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맛 본 조금 특별한 굴의 기억
일반적인 견해는 이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이 하나의 맛이 선명할 때보다는 서로 균형을 이루고 복합적일 때 맛의 즐거움이 커집니다. 초콜릿에 소금을 살짝 뿌려 먹으면 단맛이 더 부드럽게 부각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니면 카페모카를 마실 때 짠맛이 났던 기억은 있으신가요? 굴과 스타우트에 관한 일반적인 페어링 이론이 이와 비슷합니다. 굴의 짠맛과 스타우트의 단맛이 어울린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짠맛은 쓴맛을 줄여주고 고소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굴과 스타우트 페어링에 관해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가령 비릿한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는 도통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물론 지금은 나름대로 해산물과도 어울리는 맥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선회를 좋아하지만 회에는 역시 맥주보다는 소주나 청주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포터와 굴이라면 이해가 갑니다. 포터가 영국의 부둣가에서 맥주를 나르는 짐꾼(포터)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처럼 포터(맥주와 짐꾼 모두) 근처에는 굴이 널려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포터와 굴을 함께 먹으면서 고유의 문화가 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간혹 바닷가에서 바로 딴 굴과 소주 한잔씩 파는 아주머니들을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굴이라는 것이, 특히 한국의 굴이라는 것이 맥주에 어울릴까요? 물론 조리된 굴이 아니라 생굴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굴은 충분히 맛있지만(저는 굴을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뽀드득 씹어 먹기보다는 한입에 삼 켜지 듯 미끄러지는 것이 맥주와 페어링을 느껴 볼 새도 없단 말입니다. 굴은 대체로 낮은 온도에서 시원하게 먹는 편이라 차가운 음식과 차가운 맥주의 조합도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선한 비린내(?), 바다냄새과 맥주와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굴과 스타우트의 페어링은 저에게 신화에 가깝고 현대적 감각으로의 페어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도 이 페어링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시는 분들도 발견하지 못했고요.
작년 서포트로컬 잡지 기고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맥주 잡지 트랜스포터와 음미하다 님의 초청으로 통영 펍 크롤링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맥주를 삼가는 중이라 참가하는 것이 곧 고통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망설였지만 투어에 포함되어 있는 굴과 스타우트 페어링에 관심이 컸습니다. 뭔가 새로운 게 나올 것 같았거든요. 굴과 스타우트 딱 한 모금만 하자는 심정으로 참가를 결정했습니다.
통영에서 만난 굴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그전에 한국의 굴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한국의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바위에 서식하는 자연산 굴을 바위굴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굴은 참굴이고요. 참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종입니다. 주로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철에 맛이 좋기 때문에 많이 팔립니다. 크기는 대략 7~10cm 정도입니다(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참고). 아무튼 저는 이 한국산 참굴과 스타우트의 페어링에 대해 대단한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통영의 특별한 굴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이 특별한 굴은 태화물산에서 생산하는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라는 브랜드명을 가진 굴입니다. 스텔라 마리스는 ‘바다의 별’이라는 뜻이고, 굴의 종은 태평양 굴(퍼시픽 오이스터)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통영에 오기전까지 스텔라 마리스는 프랑스에서 많이 자라는 굴의 한 종인 줄 알고 있었는데, 종이 아니라 태화물산에서 지은 브랜드명이었던 것입니다.
페어링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의 참굴도 스텔라 마리스처럼 태평양의 굴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텔라 마리스는 대략 크기가 어른 손만할 정도로 참굴과는 크게 대비됩니다. 태화물산 대표님의 말씀에 의하면 ‘3배체 개체굴이라고 하는데 산란과 번식을 하지 않고 이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성장에 사용하도록 개량된 품종’이라고 합니다. 100그램을 성장시키는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맛 본 굴은 3~4년산 이었습니다(대표님께 어찌나 질문을 많이 했는지 특별히 제게 1~2년산 굴을 추가로 주시기도 했습니다).
스텔라 마리스는 일반 참굴보다 살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비린 맛이나 불쾌하게 느낄 수 있는 맛이 하나도 없고 살점이 담백하면서 우유를 마시는 듯 부드럽습니다. 굴을 후루룩 마시는 게 아니라 오도독 씹어 먹으니 더욱 담백하면서 달게 느껴졌습니다.
스텔라 마리스와 페어링한 맥주는 머피스 아이리쉬 스타우트입니다. 기네스와 비슷하면서 조금 더 드라이하고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머피스가 탄생한 코크(Cork)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남부 지방에서는 기네스보다 머피스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 둘을 페어링한 소회는 간단히 이렇습니다. 푸드 페어링을 할 때 저는 다음 3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맥주를 중심으로 푸드를 맞추어 맥주의 풍미를 두드러지게 하느냐? 푸드를 돋보이게 하려고 맥주를 맞추느냐? 아님 맥주와 푸드를 완전히 섞어 물아일체의 균형적인 맛을 느끼느냐? 이번 페어링에서는 이 중 푸드(굴)를 중심으로 맥주(스타우트)가 떠받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즉, 드라이한 스타우트가 굴의 풍미를 돋보이게 한다는 점이었고, 풍미와 더불어 질감에서의 균형감이 특별했습니다. 묵직하고 담백한 굴의 맛은 단맛과 쓴맛이 적은 드라이한 스타우트가 굴의 고유의 맛을 헤치지 않았고 비린내 하나 없이 끝까지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게다가 굴의 부드럽고 푹신한 질감이 맥주의 크리미한 질감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특별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에 페어링한 드 랑케 브루어리의 괴즈는 질감이 달라서 그런지 입안에서 살짝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스타우트와 확실히 대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는 앞으로 굴을 먹는다면 람빅/괴즈보다는 스타우트를 마실 것 같습니다. 굴/스타우트 페어링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본 경험이었습니다.