심상이다. 


  계속해서 하강적 심상: 김수영「폭포」에서 폭포의 낙하는 하강적 심상으로서 자기희생을 상징한다.「눈」도 마찬가지이다. 상승과 하강: 이육사「교목」과 김춘수「분수」에는 상승적 심상과 하강적 심상이 동시에 나타나서 시적 긴장감을 획득한다. 확산적 심상: 박남수「종소리」에서는 종소리를 새로 비유하고, 종소리의 울음을 새의 비상으로 표현한다. 김수영「폭포」에서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가 폭포 소리의 확산적 심상이다. 응축적 심상: 김소월「초혼」, 서정주「신부」, 조지훈「석문(石門)」 등은 망부석 설화의 모티프(화소話素)와 관련된다. 생성과 소멸:  김남조「겨울바다」와 강은교「우리가 물이 되어」에는 ‘물-불’의 이미지 대립이 선명하다.  

 

맺는말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좋은 이미지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지배적 심상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때 생긴다. 이미지는 묘사에 의해 형성된 것과 비유나 상징에 의해 형성된 것이 있다. 시적 대상을 신선한 묘사적 이미지로 재현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시적 대상을 새롭고 낯설게 바라보고, 참신한 비유를 발견하거나, 개인적 ․ 창조적 상징을 찾아내는 것은 시인의 뛰어난 역량을 필요로 한다. 결국 좋은 시는 참신한 이미지가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나 시적 긴장감이 살고 경이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김한빈

시인, 평론가, 경성대 외래교수


<문장 21>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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